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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liver Dec 01. 2016

치앙마이, 조금은 다른 하루

치앙마이 당일치기 트레킹

치앙마이에서의 첫 아침이다. 예약해놓은 트레킹의 가이드가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두드린다. 워낙 관광인프라가 발달된 곳이라 트레킹 선택이나 픽업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이번 여행은 라오스가 주목적이지만, 이 곳 치앙마이에 오게 되었으니 그냥 지나치기도 그렇고 해서 선택한 당일치기 트레킹이다.

숙소마다 들러 여행자들을 픽업한 12인승 승합차는 치앙마이 외곽을 달려 트레킹 장소로 간다. 코끼리 트레킹이 그 시작이다. 어제 도착해서 본격적인 여행의 궤도에 오르지 못한 몸과 마음이, 코끼리들을 보자 확 깨어난다. 저 귀엽고 커다란 동물에 올라타서 숲 속을 누비게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몰이꾼이 그 앞에 탄다. 타자마자 코끼리에게 줄 바나나를 산다. 나를 태워주는 코끼리이 정도 간식으로나마 교감(?)을 나눈다. 코끼리의 기다란 코가 바나나를 달라며 하트 모양의 콧구멍에 힘차게 콧바람을 일으킨다. 바나나 한 개를 주면 입에 넣고 금방 다시 코가 뒤로 올라온다. 덩치에 꼬마 바나나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코끼리의 나이는 서른이라고 한다. 코끼리 수명이 사람과 비슷하다는데 서른이면 젊은 축에 속하는 아이다. 코끼리의 등을 빌려 숲을 돌아다니는 것이라 너무 고맙기만 하다.

  

등 위에 앉아 코끼리가 안내하는 숲을 거닌다. 펄럭이는 커다란 두 귀도, 성큼성큼 걷는 두 발도, 걷다가 가끔 들이대는(?) 기다란 코도 하나같이 귀엽다. 앞서 걷는 몰이꾼감기에 걸렸다며 이 더위에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코를 훌쩍거린다. 나에겐 일생의 처음인 코끼리 타기이지만 매일 수십 번 같은 코스를 도는 그에겐 얼마나 지루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오늘같이 몸이 힘든 날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숲을 빠져나오자 코끼리의 식사를 위해 잠깐 멈춘다. 바나나로 배가 차지 않았던 코끼리는 여행자를 둘이나 태운채 우걱우걱 양동이의 밥을 먹는다.


숲을 지난 코끼리는 얕은 강을 거슬러 오른다. 앞뒤에선 승합차에 동승했던 여행자들이 코끼리를 타고 비슷한 포즈로 즐거워한다. 치앙마이 시내만 해도 오토바이에 승용차, 썽태우까지 복잡했는데 사십 분쯤 달려온 이곳은 별천지다. 엄마와 아기 코끼리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저 아기코끼리도 자라서 사람들을 등에 태우고 숲을 돌아다니게 되는 걸까?

코끼리를 타고난 후에는 대나무 래프팅이 기다리고 있다. 젖을까 봐 카메라는 가지고 타지 못한다. 앞에는 사공이 노를 젓고 세 사람이 뒤에 타서 숲과 강의 풍경을 즐기며 강물의 흐름을 따라 떠내려간다. 바지가 젖든 말든 철퍼덕 주저앉아서 간다.


숲의 향기를 맡으며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흘러가다가 급류를 만나면 휘청거리다가 다시 바람을 가르며 유유히 떠다니는 것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다른 배의 사공은 나이  분들인데 우리 배는 앳된 얼굴의 십대가 노를 젓는다. 어린 사공은  자기 하고 싶은 만큼만 영어를  질문을 해도  알아듣지도 한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에 장난기가 하나 가득이다. 한참 공부해야  나이에 이런 일을 하는  어떨까 하는 걱정이 스치지만 그의 환한 표정은 그것은 여행자의 기우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

선착장에서 여행자들려주고 나서 대나무 뗏목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체된다. 대나무는 대나무대로, 앞뒤, 중간에 대나무를 엮었던 끈은 끈대로 분리되어 트럭에 태워진다. 래프팅이 시작된 상류로 올라가 다시 다른 여행자들의 대나무 뗏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함께 트레킹 중인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시간을 가지는 동안 젖었던 반바지가 마른다. 1월이어도 낮엔 30도가 넘어서 뜨거운 날씨다. 이제 진짜 트레킹이 시작된다. 폭포로 향해 숲을 걷는 것이다. 지난해 산티아고 길을 걸은 이후에는 이런 길아득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괜히 반갑기도 하다. 나무에 묶은 천이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트레킹을 시작한다.


폭포까지 걸어오면서 이야기를 하게 된 사람은 한국에서 왔다는 프랑스인 대학생이다. 그는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한 지 이제 넉 달 째인 대학생인데 다른 프랑스인 교환학생 친구와 함께 태국으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는 그에게 왜 한국말을 하나도 모르냐고 묻자 수업이 모두 영어로 이루어져서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은 부끄러워해서(?) 말을 잘 안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의 영어 실력이 좋다는 건 안다고 한다.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하는 그에게 한국이 긍정적인 인상인 게 다행이다.

폭포에 다다르자 서양인들은 늘 그렇듯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갈 채비를 한다. 그러나 겨울은 겨울이라 강물은 차다. 한낮 기온은 30도가 넘어도  일교차가 커서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먼저 도착한 어떤 여행자가 물이 많이 차갑다고 귀띔을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덜 떨면서 수영을 강행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와 동행은 땀을 식힌다. 우리나라에 저런 폭포가 많아서인지, 내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 "워터폴(Waterfall)"을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여행지의 트레킹 코스들이 가소롭게(?) 느껴진다. 아니면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이런 풍경이 식상한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지루한 폭포에서의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 트레킹에 나선다. 태국의 소수민족인 카렌족 마을로 가는 길이다. 트레킹 코스가 길거나 길이 힘든 게 아니라서 모두들 편하게 걷는다. 활엽수가 우거진 길을 걷는 건 처음이어서 신기하다. 건기인 겨울이니 그렇지, 한 여름이었다면 힘든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신을 모시는 집이라는, 시골마을의 성황당 같은 곳도 지난다. 자세히 보면 페트병에 음료수 같은 것들이 바쳐져 있지만 그것도 그들의 정성이니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신성한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어느새 카렌족 마을이 가까워진다. 마을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200밧, 이 돈은 고산족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수제품 가게들이다. 여자들의 긴 목으로 유명한 카렌족 마을이다. 정적이 감싸던 고요한 마을에 여행자 몇 명이 들이닥쳐 어수선해진다. 처음엔 가까이 다가가기 민망했는데 이미 200밧을 내고 들어왔는지라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는 걸 상기하며 물건들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시선은 카렌족의 목과 무릎에 끼고 있는 링으로 가는 중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풍경을 사진에 담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진 찍는 것이 허락된 기회라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게 된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와 머플러를 만드는 언니는 카메라를 드니 온화하게 웃어 준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물론 그들의 모습이 특이하고 그런 그녀들의 삶이 현대에선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열세 살 소녀의 사진은 왠지 그냥 찍을 수가 없다. 살 것도 딱히 없지만 그들의 모습을 인쇄한 엽서 몇 장을 구입하고 사진을 찍는다. 소녀는 무심한 듯 수줍은 얼굴이다. 옆 노점의 할머니나 언니와는 달리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는 소녀의 눈길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진을 찍는 걸까? 카렌족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어린 소녀를 이런 자리에 앉혔을까? 한참 사춘기일 소녀는 무엇을 생각하며 여행자들의 카메라와 이 더운 날의 정적을 견딜까?

카렌족 마을에서 나와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에는 이미 우리를 태울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다. 치앙마이로 돌아가는 데는 아침과는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산악지역을 빠져나와 치앙마이에 다다를수록 일과가 저물어가는 시내의 도로는 번잡해진다. 그 풍경에 코끼리, 기침하던 몰이꾼, 즐겁기만 하던 대나무 뱃사공, 카렌족 장터의 소녀, 하루를 함께 한 다국적의 사람들이 오버랩된다.


발걸음에 닿는 곳에 자연스레 몸과 마음을 맡겨보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계획 아닌 계획이다. 어떤 여행 속으로 들어온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나무 사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볼 때마다 소소한 전율이 일어났다.   


오늘이 '다른 하루'라는 것, 생소한 배경화면 속으로 한 발 내디뎠다는 사실, 무엇보다 내일이 기다려진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선명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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