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난산

그 흔한 유도분만 후 제왕절개 루트를 제가 해냅니다

by 미온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어머니는 삼남매를 자연분만으로 순산하시고, 심지어 막내는 분만을 기다리던 대기실 의자에서 기다리다가 손 쓸 새도 없이 낳았다고 하셨다. 그야말로 아기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 새벽에 달려왔던 담당의가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그러셨어요."하며 멋쩍어했다고. 모계던 부계던 친척 언니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난산의 역사는 찾을 수 없었다. 초산모는 유도분만 실패 사례가 높다는 맘카페 사람들의 후기들을 심각하게 읽었어도 애써 모른척 했다. 에이, 설마 내가 난산으로 제왕절개 하겠어? 뻔한 막장 스토리처럼 너무나 예측 가능한 클리셰적 마인드인 것을 모른 채, 배는 디데이를 향해 보름달처럼 차올랐다.





"음.. 애기가 둥둥 떠 있네요. 나올 생각이 없네?"


만삭의 언덕배기 배를 초음파기기로 슥 어루보니 40주가 되어도 세입자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41주는 안 넘겼으면 좋겠다는 담당의의 말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요즘 정말 무리했던 것 같은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8월 여름의 한복판에서 매일 만삭의 몸으로 11층의 계단을 오르고, 더위를 피해 밤마다 산책을 나서서 꼬박 1시간을 걸었다. 필라테스와 헬스를 병행하는 체육관에서 운동도 꾸준히 했고, 다이소에서 짐볼도 사서 조금 위험할 정도로 통통 튀기기도 했단 말이다. 나오고 싶게 만들기로 작정했으나 정작 안에 있는 생명은 노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내 자궁이 이렇게 튼튼하다니.


담당의와 함께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3일 뒤였다. 3일 내내 집 근처 대형 쇼핑몰을 투어하며 발이 불어 터지도록 걸었다. 매일 밤마다 싸르르한 생리통과 같은 가진통이 오면 눈을 번쩍 뜨며 '순산해요' 어플로 체크했다. 오늘인가? 긴장 상태로 수축의 진통에 집중했다. 오.. 10분 정도의 간격이군. 그 다음엔? 오, 13분? 그다음엔... 아프지 않아서 그대로 긴장의 끈을 풀어버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은 내가 긴장한 것에 무색하게도 매우 멀쩡했다. 배를 쓰다듬으니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는 여기저기 배를 뻥뻥 차며 아침인사를 하기 바빴다. 나 아직 나갈 생각 없어, 엄마! 명치를 퍽 치는 아기의 발길질에 윽 소리를 내며 이를 빠득 갈았다. 이누무 짜슥.. 이러면 무력 동원할 수 밖에 없다구, 이 녀석아! 열대야와 같은 찌고 습한 밤에 치골통과 싸우며 나의 노력은 계속되었지만, 아기는 여유로웠다. 밑이 빠질 것 같은 우지끈하는 자잘한 근육들과 퉁퉁 부은 발목과 발가락들만이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그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30주 초반에 싸놔서 먼지가 옅게 얹어진 출산가방을 탁탁 털고 당당하게 집 밖을 나섰다. 남편은 나보고 긴장하지 말라며 사이드 브레이크도 풀지 않은 채 엑셀을 밟았다. 미안한데 당신이나 긴장하지 말아줄래. 이른 시각에 분만 병원에 도착했지만 생명의 출현 임박을 호소하고 있는 산모들이 두세명은 더 있었는지 커튼 뒤로 앓는 소리들이 미약하게 들렸다. 새로운 던전에 던져진 뉴비가 된 듯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간단하게 수속을 밟은 뒤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이후의 과정들은 간호사들에게 온전히 맡겨야 했다. 이 부분은 전혀 괜찮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링겔을 꽂고 관장을 하는데, 간호사의 서툰 실력 때문에 악 비명소리를 내야했다. 주사기를 무지막지하게 넣는 통에 안 그래도 만삭 배로 인해 부풀어있던 약한 부분이 방울토마토만큼 부어버렸기 때문이다.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가 투여되니 배는 점점 조여들고 있었다. 실은 촉진제가 들어오고 있는건지도 잘 몰랐는데, 그래프가 높이 치솟는다며 괜찮냐고 묻는 남편의 말에 복부 압박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도분만 할만 한데? 머리맡에 있는 산소호흡기로 장난치던 중에 커튼을 열고 나의 안부를 묻는 담당의.


"선생님, 저 하나도 안 아파요."

"아, 그래요? 그럼 오늘 아기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자궁경부가 너무 튼튼하네. 내일까지 시도해보고.. 촉진제 계속 맞으면 애기도 힘드니까 기미가 없으면 수술하시죠."


그렇다. 아프지 않다는 건 아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촉진제를 투여하면 아기는 아기집이 계속 쪼그라드니 힘들 수 있다고 한다. 괜히 안 나오고 싶다는 애 억지로 꺼내는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잔뜩 들었다. 어떤 이슈도 없는데 그냥 좀 더 있다가 할걸 그랬나. 급하게 입원을 하게 되어 에어컨이 고장난 병실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다. 4인실이었는데 그 열대야에 다른 산모들도 뒤척이고 힘들어했다.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게 된 나와 남편은 그렇게 다음날까지 별 고생했다. 결과는 같았지만 말이다.


다음날 오후 2시 반. 담당의는 내진 후 자궁문은 아직도 1cm 밖에 열리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아기가 나올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일은 순탄하게 풀렸다. 간호사는 2시 50분쯤 수술실로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어리둥절하게 끌려가게 된 나는 남편과 로맨틱한 인사를 할 새도 없이 "갔다올게."하며 결연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응." 서로 별 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인사와 끄덕임으로 새로운 뉴비 파티원을 맞을 준비를 했다.


딱딱한 수술실 침대에 제 발로 올라가서 누웠다. 간호사들의 일사분란한 준비에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 즉각즉각 피드백 했다. 소변줄 꽂는게 그렇게 힘들다던데 생각보다 하나도 안 아팠다. 허리를 동그랗게 말으라는 마취과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았다. 그 와중에 척추 마디 마다 접으며 내려가는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 것이 도움이 될 줄이야. 꼭 수술을 위해 몇일은 준비한 사람처럼, 수술방 안 일련의 과정들은 자연스럽고 순탄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이윽고 등에 꽂힌 주사바늘 사이로 차가운 약물이 척추를 타고 사르르 온 몸에 퍼졌다. 열달동안 아기를 품었던 시간들이 스쳐지나가며 눈물이 났다.


"엄마, 울면은 아기한테 산소 공급이 안돼요. 울지 마세요."


나를 신경쓰기는 하는건지,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으로 지시만 하던 간호사들이 내 눈물을 스윽 닦아주었다. 그야말로 'T식 위로'였고, 보통의 나는 그런 위로에 금방 눈물을 그치는 편이었으나 유독 흐르는 슬픔이 잠가지지 않았다. 후, 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째 참 이럴 때 울음이 나는구나. 이윽고 마스크가 천천히 씌워졌다. 나는 눈을 잠깐 감았고, 찰나의 순간으로 깜빡 떴을 때 -


"엄마, 정신 차리세요! 끝났어요!"


엥, 벌써 끝났다고..? 비몽사몽한 채로 눈을 꿈뻑이니 머리 위로 조명들이 위아래로 세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어디론가 실려가는 중이었다. 감격스러운 출산의 여정과 탯줄을 자르며 눈물을 흘리는 남편, 그리고 의료진의 축하와 같은 다정한 그림은 없었다. 멍하게 있으니 익숙한 얼굴이 나를 걱정하며 쳐다봤다. 남편이었다.


"고생했어, 너무 고생했어."

"애기 봤어? 건강하대?"

"애기 봤지. 너무 예뻐!"

"사진은?"

"여기 봐봐."


희미해지는 정신에도 아기 걱정부터 들었다. 남편이 핸드폰 화면을 비춰주기에 초점을 제대로 맞추고자 눈을 바르르 떨며 시선을 모았다. 그러자 불현듯 사시나무처럼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누가 마구 흔들어댄양 사정없이 떨리는 몸과 치아 때문에 정신은 다시 혼미해졌다. 침이 부룩부룩 나와서 거품을 무는게 느껴졌는데 나는 나의 몸 한 구석도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놀라서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는 늘상 있는 일인 양 뜨거운 물이 들어있는 팩을 내 몸 구석구석에 쑤셔넣고 곧 괜찮아질거라며 사라졌다. 지진과 함께 회복이 시작되는 건가. 불타는 뱃가북과 아득한 정신으로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갈라진 배 위로 새 생명을 꺼내는 순간, 내가 찢긴 건 살이 아니라 이전의 나였다는 걸 알았다. 고통은 생각보다 길고, 회복은 예상보다 느렸지만, 그 모든 스펙타클을 견뎌낸 끝에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젠 정말 알겠다. 출산은 끝이 아니라, 내 인생의 서사가 새로 시작된 첫 장이었다는 것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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