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mm 02 / 일단 쏟아버리고 보는 저널링
끔찍하게 싫은 나도,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내 마음도 결국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모든 것을 숨김없이 쏟아내고 나서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어떤 것이 나인지, 또 어떤 것은 내가 아닌지.
<틈을 내는 마음>을 쓰기로 한 뒤 확실하게 시간을 빼두기로 했다.
'글로 쓰기’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되새기기 위함이자 스스로 충전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더구나 이 ‘마음'시리즈는 한 계절을 정리하는 언제부터의 연례행사 같은 것이 아니던가. 이를 위해 확보한 시간, 하필 계획에 없던 어떤 기막힌 사건을 맞닥뜨렸지만 어김없이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깟 일에 흔들릴 내가 아니다. 그 정도 바람에 흔들릴 가벼운 일이 아니다.'
쓰려던 글을 썼다. 자꾸 막혀도 그냥 일단은 썼다.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 온 마음 담아 쓰고 싶던 글들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지... 구린 글도 그 자체로 싫지만 갑자기 끼어든 방해의 잔여물로 아껴 담아온 진심을 혼탁하게 만드는 건 더 싫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문득문득 묵은 숨이 헉. 헉. 하고 나왔다. 마음을 내려놓고 할 일을 하는 ‘쌍칼파'. 이 또한 유효하지가 않구나 오늘은…. 갖가지 감정에 오락가락 널뛰는 마음을 붙들기 위해, 수단으로써,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자꾸만 매트에 앉았다. 이기적인 수련일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기댈 구석이었다. 오늘만큼은 너무 앉기 싫지만 어쩔 도리 없이 해야만 하는,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틈이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못하고 있구나.
‘지금 여기의 나’ 대신 ‘계획과 해야 하는 일’에 어거지로 머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괜찮다고, 별 것도 아니라며 덮어버린 생각은 괜찮지 않은 본심을 잠시 감추고 미뤄두려는 시도였을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 차라리 다 쏟아버리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껍데기 속에서 곪아버리기 전에.
정제 없이 써 내려간다. 말이 되든 안되든 일단은 마구 쓴다. 내가 쓰는 게 아니라 펜이 흘러간다는 느낌만을 가지고, 내 안에 정체 모르게 떠다니던 것들을 모두 종이에 옮겨본다. 그리고 본다. 종잇장에 남아있는 흔적 안에는 여실히 있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세상을 생각하고 나를 생각했던 나. 가능한 만큼 커다란 세상을 품고 싶던 나. 꼴 보기 싫은 나도, 미운 나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순간 진심이었던 나, 충실하게 마음을 다했던 내가 있다. 무엇이었을까? 왜일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실컷 들여다본다.
“다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할 건가요? 아마 그때의 최선이었을 거예요. 분명히요.”
맞다. 다른 건 몰라도 나의 최선과 진심, 그것 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후회하지 않는다. 결국은 받아들이기로 한다. 또다시 믿기로 한다. 이 모든 마음을 품고서 다시 살아갈 나를. 오늘을 딛고 조금이라도 더 지혜롭게 존재하기를 바라며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다. 복잡한 마음에 흔들거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힘은 이런 것이구나.
그렇다면, 기어코 틈을 내는 마음은 어디에서 올까?
의지를 잃었을 때 마저 ‘틈’을 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좋은 틈을 내야지'라는 의지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틈’도 의지가 필요하다. 그 무엇도 다 싫고 모든 마음의 빗장을 꽁꽁 닫고 다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다. 나도 싫고 너도 싫고 세상도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문 닫고 들어가 보자. 그리고는 비밀의 공간에 다 배설해 본다. 차라리 실컷 쏟아내고 나서 모든 나를 명확하게 눈으로 만난다. 그런 시간 뒤에는 반드시 '마음의 결말'이 있다. 복잡한 것들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속이 개운하기라도 할 것이다.
tmmm 02 / 일단 쓰고 보는 저널링, 그리고 숙고
쏟아내기.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종이와 펜, 그리고 모든 걸 쏟아내 보려는 마음. 그것이라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