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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노 Nov 17. 2024

시간에 대한 아무 말

존재를 가다듬는 틈

"그때 오래 수련을 못했었어요. 발이 다쳐서요."

무척 오랜만에 찾은 집 앞 요가원. 워낙 오래 전이기도 하고 길게 다니지도 못해서 내부가 어렴풋했는데, 공간에 들어서니 내 몸과 마음이 그곳을 기억하고 있었다. 원장님의 하얀 미소도. 그대로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와 함께 흘러간 한 시간 동안 그때를 기억하고 그 계절의 나를 기억하고 그로부터 오늘까지 다다른 나를 거슬러 톺아본다. 요가를 못하게 된 슬픔 덕분에 회복요가를 만났고ㅡ 회복요가를 하다 명상을 다시 더 배우게 되었으며ㅡ 이제는 이렇게 회복요가와 명상을 하나의 툴로 삼아 ‘쉴 틈’을 안내하고 제안하는 삶에 이르렀네... 그 시간의 흐름을 거쳐온 많은 나와, 지금의 나를 이룬 많은 사람들이 스쳐간다. 오늘 들은 원장님 목소리에 어떤 날의 내가 존재하고, 그의 그 사이 삶 또한 느낄 수 있듯이 시간은 결코 저 혼자 흐르지도 않지만 몰래 흔적 없이 흐를 수도 없다. 반드시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어딘가에 존재하게 된다.


시간은 그런 것. 참 묘하게 재밌고 귀하네. 내가 누구의 어떤 삶에 무엇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또 한 번 무게를 쥐고 생각한다.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1/ 시간

오늘의 내가 그때 그 계절로 다시 돌아갔을 때 가장 강력했던 기억은 무엇이었냐면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고 이를 악물며 몸을 움직이던 어떤 아침이었다. 어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다시 내 삶을 찾으려고 애쓰던 기억들을 붙잡고 휘청대는 몸을 아등바등 버티던 날들.

매 순간 온 힘 다해 살 수는 없으나 성심성의껏 촘촘하게 보낸 시간들이 모여 결국에는 나를 지켜준 적이 많았다. 구구절절한 마음들이 시간 사이사이에 콕콕 박혀있었으니까.

그래서 결국은 ‘성실한 삶’을 택한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성실한 시간.


2/ 다른 시간

명상을 배우다 보면 시간에 집착하지 않는 수련을 하고, 시간의 흐름보다는 존재와 경험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이를테면 몰입하다가 시간을 껑충 뛰어버린다든지 하는 아득한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어렵던 ‘무위’를 수련하면서는 더더욱 시간에 무뎌지기도 했다. 강박을 의도적으로 내려놓으려던 것이 일상에 필요한 수준의 긴장감까지 모두 녹여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요즘은 종종 하던 참이었다. 그렇다면 ‘시간’이라는 것은 피상적인 것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 다시 기억한다. 시간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우리에게 그 증거가 있다.


그러면 다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나는 적어도, 그냥 막 흥청망청 흘려보내지는 않으련다.

멍하니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말기로 한다. 대단하게 보내려는 의욕 말고 그냥 최대한 생생하게 깨어있고 싶다. 흐리멍텅 희미하게는 보내지 말아야지. 이도 저도 아닌 건 싫으니까


그리고 한 번씩 멈춰 서서 존재를 가다듬는 시간을 보내보자. 훌륭한 미래 계획을 세우는 대신, 당장 지금을 바로잡아보는 것이다. 지금 여기,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나?? 이렇게 한 번씩 부르르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럼에도 두려워 말아야지. 지난 기억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용감해야지.

그렇지만 단 하나. 내가 아닌 채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말기로 한다.  그 시간이 분명 내 존재에 흔적을 남길 것이므로.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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