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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온 Jul 26. 2023

그놈의 청첩장

이렇게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는 어떤 신부의 변명




청첩장 줄게! 밥 한 끼 먹자!

결혼할 장소를 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쉼없이 임했던 결혼 준비는 곧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슬슬 모임들을 잡고 있다. 청첩장도 이제사 나왔기도 했고, 우리의 주말은 한정적이라서 연락 안주면 평생 서운해할 사람들 위주로 먼저 연락을 돌리고 빈 시간표에 알박기를 했다. 주말 한정으로 촘촘히 짜인 캘린더를 보고있자 하니 숨이 턱 막힌다. 나 제법 어엿한 내향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준비하면서도 마음이 쓰인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뜬금없고 갑작스럽긴 하니까

그 놈의 한국식 청첩장 문화에 직접 뛰어드니 머리 아픈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경사, 좋은 소식은 많이 얘기하면 할수록 좋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내가 청첩장을 보내려니 상대가 부담스러울까봐, 혹은 싫어할까봐 걱정부터 앞선다. 내 근황과 인생일대의 좋은 소식 전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모종의 목적으로 연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여기서 '갑자기'에는 많은 부분을 함의하고 있다. 국가차원 거리두기를 했던 코로나 탓도 있고 취직 후 현생에 치여 바빠진 탓도 있다. 내가 용인에서 안산으로, 안산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서울로 생활권이 바뀐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새삼스레 연락을 다시 해야할지 어렵기만 하다. 


누구는 지인 모두 다 청첩장을 나눠주라고 한다. 올 사람들은 오겠고, 안 올 사람들은 재껴지겠지. 선택은 그들의 몫이라며 속 편하게 말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소위 뒷말이나 앞말이 나오면 그것에 대한 감당은 내 몫일테다. 그게 조금 두렵다. 


가령, 학생때는 죽고 못 살던 친구들이었지만 스무살 이후 연락한 적 없는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나, 학교 졸업 후에 연락이 끊어진 대학교 친구들에게 연락하는게 맞을까. 덜 친한 사람들과 더 친한 사람들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군데, 그 친구는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수도 있고. 이 친구는 연락을 했는데, 다른 친구가 연락 안하면 서운해하지 않을까. 이 친구가 온다면 헤어진 연인인 이 친구는 결혼식에 안 올텐데. 이 선생님이랑은 유난히 친해서 부르고 싶은데, 이 선생님이랑은 접점이 전혀 없고. 안 부르자니 그 선생님만 안 부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이고. 얽힌 인연들에 대한 복잡한 관계도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냥 연락하지 말까 하다가도, 내가 소식 전하지도 않아서 뒤늦게 결혼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결혼 이후에도 영영 연락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 뿐이다. 차라리 코로나 시국에 결혼했으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축할 수 있었을텐데 괜한 마음에 입술만 뜯는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첫번째로 유부가 되는 입장이어서, 하소연과 조언을 들을 만한 사람들도 없는 게 슬프기만 하다. 



모바일 청첩장이 뭐라고

그도 그럴게, '모바일 청첩장'이라고 검색만 해도 청첩장 문화에 머리 아파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종이 청첩장이 아닌 모바일 청첩장 받으면 기분 나쁘다는 여론도 가끔 보이는데 한숨만 나온다. 물론 생전 연락 한번 없다가, 접점도 없다가 갑자기 청첩장만 보낸다면 기분 나쁠수도 있겠다. 다만, 당사자도 좋은 소식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전달했을 테고, 본인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텐데. (적어도 나는 그렇다.) 축의금 때문에 연락했다는 둥, 머릿수 채우려는 심산이라는 둥 굳이 그 이면을 만들어내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세대들이 많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여유가 있다면 본질만을 꿰뚫어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을텐데 안타깝다. 시간을 내어 종이 청첩장을 주고 받는 사이가 피차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모청' 정도의 뎁스 정도가 서로에게 괜찮지 않을까. 


와중에 재밌는 건, 인터넷 문화가 자연스러운 우리 세대는 종이 청첩장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워낙 간편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지류에 비해 모바일 청첩장이 성의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반대로 부모님 세대는 모바일 청첩장을 더 선호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용기를 내도 괜찮을까요?

오빠도 정말 존경하는 전 회사 선배님들께 연락을 드리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난다고 했다. 퇴사 후 연락도 뜸했거니와 이렇게 느닷없이 연락드려도 괜찮을지 걱정이 된다나. 나도 충분히 동감한다. 그 사람이 오빠의 연락을 무시하면 어쩔 수 없지만 설령 그러더라도, 연락해서 소식이라도 전하라고 말해줬다. 오빠도 후배한테 소식 들으면 어떻게든 반갑지 않겠느냐고. 한숨을 푹 쉬며 그건 맞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도 쿨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가 조금 더 뻔뻔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청첩장 연락이 이렇게 고민이 되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 이후에 결혼 소식을 받으면 이 많은 고민들이 함축되어있음을 느끼고, 내게 연락해주는 그 지인에게 더욱 고마워질 것 같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내가 갑자기 느닷없이 뜬금포로 결혼 소식을 전하더라도 부디 위 맥락을 헤아려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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