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맛을 잘 몰라요. 소주가 최고예요.
20대 초반에는 맥주를 꽤나 마셨다. 늘 술자리 게임에서의 벌칙주는 소맥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 덕에 맥주를 많이 마셨었다. 흔히 소주파, 맥주파로 나뉠 때 항상 나는 소주파의 수장이다. 맥주파를 소주파로 다시금 데리고 올 정도로 소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왜냐면 나는 맥주 맛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 맥주는 너무 배가 부르다. 500cc 한잔을 먹으면 배가 벌써 빵빵해진다. 안주를 많이 먹는 타입도 아니지만 그 가스 찬듯한 더부룩한 느낌이 싫다. 두 번째,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 한번 화장실을 가기 시작하면 시도 때도 없다. 맥주를 많이 먹은 날은 집에 가기까지가 너무 힘들다. 세 번째, 취하지 않고 비싸다. 요즘 맥주는 한잔에 만원 가까이하는 맥주들도 생겨났다. 술은 자고로 취해야 제 맛. 취함에 있어 가성비 낮은 맥주는 나에겐 적합하지 않다.
이렇게나 맥주를 안 좋아하면서도 유럽에서는 맥주를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유럽지역은 물 자체가 좋지 않아 맥주가 많이 발달되어 있었고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천카페에 앉아 한잔 즐기는 사람들,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해변에 앉아 즐기는 순간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샤워하고 나와서 냉장고를 열었을 때 물방울이 살짝 맺혀 있는 모습으로 유혹하는 맥주를 도저히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맥주를 알아갔다.
흔히 물보다 싼 맥주들도 존재하는 유럽을 다니면서 이 맥주 저 맥주 먹다 보니 나름의 좋아하는 순위가 생겼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최애 맥주 리스트를 뽑아보고자 한다.
5. 호프브로이 맥주 (Hofbrau Munchnner weisse)
흔히 뮌헨에 가면 '호프브로이'에 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노래 부르며 잔을 높게 들어 올리며 술을 마신다. 그곳의 대표적인 메뉴인 '호프브로이 뮌히너 바이세'다. 이 술의 가장 큰 장점은 잔이 1리터라는 것이다. 주문 한번 하기 어려운 유럽에서 1리터에 나오는 술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 술의 가장 좋은 안주는 학센이다. 우리나라 족발과도 비슷한 돼지요리인데 정말 찰떡궁합이다. 1리터를 어떻게 먹지라고 고민하지만 학센이 있다면 3리터는 거뜬하다. 다만 마지막 잔을 비우고 화장실에 가서도 비우고 나와야 한다.
4. 비라 모레띠 (Birra Moretti)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맥주다. 이탈리아의 맥주는 양대산맥으로 나뉜다. '페로니'와 '모레띠'.
그중 나는 모레띠를 더 좋아한다. 페로니와 맛은 비슷하지만 청량감이 더 높다. 그리고 보통 페로니는 병을 많이 먹지만 모레띠 같은 경우 생맥주로 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모레띠만의 마크도 마음에 들고 잔 역시 모레띠 한잔을 먹기에 완벽하다. 이탈리아 펍에 가면 맥주 한잔을 시키면 감자칩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모레 띠는 감자칩과도 잘 어울리고 피렌체의 대표음식인 티본스테이크와도 잘 어울린다. 주로 스테이크를 먹을 땐 레드와인을 많이 먹지만 양이 많은 티본스테이크와는 맥주가 찰떡궁합이다.
3. 필스너 우르겔 (Pilsner urquell)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다. 흔히 필스너라고 불리며 관광객 사이에선 '코젤 먹을래? 필스너 먹을래?'의 질문에서 자주 등장한다. 난 그 질문에는 항상 필스너를 선택한다. 확실히 청량감이 코젤보단 더 높고 보통 체코의 양조장 맥주집에서 바로 뽑을 때 마지막에 나오는 거품이 엣 맛있다. 보통 맥주는 거품을 많이 따르면 맛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필스너 전용잔을 이용해서 선에 딱 맞춰서 거품을 짜내면 거품과 같이 목으로 넘어오는 그 맛이 일품이다. 식당에서도 한잔에 보통 1500원 선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필스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는 단연 꼴레뇨다. 학센과 비슷한 꼴레뇨는 체코지역에서 많이 먹으며 쫄깃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이 잘 어우러진다. 껍질 먹을 때보다 속살 먹을 때는 필스너는 필수다.
2. 에스트렐라 담 (Estrella Damm)
한국에서 한 때 고급 바에서 팔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검은 병에 별표 하나만 있는 점이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건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주로 먹는 이 맥주는 바닷가에서 먹어줘야 제맛이다. 해변가는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6개짜리 묶음을 2유로에 사서 프링글스 한통 까놓고 바닷바람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최고다. 맥주는 모두 다 시원할 때 먹어야 하지만 이 맥주야 말로 시원할 때 먹어야 하는 맥주다. 묶음을 사놓고 나중에 식은 채로 먹으면 그 맛은 보리차에도 미치지 못한다. 청량감은 물론이며 약간 쌉싸름한 맛을 내는 맥주. 해변에서 이 맥주를 마시고 돌아온다면 바르셀로나 생각만 해도 이 맥주 맛이 입에서 맴돌 것이다.
1. 루겐 브로이 (Rugen Brau)
처음 먹고 너무 놀라서 마구 추천했었다. 슈퍼에 가서 '루겐브라우' 먹으라고. 하지만 현지인한테 들어보니 '루겐 브로이'라고 발음한다고 했다. 알프스의 만년설 녹은 물로 만들었다는 맥주다. 스위스에서도 인터라켄에서만 파는 맥주다. 제일 처음 접한 건 캔맥주였고 그다음은 병맥주였다. 그 이후 궁금해서 생맥주도 먹어보았다. 생맥주보다 병맥주가 맛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어느 도시보다 병의 재활용이 활발한 듯 보였다. 워낙 물이 좋은 곳이라 맥주 맛도 좋은 것 같다. 특히 융프라우 가는 길에 있는 클라이크 샤이덱 역에서 먹었던 맥주 맛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만년설을 바라보며 만년설로 만든 맥주를 먹는 맛이란.. 게다가 이 맥주의 가장 큰 장점은 숙취가 없다. 지금까지 같이 늘 만취를 하고도 아침에 물어보면 숙취가 없다고 했었다. 술에 취한 게 아니라 분위기에 취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