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힘들어도 애 둘은 낳았는데

기본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고찰

by 미온


"임신했나봐요? 아이고- 아기가 아기를 가졌네. 좋은 시절 다 갔다, 그쵸?"


쬐는 뙤약볕을 뚫고 새콤달콤한 음식을 찾아서 들른 한산한 분식집 사장님이 나의 배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붙였다. 아파트 단지가 많은 주택가에 살고 있어 고령의 여자들과 스몰톡을 많이 했던 전적이 있는 나는 그녀의 말투가 꽤 익숙했다. 허허 웃으며 제법 나온 만삭의 배를 쓰다듬자 아기가 배가 고픈지 뱃 속에서 발을 몇번 굴렀다. 열무국수 하나 주세요. 낡은 의자를 내어 앉으니 오후의 햇살이 블라인드를 뚫고 빠르게 식탁 위에 앉았다. 사장은 익숙해보이는 짧은 동선으로 김치통에서 열무를 꺼내와 서너번 둥성둥성 썰며 누구든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요새 MZ들은 참 똑똑해. 결혼도 안하고 애도 그렇-게 안 낳으려고 하잖아요. 나 때는 힘들어도 애 둘은 기본이었는데 말이지."


사장님이 쇠그릇에 열무국수를 내어주었다. 빨간 국물위로 초록 열무가 맛스럽게 올려져 눈으로 군침을 삼켰다. 부른 배가 식탁에 닿여 신경이 쓰였지만, 요령껏 목을 쭉 내빼어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열무와 달짝지근한 국물이 기가 막혀 미간을 찡그렸다. 아기도 맛있다고 발을 굴렀다.


"그래도 낳는 사람들은 낳잖아요. 저처럼."

"그러니까, 그렇게 낳아야 하는데. 근데 내 딸도 01년생인데 결혼 생각 없대요. 솔직히 나는 힘들 바에는 결혼 하지 말고 애 낳지 말라고 했어요. 나도 그렇게 좀 똑똑하게 살 걸."


간만에 찾아온 임산부 손님이 반가웠는지 오지랖 넓은 여자 사장은 이내 익숙하게 빈 의자를 빼어 앉았다. 화장기 없는 수더분한 인상의 머리를 질끈 묶은 그녀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50대로 보였다. 그녀는 멋도 모르고 남들 다 한다는 중매를 봐서 결혼했고 약 25년간 이어온 결혼생활을 후회하고 있다나. 먹고 살기 빠듯하고 힘들어도 애 둘 낳는 것이 '기본'이었다고 했다. 기본적인 것에 충실했던 그녀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똑똑한 독신으로 잘 나갔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 시대의 기본이 꼭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똑똑하게 산다'는 것의 전제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으로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싶어 대꾸 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호호- 그래도 오랜만에 임신한 분 보니 좋네. 요즘 같은 시대에 아기 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변명하듯 중얼거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대로변으로 먼 시선을 던졌다. 그녀가 말하는 똑똑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기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셈이 빠르고 돈으로 환산하는 것에 능하면 아기를 낳는 것이 무조건 손해이고 마이너스 통장을 들이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정말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반증인지도 모르겠다만, 사람은 결국 자신이 이득이 되는 대로 산다. 농경사회 때는 애를 많이 낳으면 애들이 나한테 도움이 됐다지만, 요즘은 부모님 밑에서 용돈을 받는 30대도 많다. 아이가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가슴 한편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난 똑똑하지 않을지도.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도. 언제 어디에나 힘든 시기는 있고, 전쟁통에도 사랑은 저마다 꽃 피웠는데.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면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알고 있을 텐데. 여러 생각이 엉킨 나는 열무국수의 맛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지만, 허기를 채우려 빨간 국물이 쇠바닥에 다다를 때까지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주섬주섬 갈 채비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 모유수유는 할거지요?"

"네? 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요즘은 힘들다고 안하는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 초유가 아기한테 얼마나 좋은건데. 꼭 모유수유 해요. 나는 36개월까지 완모했어. 그게 기본이야."

"네, 그랬겠지요. 안녕히 계세요."



그야말로 기본적인 분식집을 나섰다. 저마다 앞다투어 달리는 자동차를 단번에 멈춰 세운 횡단보도 위로 곧 굴러다닐 것 같은 몸을 이끌고 바쁘게 종종걸음을 쳤다. 이 시대의 기본적인 삶은 대체 무엇일까. 열무국수 첫 입은 참 맛있었는데 혀끝은 씁쓸함만 감돌았다.

금요일 연재
이전 01화온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