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파약사 Feb 10. 2021

혹시 술 드셨나요?

올해는 조용한 명절이지만, 해마다 명절 시즌만 되면 약국에서 많이 드리는 제품이 있죠. 바로 숙취해소제입니다. 반가운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저도 모르게 한잔 두 잔 자신의 주량보다 더 마시게 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숙취란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대사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보통 두통, 근육통, 메스꺼움, 구토 등의 증상을 호소하게 됩니다. 약국에 오셔서 숙취의 구체적 증상을 설명해 주시면, 거기에 맞는 약이나 영양제를 드릴 수 있는데요. 문제는 특정 제품만 지명해서 구매하려 하실 때 발생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20대 중반 정도의 여성분이 약국에 오셨습니다.


"타이 O놀 하나 주세요."


"네, 혹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드시는 건가요?"


"저희 아빠가 어제 술을 많이 드셔 가지고요. 지금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시네요."


"숙취로 인한 두통 때문에 찾으시는 거네요?"


"네"


"숙취로 인한 두통일 때는 진통제를 드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타이 O놀의 경우 간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술 드셨을 때는 안 드시는 게 좋고요. 다른 소염진통제 계열도 위장장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드리지 않고 있어요. 지금 같은 경우는 술이 빨리 해독되는 게 먼저입니다. 해독에 도움을 주는 약을 드려도 될까요?"


결국 술 깨는 약 + 위장장애가 덜한 소염진통제를 드렸습니다.




타이 O 놀은 정말 유명한 약이죠. 국내 가정상비약 판매 1위, 해열진통제 중에서도 판매율 1위인 제품입니다. 하지만 많이 팔린다고 해서 그 약이 꼭 안전한 것만은 아닙니다. 타이 O 놀은 많은 분들이 드시는 만큼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고요, 잘못 드시는 경우도 많은 약입니다.


먼저 타이 O놀의 부작용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어떤 약이던 우리 몸에 들어오게 되면 흡수, 대사, 배설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타이 O놀의 경우 대사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물질이 간에 독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상용량에서 단기간 복용하시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복용하시거나, 술을 드시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시거나 하는 경우에는 간독성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간 기능이 떨어지는 급성 간 부전의 46%가 타이 O놀 성분이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있고요. (US. ALF study group registry, 1995~2015)
술과 타이 O 놀을 따로 먹었다 해도 간독성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타이레놀 복용 현황 및 요인 분석, 2017)
또한 한해 9만 명이 타이 O놀 성분을 오남용 하며, 매년 200명이 사망한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critical review : Are some people at increased risk of paracetamol-induced liver injury?)



타이 O 놀은 부작용뿐만 아니라 잘못된 적응증으로 드시는 분도 많습니다. 진통제는 크게 타이 O놀의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통칭 NSAIDs)로 나눌 수 있습니다. NSAIDs류의 진통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염효과가 있는 진통제입니다. 반면에 타이 O 놀은 소염효과는 없는 해열 진통제지요.


그래서 통증을 잡아줄 수는 있지만 염증을 억제하지는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두통일 경우에 드시거나, 염증이 없는 가벼운 통증에 드시는 것이 올바른 복용법입니다. 반면에 염증이 생겼을 경우에는 NSAIDs와 같은 소염 효과가 있는 진통제를 드시는 것이 좋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잇몸이 퉁퉁 부어서 약국에 오신 50대 중반의 성인 여성분이셨죠.


"타이 O놀 주세요."


"잇몸에 부으신 것 같은데 치통 때문에 드실 건가요?"


"네"


"지금 잇몸에 염증이 생기신 거 같은데, 타이 O 놀은 염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은 없습니다. 염증을 가라 앉히는 소염진통제를 드릴 테니 하루 세 번 복용하시고요. 치과진료를 꼭 한번 받아보셔야 합니다."


그분은 며칠 뒤에 치과진료를 받고 다시 오셨습니다. 약 드시고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는데 제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치과 치료를 받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많이 쓰이는 약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타이 O 놀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약은 올바른 복용법과 복용량을 지켜야 내 몸에 도움을 주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술 드시고 편의점에서 타이 O 놀을 사서 복용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간단한 약이라 하더라도 꼭 약사와 상담하여 올바르게 복용하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독약 에탄올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