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계에 도착한 나를 조용히 이끌어준 누군가에 대하여
자고로 게임 세상에서는, 모름지기 레벨 0부터 시작한 입문 뉴비라면 얼결에 떨어진 미지의 세계에서 어찌할 바 몰라야 제 맛이다. 그럴 때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뉴비에게 어디로 가야할지 바닥에 화살표를 그려주고, 어떤 걸 해야할 지 빛을 밝혀주곤 한다. 뿐만 아니라 말풍선을 띄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며 그 세계의 적응을 돕는다. 그게 ‘국룰’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현실의 육아는 그 어떠한 말풍선이나 화살표, 방향지시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 갓나온 아기는, 나에게 “울음을 그치게 하여 평온을 주라”는 혹독한 미션을 줄 뿐이었다. 견습 엄마인 나는 왜 우는지 모르는 채로 분유병도 입 가까이에 들이대보고, 기저귀도 체크해보고, 정 안되면 아기를 품에 안고 몇시간을 어르고 달랬다. 게다가 날카로운 칼로 배를 가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갑작스런 출산에 호르몬 교란까지 온 산모에게는, 그야말로 육체적-정신적으로 바닥을 친 나라는 사람에게는 이 친절하지 않은 현실세계가 아득하기만 했다.
와. 대체 새벽 동안 몇번이나 깬거지?
집안에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았다. 새벽 4시. 아직 성치 않은 몸을 일으켰다. 창밖으로는 푸른 새벽이 당도하고 있었다. 귀가 찢어질 듯한 아기의 비명과 같은 울음소리가 고요한 방안을 강렬하게 메웠다. 신생아는 2-3시간에 한번씩 우유를 먹어야하기 때문에, 나는 조금 걸음을 서둘러 주방까지 가서 아기의 분유를 탔다. 부스스 남편도 일어나며 졸린 눈을 비볐다.
"몇 시야?"
"4시."
아기는 분유 냄새를 맡고 허겁지겁 빨았다. 배가 고팠나 보구나.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아기는 불현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분유가 담긴 젖병이 뜨거웠다. 잠결에 손목으로 확인도 못한 채로 물렸던 내 잘못이었다. 허둥대며 미안해를 10번 넘게 하며 아기를 안은 채, 엉성하게 싱크대 물을 틀고 젖병을 식혔다.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나도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그렇게 눈물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쏟아졌다. 이 알 수 없는 눈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100일 내외를 쉬지 않고 흘렀던것 같다. 새벽 수유시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기저귀를 갈 때에도, 샤워를 할 때에도 그랬다. 사실 나는 이렇게 물먹은 휴지처럼 축 적셔져 늘어지는 게 아이를 낳은 이들에겐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생애초기건강관리사업에서 진단한 나의 심리 상태는 '산후우울증'이었다. 스팸으로 오인하여 지나칠 수도 있었던 번호를 확인하여 든 수화기 너머로 퍽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에게 정기적인 방문을 원하는지 물어왔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창 너머의 모호한 방향으로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았다. 그렇기 나는 그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4주에서 6주 사이, 즉 산욕기 동안 우울한 기분, 심한 불안감, 불면, 과도한 체중 변화, 의욕 저하, 집중력 저하,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 없음 또는 죄책감을 경험하며, 심하면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질환이다.
- 서울대학교 병원
"아유. 어머님, 저 괜찮아요. 이렇게 챙겨주셔도 저는 안 받으니 차려주지 마셔요."
동그란 안경을 쓴 채로 눈꼬리의 주름을 늘어뜨리며 간호사는 단호하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간단한 물과 다과. 집에 손님이 오면 으레 하는 인사치레였지만 그녀는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고는 정갈한 서류들을 책상위에 올려놓더니, 간만에 온 손님에 괜히 분주해진 나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며 간단하게 안부를 물었다.
"아기는 여기다 내려놓고 놀게하셔요. 어머님, 요즘 기분은 좀 어떠세요?"
"아.. 그냥 아기 키우는게 너무 어려워요."
"초산 산모님들이 이렇게 힘들어하시는게 당연해요. 편하게 우셔도 괜찮아요. 설문지에 아기 키우면서 궁금한 부분들을 많이 적어주셨더라구요. 같이 한번 이야기 나눠볼까요?"
처음 보는 사람의 안부가 이렇게 슬픈 것이었던가? 푸석푸석해진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가 떨어졌다. 조금 창피했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빛이 정말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간호사는 투명한 파일철에 내가 제출했던 서류를 뽑아서 읽었다. 그러곤 내가 어떤 게 힘든지 구체적으로 분류하고 그에 대한 정보와 생각들을 나누었다. 분유 급여량, 수면교육, 자잘하게 보이는 아기의 증상들.. 유투브 등에서 본 조각 육아 정보들이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또렷해졌다. 그녀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당신은 잘 하고 있으며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었다.
"어머님은 어떤 것을 하면서 스트레스 푸세요? 어떤 것을 좋아하세요?"
"어... 글쎄요. 다 잊어버린 것 같은데요."
"그래도. 출산 전에는 시간이 날 때 하면 좋았던 것들이 있으셨을텐데요."
시니컬하게 푸스스 웃는 나를 보며 진지해진 간호사는 집요하게 나의 취향을 물었다. 나는 아득한 전생처럼 느껴지는 내 취향 서랍을 더듬더듬 찾기 시작했다.
"아, 엄-.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었어요."
"멋지네요! 그럼 글을 써보셔요. 아기 재우고 꼭 나만의 시간을 내서 써보세요. 분명 도움이 될거예요."
그렇게 그녀는 주기적으로 기약한 시간에 맞춰 찾아와 손수 가져온 체중계와 줄자로 아기가 잘 크고 있는지 체크하고, 나 또한 자신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물어왔다. 상담 시간이 끝나고 그녀가 떠난 현관문을 바라보며, 문득 내가 이렇게 남편을 제외한 타인과 이야기를 길게 나눈 게 언제였던가 생각했다. 그리고 겨우내 답답했던 창문을 환기하고 싶어졌다. 마음 한 켠에 슬그머니 활력이 피어올랐다.
수영이나 자전거를 타는 것, 일과 육아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를 돌보는 것에는 통 연습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아기를 돌보면서 나를 돌보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나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녀의 정기적이고 소소한 질문들은 희미해지고 있었던 나라는 사람이 무미건조한 역사적 사건으로 변모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간호사의 격려에 힘 입어, 육아(育兒)와 육아(育我)에 대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진실로 튜토리얼 말풍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럴 땐 이렇게 하세요-’라는 안내 하나만 있어도 숨이 좀 쉬어졌을 텐데. 그런 내게 그녀는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화살표를 그려주었다. 아무 말 없이도, 매주 문을 열고 들어와 주는 것만으로도. 덕분에 나는 오픈 월드의 맨땅에 떨어진 뉴비처럼 무작정 울기만 하던 날들을 지나, 조금은 방향을 알고 걷는 유저가 되었다. 이 불친절한 현실 세계에도, 가끔은 NPC처럼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제는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