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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Oct 07. 2021

나의 벗, 공황 불안 그리고 우울



개천절 연휴에 농촌 체험 프로그램으로 충남에 다녀왔다.

나름 괜찮았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았고, 나의 시골 생활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다만 마지막 강의 때 마음의 불편함과 혼탁함이 폭발했고 돌아온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강의 초반에는 여러 포인트에 공감하며 집중했다. 생각해 볼 만한 내용도 많았다. 하지만 점점 숨이 막혔다. 유년 시절 방학마다 참석하던 교회 수련회에서의 불편함과 똑같았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닌 것에 잣대를 들이밀고 본인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불편하다. 하지만 철저하게 브레인워시 당하며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시키고 불편함마저 죄책감으로 돌린 채 살던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그런 의견들이 내게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럼 대체 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가. 집으로 돌아온 날 밤에는 꿈마저 혼란스러웠고 다음 날 종일 업무에도 집중을 못 했다. 그냥 두면 며칠이고 이 상태가 지속될 것 같아 저녁에 조명을 낮추고 초를 켜고 명상 음악을 틀고 앉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마지막 강의 때문만은 아니었다.


2박 3일 동안 시간 맞춰 끼니를, 그것도 한식을 매번 먹어야 하는 일도, 남이 짜 놓은 스케줄에 맞춰 단체로 움직이는 것도, 쉴 틈 없이 들리는 사람 목소리도 계속해서 마음에 작은 돌을 하나씩 던지던 차였다.


그러고는 '이 무지렁이들아 내가 옳은데 왜 아무도 듣지 않아! 내가 운동, 공장 노동, 다 해봐서 알아! 내 말 들어!' 태도가 기저에 깔린 강의가 돌무더기를 훅 던졌다. (두 시간 내내 15년 전 미국 여행에서 마주친 1인 시위자의 피켓이 떠올랐다. 'Welcome to Dooms Day!'. 피켓 메시지는 귀엽기라도 하지. 소음도 안 만들고 강요도 안 하고) 


'저런 에너지를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마음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 꾹 참았다. 남에게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내가 나에게 큰 실례를 범한 거다. 결국 평소 같으면 전혀 무리 없었을 카페인 양에도 온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돌이 하나만 더 던져지면 공황이 올 것 같았다. 


아마 내가 편안한 상태였다면 앞에서 분노를 내뿜으며 얘기를 하든 말든 나를 보호하는 막을 세울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미 단체 생활을 견디느라 에너지를 탈탈 써버려서 힘이 없었다.



나에게 미안하다. 체면 차리느라 참고 앉아 있었던 내가 나에게 미안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에너지 덩어리를 우아하게 피하는 방법이 있을까. 만약 중간에 나갔다면 강연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대체 어느 수준까지 배려해야 할까. 


그래도 공황까지는 안 왔고, 내 상태에 대해 늦게나마 깨달았고, 다시 되짚어보며 마음과 감정을 헤아릴 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스스로 알아차리고 돌아볼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아직 상담치료를 주기적으로 받고 있고, 여전히 느닷없이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공황 낌새가 보이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다행이다.

공황과 불안, 우울이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상태를 알려주는 고마운 지표라는 걸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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