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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Feb 23. 2024

오래 기억하는 것들에 대하여

어린아이가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



어린아이의 특성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개념이 있다. 부정적 사건을 인지하고 그 상황을 수용하는 태도에 관한 것인데, 가령 이런 것.


부부 싸움이 잦은 집 아이가 부모가 싸우는 이유를 쉽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다른 아이가 야단을 맞는 걸 지켜본 아이가 마치 자기가 혼나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죽으면 자신이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실제로 둘째 아이 1학년 때 함께 아이를 등교시키던 이웃 엄마가 있었다. 근데 새학기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기발랄하던 딸이 어느 날부터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하는 거다. 알고 보니 같은 반에 늘 준비물을 안 가져오고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맨날 야단을 맞는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 친구를 야단치는 방식이 너무 비인격적이어서 학교에 가는 게 무섭다는 것이었다. 웃픈 건, 정작 매일 혼나는 그 남자아이는 안팎으로 야단맞는데 이골이 나서 학교에 잘 다니고, 되려 모범생이었던 이 집 딸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


어린아이일수록 나와 남을 독립적 개체로 생각하기보다 동일시하는 태도가 강한가. 아직 남에게 선 긋지 않고 가족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순수함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왜 부정적 감정을 자기에게 쏟아붓는 걸까. 알듯 하면서도 모르겠는 어린아이의 마음이었다.


또 한 가지는 부정적 경험을 맞닥뜨릴 때의 아이들의 태도다.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유럽 여행을 갔다 온 집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다녀와서 아이들에게 뭐가 제일 재밌냐고 한결같이 고생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거다.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오랫동안 공들여 짜놓은 박물관이며 유서 깊은 장소에 대한 인상은 어디론가 다 날아가 버리고,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매던 기억과 카메라와 여을 도난당해서 해결하러 다닌 이야기가가 후일담의 대부분이라는 것. 나 또한 추웠던 어느 겨울의 에피소드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자동차가 고장 나서 도로 한복판에서 서버린 일이 있었다. 뒤에서는 차들이 밀려 빵빵 거리고, 당황한 나는 눈치 보며 황급히 서비스업체에 연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도로에 서서 눈을 핥으며 이 예상치 못한 사건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랙카가 도착해서 우리 차를 꽁무니에 달고 끌려가는 동안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히히덕거리던 아이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어떻게든 어른들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안정감 때문이었을까?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 해피엔딩에 이른 경험 때문일까? 진화적 관점에 의하면 위험한 일에 대한 방비책을 뇌의 변연계에 새겨 넣느라 아이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아이들은 부정적 사건을 더 크게, 그리고 오래 받는다. 그게 어른들보다 더 순수하기 때문인지, 불안에 대비하는 나름의 방식인지, 뛰어난 적응 능력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물론 모든 어린아이들이 다 그런 것도 아니다. 얼마 전 교회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마음수업을 받고 느낀 건데, 사람들 마음속에는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의외로 많다. 어릴 적 엄마에게 마음껏 칭찬받지 못해서, 불합리한 방식으로 동생들 위에 군림하는 오빠를 부모가 제대로 중재해 주지 않아서, 그저 남들에게 다 있는 아빠가 혹은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 감정을 마음껏 꺼내놓고 헤아려보지 못해서. 그래서 어느덧 설움과 응어리가 된 마음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많던지.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버지가 가족을 상습적으로 폭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노름이나 계집질을 해서 재산을 거덜 낸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두 집 살림으로 가정을 파탄 낸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결함만으로도 이렇게 세상에 울 일이 많다니. 그럼 내 아들들도 나의 적절치 못했던 언행과 부족한 정서와 바빠서 미처 챙기지 못한 부모노릇으로 인해 이렇게 가슴 한구석이 뻥 뚫려 있단 말인가. 모를 일이었다.


여리고, 예민하리만치 강렬하고, 끈덕지게 적응적이기도 한 어린아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말 한마디에도 쉬이 멍들고 응어리지는 마음과 시련 속에 더욱 단단해지는 마음들에 대해서. 절대적 약자이기에 더 오래 몸에 새겨 두고두고 기억하는 것들에 대해서. 내 몸 어딘가에서 멍들었다 사라진 기억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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