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페이지 Aug 08. 2020

금리단길, 다시

2020. 8. 5. 수 / 232 days

우리의 오늘은 새벽 3시에 시작되었다고 해야 맞을까, 5시에 시작되었다고 해야 맞을까? 아빠랑은 여섯 시간가량 내리 깨지 않고 잤다더니 엄마랑 자면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어!


빠빠를 먹고 기분이 좋아진 다인이를 보니 그냥 잠이 깨버려서 엄마는 간단히 목을 축였어. 바나나맛우유를 맥주캔 까듯 열어 벌컥벌컥 마셨지. 술과 카페인이 허락되지 않는 모유수유부에게 있어서 작은 사치랄까?


이유식을 먹일 때까지 아빠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어. 그래서 오늘도 맘마 당번은 엄마였단다. 아빠가 하듯 유아용 식탁의자에 널 앉히고 애피타이저로 테이블에 튀밥을 한주먹 놓아주었어. 튀밥을 먹는 동안은 보채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숟가락을 열탕 소독하고 이유식을 데우고 35~37도가량의 온도가 맞는지 확인한 후 다인이 앞에 앉았지. 턱받이를 채우자 이유식을 먹어야 한다는 걸 알았는지 다인이의 인상이 오묘해졌어.


"맘마 먹자. 아~."


목욕하기 전, 입 속을 닦아주려고 아~하면 입을 잘도 벌리면서 숟가락을 들고 아~하면 턱을 당기며 볼을 부풀리고 코를 찡그려 세상 못생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킹킹킹킹 짜증을 내는 우리 다인이. 네가 그런 얼굴을 할 때면 한 그릇도 안 되는 이유식이 왜 그렇게 많아 보이는 걸까. 다 먹일 자신이 없었지만 힘을 내서 입꼬리를 한껏 올려보았어. 밥을 잘 못 넘길 때는 튀밥을 한두 알씩 입에 넣어주며 억지로 식사시간을 마쳤단다. 중간에 잠에서 깬 아빠가 나타났지만 엄마를 도와주진 않았어. 결자해지인 걸까.


다인이가 밥을 다 먹고 나니 11시가 조금 넘었어. 12시에 금오산 가는 길인 금리단길에서 혜정이 이모를 만나기로 했기에 급히 채비를 했단다. 이틀 전, 구미에 오기로 했다가 늦잠을 자서 약속 날짜를 변경한 혜정이 이모는 다행히도 12시 전에 구미역에 도착한다더라고.


아이와의 외출은 변수가 많지. 나가서도 그렇지만 나가기 전에도 그래. 예를 들면 대변을 본다던가. 시원하게 볼일을 본 널 씻기고 집을 나섰어. 조금 늦어질 것 같아 혜정이 이모에게는 양해를 구했지. 점심을 먹기로 한 음식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천천히 오라고. 괜찮다고 하는 말이 요즘 들어 더욱 너무 감사하게 느껴진다.


점심을 먹은 곳은 아메리칸 트레이. 옷가게가 있던 자리가 얼마 전 음식점으로 바뀌었는데 건강한 먹거리와 샌드위치를 팔고 있어서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이야. 음식점 앞에 세워진 엑스 베너를 지나 아주 작은 마당을 세네 걸음 걸어가면 현관문에 도착하는데 문에 닿기도 전에 혜정이 이모가 안에서 나왔어. 그녀의 시그니처 인사를 받으며 반가운 스몰 토킹을 이어가며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단다.


"롱 타임 노 씨."


혜정이 이모는 엄마의 카톡 프로필로만 다인이를 보다가 실물을 보니 엄청 많이 자랐다며 신기한 듯 널 쳐다보았어. 그러다 다인이가 너무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며 얼굴 뚫어지겠다고 눈을 피하더라. 인상을 쓰고 쳐다봐서일까. 너의 시선을 떡뻥으로 돌리고 우리는 점심 메뉴를 골랐어. 과카몰리 샌드위치와 샐러드, 수프, 음료가 포함된 아메리칸트레이 세트와 피자. 주문을 결정하자 주차를 마친 아빠가 좋은 타이밍으로 나타났어.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집이라 오래간만에 만난 혜정이 이모와 엄마는 근황 토크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엄마는 7개월 동안 육아가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혜정이 이모는 지난번 직장을 그만두고 쉬면서 지내온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었어. 오랜만에 아빠 외의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니 뭔가 해소되는 기분이 들더라.


선물도 받았어. 가족 커플룩. 보테니컬 문양의 시원스러운 초록색 옷이라니. 너무 좋아서 내가 들어도 목소리가 신난 소리였어. 즉석에서 다인이에게 입혀보았는데 어머나 세상에. 너무 찰떡으로 어울리는 거 있지. 3 사이즈라고 적혀있었는데 6개월에서 12개월까지 입을 수 있는 옷 이래. 7개월에서 8개월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 다인이에게 찰떡이었어. 후기를 쓰고 포인트를 받아야 하니 집에 가면 꼭 입고 사진 찍어서 보내라는 말에 빵 터졌어.


식사는 정말 늦게 나왔어. 하지만 너무 맛있게 먹어서 모든 것이 다 이해되더라. 여러 가지 풀이 가미된 샐러드는 발사믹 소스와 잘 어울렸고, 새우가 올라간 과카몰리 샌드위치는 입안 가득 풍미로웠어며, 피자는 바삭하고 고소하고 달콤했어.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 수프가 나온 건 순서상으로도 타이밍상으로도 좋지 못했지만 너무 맛있어서 모든 것이 다시 한번 이해되고 말았어.


밥을 먹고는 바로 옆에 있는 커피라운지로 향했어. 금오산으로 가고 싶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실내로 이동했지. 커피도 밀크티도 맛있는 곳이야. 그래서 밀크티를 마셨습니다. 7개월 만에 마셔서 그런지 더 맛나더라. 다인이가 편히 있을 공간은 아니어서 아빠가 다인이를 안고 얼르느라 고생을 많이 했어. 덕분에 엄마는 혜정이 이모와 8월 하순부터 진취적인 일을 시작할 추진력을 얻었단다.

 집에 가는 길에서야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에게 사과를 했어. 그런데 아빠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거야. 하나도 안 힘들었다고. 오랜만에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보니 아빠는 그저 시간을 주고 싶었대. 헤헤. 아빠는 항상 너무 고마운 사람이야.


밖에 나갔다 와서 기력이 없는 엄마 아빠의 저녁밥은 치킨과 햄버거. 에 배달 앱 이벤트로 받은 할인 쿠폰을 아낌없이 썼지.


혜정이 이모에게 받은 패밀리룩의 후기 사진은 내일 보내기로 하고 잠을 청했어. 한동안 10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더니 오늘은 8시도 안되었는데 잠이 들어서 엄마는 행복했단다. 원더 윅스가 끝난 걸까? 내일도 오늘처럼 꿀잠을 잤으면 좋겠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쉬어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