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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Jun 08. 2020

집을 짓습니다

혼자 아닌 여섯 가구 함께, 공동주택 아니고 공동체주택.

오층까지 집의 뼈대가 다 세워져 상량식을 했다. 상량식이란 본래 집을 짓는 데 있어서 마지막 보 얹고 대들보를 올리는 의식이라고 한다. 집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 올랐다는 것을 알리면서 앞으로의 공사 기간 동안 사고 없이 진행하는 것을 기원하는 의미다. 진짜 대들보를 올리는 형식은 취할 수 없어, 좌우 양끝에 '용'과 '구'를 서로 마주 대하도록 하고 함께 뜻을 모은 글자를 새긴 상량판을 만들었다.

*용과 거북(구)이 '물의 신'이라 화재를 막을 수 있다는 뜻

기존 건물 철거 전 빈집에 들어가서, 본격 삽질을 시작하기 전 반듯하게 고른 땅 위에서 두 차례 축문을 태우기도 해 이번엔 축시로 대신했다. 집과 관련한 시를 좀 찾아달라고 아빠에게 부탁했는데, 마땅한 걸 고르지 못했다며 직접 써주셨다. 내가 읽었고 다들 숨죽여 들었다.


2020년 6월, 여섯집에서 공용으로 쓸 1층 커뮤니티실에서 상량식 고사를 지냈다.
2020년 3월, 착공식 때 아빠를 따라 처음 절을 해보는 내 딸의 궁뎅이가 귀엽다.
2019년 12월, 열두 가구가 몇 십년간 살고 나간 빈집에 들어가 낙서를 하고 노래도 불렀다.


집을 짓는다. 작년 초 땅을 찾은 뒤 7월 말에 매입을 끝냈고, 올해 1월부터 본격 집을 짓기 시작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빠르게 어떻게 보면 더디게 여기까지 왔다. 세입자들이 살고 있는 다가구 빌라를 매입한 까닭에 공사에 들어가기 전까진 시간이 좀 걸렸지만, 서울시 공동체주택 인증과 대출심사 등 필요했던 행정적 절차까지 생각하면 그렇게 오래 시간을 허비한 셈은 아니다.

땅을 고른 뒤 공사 자체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얄궂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인근 초등학교의 개학이 늦어지면서 공사 현장은 오히려 바삐 돌아갔고, 더 부지런히 집이 지어졌다. 여러 감사의 마음을 담아 주변 가족이나 마을 이웃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는 일들은 생략할 수밖에 없었지만, 조촐하게나마 우리끼리 집을 짓는 고됨과 기쁨 속에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한층 더 가까워졌으니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집을 짓는다는 건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이었고, 생각보다도 더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과 계속 맞닥뜨리는 과정이었다. 단독주택이 아닌 여섯 가구가 사는 공동(체)주택이기 때문에 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좀 더 수월했던 것이 있었는가 하면, 어렵고 조심스러웠던 의사결정도 분명 많았다. 어쨌든 무사히 집은 다 올라갔다. 이제 정말 절반도 안 남았다.


콘크리트는 '굳기 전 성질'과 '굳은 후 성질'이라는 두 가지 물성을 갖고 있습니다. 단단하게 경화된 콘크리트와 굳기 전의 콘크리트를 구별하기 위해, 굳기 전 콘크리트를 편의상 레미콘이라고 부르자면, 레미콘은 액체와 같이 유동성이 있습니다. 굳기 전의 콘크리트가 지니는 이 유동성 덕분에, 레미콘을 펌프카로 멀리 압송할 수 있고, 콘크리트 속에 철근을 미리 심을 수 있고, 거푸집에 부어 넣어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와 공간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레미콘의 유동성과 성형 능력은 이음새(Jonit)가 최소화된 구조체를 가능하게 하고, 건축물의 조형미를 돋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채호건설 블로그 글에서 발췌

 

지난 5개월 간 현장소장님이 단체 모임방에 올려주시는 글과 사진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은 거푸집 조립 마무리하고 전기 입선합니다" "벽체 철근 배근하고 전기 설비 파이프 배관합니다" "옥상 바닥 슬라브 합판과 단열재 시공합니다" "철근 시공 후 레미콘 타설 예정입니다" 거푸집 작업, 철근 배근, 레미콘 타설, 양생 등 골조 시공의 과정을 훔쳐보고 용어를 익히면서 내가 먹고 자는 집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난생처음 알게 됐다. 참으로 많은 목숨 값을 담보한 노동 위에 내가 편히 누웠구나 생각하니 비싼 집값을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수요 공급의 궤적을 넘어서 천정부지로 뛰는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건축주 중 한 분이 지금 공사 현장 앞집에 거주하고 있어 매일 아침 옥상에 올라가 남긴 기록이다. 집이 허물어진 자리에 다시 새로이 집을 짓는다.


어떤 지역,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사느냐가 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됐다. 같은 아파트에서도 자가, 전세, 월세에 따라 신분은 다시 나뉜다. 아파트에 사활 건 이 나라가 뭔가 이상하다는 건 모두가 직감적으로 안다. 그럼에도 아파트는 모두의 꿈이다. 아파트는 재테크, 노후준비, 사다리, 희망이다. (중략)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하며 배운 건 현대 건축 기술뿐만이 아니다. 그는 스승의 건축 비전, 가치관, 철학까지 받아들였다. 김중업이 `마포아파트`를 반긴 이유는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세워진 아파트가 인간 욕망에 짓눌려 무너졌을 때, 김중업의 마음도 무너졌다. (중략) 김중업은 "건축은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자연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의 키워드는 인간과 삶이다. 건축이란 결국 인간이 인간의 삶을 위해 구축한 자연 혹은 기계라는 것이 김중업의 믿음이었다. `인간을 위한 아파트`보다 `아파트를 위한 인간`이 더 자연스러워진 지금 이곳에서 기계는 집일까 사람일까.`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끝내 살아남아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됐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본뜬 `마포아파트`는 1990년대 초 재건축을 거쳐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로 거듭났다. 지금은 연봉 5000만원 근로자가 약 20년간 단 1원도 쓰지 않고 저금해야 살 수 있는 집이 됐다.|<박정희에 맞섰던 김중업, 김수근과 다른 길을 걸었던 건축가>


결혼 생활 8년 동안 차례대로 아파트, 빌라, 아파트 살이를 했는데 다시금 다세대빌라를, 그것도 아예 지어서 살게 됐다. 애써 터를 잡은 근거지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하면서 결심한 일이다. 어떤 동네와 집이 좋은지에 대한 기준은 제 각각이겠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동산 가치' 또는 '학군'과 같이 절대적으로 획일화해 평가할 수 있는 잣대를 무작정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다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번째는 지금 내가 아이와 함께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자라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있고 대안학교와 공립학교, 사립학교가 모두 있으며 방과후놀이터, 동네책방 등 2차 돌봄이 가능한 공간과 조직이 형성돼 있다. 맞벌이를 하면서 보조 양육자 도움 없이 믿고 아이를 보육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쳐줘 있는 것이다. 공동육아를 구심점으로 세대가 바뀌는 몇십 년간 사람들이 마을의 산과 골목을 지키며 가꿔낸 성과다.


"~가 'OO동'으로 이사간대" "~는 딱지를 사뒀대" "~가 무리해서 입주권을 샀는데 그러길 잘했지, 세 배 넘게 올랐다잖아" 이런 말에 귀가 펄럭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 더 넓은 집이면 좋겠지" "서울 근교라도 아파트면 어떨까" "대형마트도 가까우면 편하겠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한동짜리 아파트에 들어왔던 것도 이 중 한 두 가지 이유로 가능한 여건을 고려하고 타협한 결과였다. 그런데 무리를 해 간신히 옮겨왔더니 층간소음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또래보다 적은 무게의 다섯 살짜리 아이가 발을 끌면서 소리 나지 않게 다니는 법을 먼저 배우고, 뭐 하나 떨어트릴 때마다 주의를 주기도 전에 '미안 미안'이라고 말하는 집.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금을 마련하면서, 의견을 조율하면서, 때론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아이의 발걸음을 생각하며 후회하지 않으려고 했다. 요즘처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때 "엄마 새집에 가면 쿵쾅쿵쾅 춤춰도 된다고 했지?" 말하는 아이를 보며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주택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자연스럽게 답하게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집이란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결국 그 안에 사는 사람, 즉 가족의 삶을 담아야 하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그 가족을 유일하게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을, 짓다> 중


"용마맨션 살 때 꼭 지금 너 같이 내가 할머니한테 널 맡기고 출근했었지" "성저빌라 살 때 네가 하성이를 어린이집서 데려오기도 했어" "어떻게 십 년을 매일 꽉 막힌 강변북로를 타고 파주에서 서울을 오가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가끔 툭하고 던지는 말들. 집이란 이처럼 하나하나 이야기가 피어오르는 역사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좋게 기억할 만한 구석이 있다. 친정에 맡겨 키웠던 아이를 데려와 부모로서 함께 매일을 살기 시작한 첫 집. 해가 깊숙이 들어왔다 천천히 나가는 서향집이라 늦게 하원 시키는 아이와 해를 보는 시간이 짧게나마 선물처럼 주어졌다. 또 바로 이전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동네서 처음 살게 됐던 곳, 아이를 갖고 낳았으며 내 강아지 하루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곳. 그 전 가양동 14평형 아파트는 말해 뭣하랴. 결혼할 때 양가 도움 일절 받지 않고 둘의 공동체로서 완전하게 독립할 수 있었던, 모은 돈과 대출로 빠듯하게 꾸렸으나 단꿈만으로도 꽉 찼던 신혼집이었다. 결국 내 삶의 기억 또한 이렇게 집의 이야기들로 재편될 것이다.

착공 전, 우리가 살게 될 집 인근의 빌라와 주택 주민들에게 약소한 선물과 함께 보냈던 그림 편지.


새 집은 성미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에 있다. 일반적인 공동주택의 분양 방식처럼 평당 단가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면적당 건축비를 기준으로 분담금을 정했다. 그 외 공용공간(옥상, 커뮤니티 시설, 주차장, 엘리베이터 등) 역시 평형과 관계없이 1/6로 나눠 지분을 가진다. 건설 시공사가 정한 일방적 분양가, 변동성이 큰 실거래가나 시세가 아니라, 살 사람들이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해 직접 결정한 자산 가치다.


유현준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금의 벽식 구조 아파트 환경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언제든 벽을 틀 수 있는 기둥식 구조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 “더 많은 테라스 공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우리 여섯 집 대부분은 건축물 구조상 필요한 내력벽 이외 가벽으로 공간을 구분해 집의 유연성을 우선으로 했다.


집마다 구조도 각기 다르다. 위아래 붙은 집은 보통 배관 때문에 주방, 화장실 위치를 맞추는데 각자 라이프스타일대로 맞춤형 설계를 했다. 우리집은 작은 평수에 일반적인 3룸 2화장실 구조이나, 2룸1화장실로 하고 응접실 개념으로 거실과 주방, 간이 서재까지 연결된 공간을 넓게 뺐다. 옆집은 고양이 4마리가 함께 살아 그를 위한 베란다 공간을 내준다. 윗집은 아직 함께 공간을 쓰는 아이둘의 방을 나중에 분리할 수 있게 문틀만 미리 달아두고, 부부 모두 키가 커서 보통 싱크대와 높이를 비슷하게 맞추는 주방 창을 간격을 높여 더 위로 뚫었다. 그 옆집은 테라스가 딸린 3,4층 복층 구조로 집을 정했고, 5층 집은 한옥 구조의 사랑방을 만든다.


저는 집의 가치는 면적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의 수’로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커다란 식탁을 둘러싸고 허물없는 친구와 홀짝홀짝 술잔을 나누면서 수다를 떨어도 좋습니다. 툇마루에 펴놓은 돗자리 위에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깜박 졸아도 좋습니다. 때로는 골똘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일에 열중해도 좋습니다. 난로 앞에서 바지런히 장작으로 불을 지펴도 좋습니다. 다락에 올라가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기분으로 책 속으로 빠져들어도 좋습니다.|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중


우리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규약을 정해 살아갈 예정이다. 큰 틀에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겠지만 살아온 방식과 배경은 다 다르니 당연히 갈등은 생겨날 거다. 그렇지만 함께 해결할 것이다. 1층 주차장 뒤로 나 있는 몇 평 남짓한 조그만 마당에 나무와 꽃을 심고, 옥상에는 처마를 내려 함께 비를 피하면서 밤하늘을 볼 것이다. 불을 피워 감자와 고기도 굽고, 착한 개와 고집 센 고양이도 키울 것이다. 아이들이 계단에서도 뛰고 문 앞 현관에서도 뒹굴며 놀 수 있게 마루를 깔 것이다. 나는 지금보다 더 작은 평수의 집에서 더 작은 냉장고를 가질 것이다. 혼자 크는 우리집 아이는 다른집 형제와 더불어 자라며 부모와 가까운 가족 이외에도 더 많은 어른들에게 배우며 지낼 것이다.


애초에 효용을 목적으로 한 경제적 선택이 아니었다. 공동체주택은 여러 면에서 간소하게 살지 못해 부끄러운 내가 선택한 최소한 아니 최대한의 대안적인 삶이다.

"세 번째 돼지가 집을 짓는데 / 벽돌로 차곡차곡 집을 짓는데 / 늑대가 나타나 후우 / 늑대가 나타나 후우 후우~ / 끄떡도 안 했데요 " 아이가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처럼 끄떡도 않는 튼튼한 집을, 즐거운 아름다운 집을, 행복이 가득한 집을 지을 거다. 이른바 히읗의세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대들보를 올리며

                                    전 종 호


성미산 오르막 빛 좋은 자리
기초에 기둥을 박고 다섯층을 높이어
오늘 대들보를 올리니 필부필녀
여섯 가구 스물네 목숨의 아름다운 집이라


집이란 모름지기
뜨거운 피를 나눈 식구들이
정직한 밥으로 몸을 덥혀 숨을 나누며
같이 걸을까 삶의 오르막
평생의 뜻을 함께 열어가는 곳이니


걸어온 길 피곤한 몸을 누이고
속상할 때마다 토닥토닥
마음 다스리는 어미 아비 있어
어여쁜 새끼들 먹이고 키울 수 있어라


모여 함께 사는 일이란
오로지 머리를 숙이고 남을 받드는 일이며
남의 눈에 작은 가시가 아니라
내 눈동자의 들보를 돌아보고
홀로 또 함께 활짝
꽃 피우는 것이란 것을 깨닫는 것이다


지붕 아래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골목 바람의 두런거림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과 손잡고 별을 세면서
조는 듯 반짝이는 별빛에 감탄하고
새와 벌레들의 작은 노래를 듣는 일이다


길 위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
정처 없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 환대의 그늘이 되고
보듬어 안에서 밖으로 온기를 나눠
활활 타오르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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