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말라뿌람, 벵골만의 해변
첸나이에서 멀지 않은 남인도의 바닷가 작은 마을 마말라뿌람(Mamalapuram).
한 겨울의 더위가 낯설게만 느껴지는 거리는 북인도보다 훨씬 깔끔한 느낌이다.
여행 성수기가 지난 것인지, 지나치는 여행자들보다 가게 앞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점원의 수가 더 많다. 어젯밤에 말 걸던 가게 점원들은 '코리언'을 외치며 호객 중이다. 헌책을 대여해주고 커피와 과자를 파는 작은 가게 주인이 멋지게 따라 주는 커피와 비스켓을 먹으며 동네 구경을 시작한다.
대문이 예쁘기도 하고 대문 앞의 땅바닥에 날마다 그려놓은 꼴람(Kolam)이라는 기하학적인 그림도 멋지다. 남인도에 와서 보게 된 꼴람은 신들이 땅으로 내려올 때 발을 딛는 받침대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매일 아침 집 앞에 쌀이나 돌가루, 꽃잎으로 기하학적 문양을 그려놓아 신의 축복을 가정으로 부르는 것이다. 무늬도 기하학적 이어서 어떤 것은 예술의 경지이기도 하다.
가는 길에 옷을 수선하는 가게에 들어가 복대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여권이나 큰 돈을 간직할 복대를 사지 않고 여행할 때마다 늘 면으로 만들어 쓰는데 이번에 만들어 온 게 한 개 밖에 없어서 내 것을 보여주고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어젯밤 내 핸드메이드 복대를 보고 부러워하던 동행도 한 개 만들고 싶어 한다. 가격 흥정을 하니 아저씨는 좀 귀찮은 듯 "빅 잡 스몰 머니"라며 툴툴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건 인도에 왔으니 재미로 해보는 거다.
마말라뿌람은 지금은 이렇게 작은 도시지만 원래 의미는 '위대한 전사의 도시'라고 한다. 1400년 전 팔라바 왕조의 군사기지였던 곳으로 지금도 석공예 유물이 남아있고 이 팔라바 왕조의 후예들은 석공예 기술이 뛰어나서 지금도 거리에서 직접 만든 펜던트나 보석함을 팔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걸 팔려고 몇 번을 와서는 내가 살 의지가 없다는 걸 알고도 옆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어로 간단한 호객을 할 수 있는 말을 가르쳐 달라는 거다. “안녕하세요.”, “안 비싸요.” 등등 알려준 말들을 연습하고는 눈을 찡긋하며 사라진다.
큰 길에는 단체관광객인 듯, 같은 디자인의 빨간 사리를 입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같은 곳을 향한다. 마말라뿌람이 인도 현지에서 유명한 관광지임은 틀림없다.
여행지에서 원주민들은 외국인을 보면 대부분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먼저 묻는다. 한국 사람이라 답하면 남한에서 온 거냐 북한 출신이냐가 항상 두 번째 질문이다. 그런데, 여기 마말라뿌람에서는 뭔가 다르다.
"여기 여행 온 거예요? 아니면 일하러 온 겁니까?"
당연히 여행 온 거지, 인도에 무슨 일을 하러 온다는 말일까 궁금해서 이유를 되묻는다. 알고 보니 첸나이에 현대 자동차 공장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직원인 한국인들이 첸나이에 많이 거주하는 편이고 손님 접대나 휴식 차원에서 마말라뿌람에 오는 것이다. 아까 펜던트 파는 아저씨가 그렇게 열심히 한국어 단어를 묻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제 폐허가 된 사원에서 시작해서 인도인 관광객들과 함께 석공예를 보러 동굴 산으로 간다. 석공예가 아름다운 아주르나의 고행상 앞에 선다. 거대한 바위에 인도신화가 조각되어 있다.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아르주나, 고행하는 고양이 그 앞의 쥐들, 쉬바신상 등등 하나하나 스토리가 있어서 천천히 살펴보면 재미있다. 특히 큰 코끼리 조각은 실제 코끼리와 크기가 거의 같다고 해서 더 유명하다. 설악산 흔들바위와 비슷한 크리쉬나의 버터볼이라는 돌은 굴러 떨어질 것 같은데도 균형을 유지하며 그렇게 서 있다.
햇볕이 따가워서 그늘에 앉아 동행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옆의 잔디에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은 인도 여자들이다. 바로 달려와서는 사진을 찍자고 한다. 첸나이의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인 이 여자들은 단체로 이곳에 여행 왔다가 지금 자유시간이라 쉬는 중이다. 가장 유쾌한 사람은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는서른두 살의 유부녀다. 이 분이 수간호사고 대부분은 이십 대 초반이다. 서른두 살짜리 인도아줌마 역시 결혼 안 한 내가 이상해서 몇 번을 되묻는다. 바라나시에서 마흔다섯인 인도 독신여성 몰리카도 만났건만, 이곳에서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구경거리가 된다.
이야기 나누고 내 카메라로 사진 찍어 보여준다. 그들은 카메라는 없지만 우리와 사진을 찍어서 즉석에서 인화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관광지인 이곳에 특별한 사진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진사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휴대한 소형 프린터로 즉석으로 인화해주는 시스템이다.
여자들이어서 그런지 수다가 재미있다.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 보여주기도 하고 금팔찌를 벗어서 끼워 주기도 한다. 자신들의 검은 피부색에 비해 하얀 편인 피부를 부러워하며 손을 잡기도 한다. 자신들의 단체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진 속의 남자들이 의사라며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어떤 젊은 사람을 가리킬 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이구동성 멋지다고 이야기한다. 힘들게 일 시키는 과장님과 인기 많은 신입사원이 근무하는 직장,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비슷해서 더 웃음이 나온다.
마말라뿌람은 벵골(Bengal)만에 연한 해안도시다. 인도의 동부 해변 중에서도 유명한 해변이라고 한다. 간호사언니들과 헤어져 마을을 걷다 보니 발걸음은 어느새 바닷가를 향하고 있다. 역시 인도는 소들의 천국 맞다. 모래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느긋한 소들이 여기가 인도의 해변임을 알게 해준다. 바다는 넓은 품으로 사람을 맞아준다. 아무렇게나 바지를 적시며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낯선 곳에서의 자유를 만끽한다. 마말라뿌람은 남인도로 다가가는 창이 되어주고 벵골만 바다의 넉넉함이 파도와 함께 마음속에 들어온다.
마말라뿌람은 작은 해변 마을이지만 현지인 관광객도 많은 관광지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평범한 어촌이 아닌 관광지라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가 나름 갖춰져 있다. 저녁을 먹고 어두운 거리를 더듬어 댄스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곳으로 간다. 동행이 있어 한국말 편히 나누고 어두운 거리도 두려움 없이 다닐 수 있으니 좋다.
댄스 페스티벌은 오늘만 열리는 것은 아니고 거의 한 달간 계속되는 행사다. 인도 각지의 전통 무용 공연이 펼쳐진다. 어디서 모인 건지 사람이 꽤 있다.
의자가 준비되어 있지만 잔디밭에 그냥 앉거나 누워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편안한 자세, 즐거운 마음으로 남인도의 밤을 즐긴다. 사람 북적이는 첸나이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이곳으로 오길 참 잘했다. 인도가 큰 나라인 만큼 지역별로 색다른 공연이 계속 펼쳐진다. 주말엔 인파가 많겠지만 오늘은 월요일이라 사람이 덜한 것 같다.
댄스 페스티벌을 보고 돌아오는 길, 신발가게에 들른다. 발을 공책에 대고 그려서 사이즈를 적어 놓고 진열된 신발 중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정하면 내일 낮 1시까지 가죽 슬리퍼 한 켤레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하이데라바드에서 왔다는 부유해 보이는 인도인 가족은 모두 신발을 맞추는 중이다. 수완 좋은 아저씨 덕분에 장사가 아주 잘 된다. 나라가 크고 쓰는 말이 다르니 같은 인도 사람인데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신발가게를 지나 옷가게에 들러 코끼리가 그려진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를 사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에 들어선다. 밤의 마말라뿌람은 낮보다 훨씬 더 적막하다. 유적이나 관광지가 많은 북인도에 비해 남인도가 어떻게 다를지 기대된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낯선 1월의 무더위가 너무나 반갑다. '마말라뿌람'이라는 야릇한(?) 이름의 마을에서 남인도 속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