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2018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이른바 '황제'는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인지라
나름 다양한 지휘자, 협연자,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말머리부터 웬 잰 척이냐 할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하려는 말을 위해서 이 정도 사족은 붙여야 할 거 같기 때문이다.
이 날의 '황제'는 설득력을 잃다 못해 듣기 거북한 수준이었다.
템포는 과하게 빠르고, 피아노의 음은 혼자 솟구치고, 지휘자와 단원들까지 전부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연주가 듣는 이 모두를 감동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듣기 불편한 수준에 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최소한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안토니 헤르무스와 예브게니 수드빈, 서울시향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최악의 연주였다.
음악을 공부한 적 없고 감상만을 즐겨온 나로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연습 부족이 아닌가 싶었다.
서울시향은 때때로 연습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처음 만나는 지휘자와 협연자, 악단이 서로 각기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성을 하나로 종합하는 일은 분명 어려울 테다.
그것이 이루어지면 그 날의 공연은 설득력을 갖고 관람객을 감동시킬 테며, 그렇지 않으면 그저 듣기 좋은 연주 정도로 사람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연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날의 공연은 그것이 너무도 부족해 보였다.
우리나라에 때때로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악단은 꽤 많다.
코리안심포니, 경기필하모닉, 부천시립교향악단 등은 브루크너나 말러처럼 어려운 곡도 쉽사리 해내며 좋은 공연을 보여준다.
하지만 평준한 연주력이 아쉽고, 또 기대 이하의 공연도 잦다. 그래서 이들 연주는 매번 볼 생각을 접게 한다.
나는 우리나라 교향악단 중 서울시향이 가장 꾸준한 연주력을 보여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시향의 공연을 빼놓지 않고 관람하는 것이고, 서울시향을 애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의 연주는 너무 가혹하다. 부디 이 공연이 올해 가장 아쉬운 공연이 되길 바란다.
덧 1. 예브게니 수드빈의 연주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원래 이런 스타일의 연주를 하는 것인가 확인해 보았다. 오스모 벤스케, 미네소타 필과 함께 한 2011년 발매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음반인데, 너무나도 말끔한 연주여서 배신감마저 들었다.
덧 2. 2부의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은 기대와 달리 너무 좋았다. 브루크너를 좋아하지만 6번은 자주 듣지 않았었는데, 헤르무스와 서울시향의 공연을 듣고 난 뒤 매우 자주 듣는다. 브루크너답지 않은 교향곡이라 브루크너(4, 7, 8, 9번)가 듣기 싫을 때 듣는다는 아이러니.
덧 3. 덧 1, 2를 고려해 볼 때 결국 이 날 공연의 문제는 서로 합이 안 맞았던 거 같다.
2월 1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February 1 THU 20:00 | Seoul Arts Center, Concert Hall
서울시향 2018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지 휘 안토니 헤르무스 Antony Hermus, conductor
피아노 예브게니 수드빈 Yevgeny Sudbin, piano
프로그램
바게나르, ‘말괄량이 길들이기’ 서곡
Wagenaar, De getemde Feeks (The Taming of the Shrew) Overture, Op. 25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Op. 73 'Emperor'
브루크너, 교향곡 제6번
Bruckner, Symphony No. 6 in A Maj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