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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른솔 Sep 30. 2015

아비뇽에서의 카우치서핑 2

지쳤던 내가 편하게 쉴 수 있었던 Michel의 집

오늘의 아침도 별 다를 것 없이 한 상 차려서 천천히 먹었다. 미셸이 직장 가는 길에 나를 시내에 태워줬다. 오늘도 어제와 다르지 않게 혼자 아비뇽을 둘러보아야 하지만 밤에는 상당히 특별한 계획이 있었다. 아비뇽과 30km 정도 떨어진 오헝쥬(Orange)라는 도시에서 유명한 오페라 축제가 있는데 나는 한국에서 표를 예매해 놓았다. 어제의 대화이다. 


“미셸. 오헝쥬 오페라 축제에 대해서 알아요? 전 사실 이것 때문에 아비뇽에 왔거든요.”

“오 그럼 알지. 나도 작년에 갔고 매년 가고 있거든. 올해는 바그너의 오페라였지...?”

라고 하며 집에 있는 팜플렛 같은 걸 보여주며 말했다.

“맞아요. 그럼 어떻게 보러 가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전 표를 예매해 왔거든요.”

“그럼 같이 가자. 난 예매를 하지 않았지만 내일 표는 아마 구할 수 있을 거야.”


혼자 열심히 돌아다닌 후 미셸과 합류하여 집에 갔다. 저녁을 간단히 먹은 후 오헝쥬로 출발했다. 미셸은 방석을 챙겼는데 왜 그러느냐 물어보니 나중에 가면 알거라는 대답을 했다. 추워질 것이라는 미셸의 말에 카디건을 챙겨서 나왔다. 역시 매년 보러가는 베테랑다웠다. 내가 걱정할 건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미셸의 차를 타고 출발 했다. 오헝쥬는 정말 작은 도시였다. 여기서 카우치서핑을 했다면 참 2박 3일도 너무 길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비뇽은 축제 기간이라 볼거리라도 있지 여기는 오페라극장을 빼면 볼 것이 없었다. 오페라극장은 정말 대단했다. 어떻게 이런 작은 도시에 이런 극장이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엄청난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엄청난 규모

입장을 해보니 좌석이 노천극장처럼 되어있었다. 의자가 있는 게 아니라 걸터앉을 수 있는 곳에 좌석 번호만 달랑 있었다. 아. 이래서 미셸이 방석을 준비한 거구나. 그러고 보니 극장 앞에는 방석을 파는 노점이 굉장히 많았는데 상당히 많은 종류가 있었다. 하지만 이 공연 한 번 보는 걸로 방석을 사는 건 아까운 일이다. 미셸 덕분에 공연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미셸은 표를 구할 수 있었고 표는 당연히 내 자리랑 붙어있을 수 없었다. 공연 후에 만날 곳을 정해놓고 입장해 각자의 좌석으로 가서 앉아 공연을 봤다.

오페라는 밤 9시 30분 정도에 시작을 했다. 예매할 때는 왜 이렇게 늦게 하는지 의아했는데 막상 가보니 이해가 되었다. 유럽은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주위가 어두워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름이어도 7시면 어두워지지만 유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유럽에서의 7시가 우리나라의 5시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전혀 어둡지 않다. 9시 30분 정도가 되니 주변이 어두워져서 무대조명이 사용가능하게 된 것이다. 오페라가 끝나니 12시가 넘었다. 집으로 곧장 와서 바로 잠에 들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미셸이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어서 미셸과 함께 아비뇽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미셸은 시립 도서관과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다녔던 성당을 보여줬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 없었지만 딱히 할 것도 없기에 따라다녔다. 시립도서관은 정말 별게 없었고 성당은 연주중인 오르간 연주가 너무 좋았다. 첫소리를 듣자마자 휴대폰을 켜서 녹음했다.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오르간의 음색을 들으니 이 연주를 듣기 위해 성당을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셸은 오늘 일본 사람들이 하는 공연을 보려고 한다고 했다. 역시 관심이 없었지만 따라갔다. 한국인인 나에게 바로 옆 나라 일본의 공연은 그렇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샤미센과 바이올린을 이용해서 배경음악을 연주했는데 이건 관심이 갔다. 샤미센 연주를 보는 것은 처음이기도 했고 전통악기인 샤미센과 바이올린의 합주도 신기했기 때문이다. 첼로와 해금의 2중주는 본 적이 있지만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합주는 흔하지 않다. 앞으로 좀 더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을 보고 피자를 먹었는데 놀라웠던 건 1인 1피자였던 것이다. 여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1인 1피자다. 이게 작은 크기도 아니고. 우리가 반판 정도 먹는 양을 한판 모두 먹는단다. 나는 3/4정도 먹고 포기했고 미셸은 내가 남긴 1/4을 대신 먹어줬다. 먹성 좋은 할아버지라기 보단 이 나라 사람들이 많이 먹는 거겠지.


“미셸. 우리나라는 이거 1/2, 1/3 정도만 먹어요. 여자들은 1/4만 먹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 아시아 사람들은 적게 먹지.”


아시아 사람들이 적게 먹긴 하나보다. 일본 연극을 하나 더 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은 바비큐를 해먹는다고 해서 좀 설랬다. 미셸의 집에 온 이후로는 ‘오늘 저녁은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식사마다 처음 보는 요리를 대접받으니 뻔뻔한 생각이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너무 얻어먹기만 하는 것 같아서 나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셸. 내가 한국 요리 해줄까요? 잘하진 않지만 파리에서는 괜찮다고들 했어요.”

“솔, 너는 손님이니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바베큐

그렇단다. 그냥 얻어먹기로 했다. 바비큐는 닭고기와 소세지였다. 바비큐답게 야외에서 먹었는데 꽤나 괜찮았다. 여행 다니면서 이렇게 잘 먹다니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무리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고 오늘의 식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아아. 내일은 뭘 먹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오늘도 역시 주말이라 미셸이 쉬어서 아침을 먹고 늘어져 있다가 아비뇽 시내로 갔다. 미셸은 한국 문화 공연이 있다고 하며 자기가 관심이 있다고 함께 가자고 했다. 솔직히 한국 사람인 내가 이런걸 봐야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역시 따라갔다. 처음에는 가야금 공연이었고 다음에는 민요에 대한 설명이었다. 민요는 ‘옹헤야’였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민요이다 보니 외국 사람들도 ‘옹헤야’는 잘 따라했고 아비뇽 연극제에 참여한 다른 한국팀이 들어와서 적극적으로 민요를 부르며 흥을 띄워 분위기는 좋았다. 

아비뇽에서 울려퍼졌던 가야금의 소리


오늘은 프랑스의 7.14혁명 기념일이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학교의 사회시간에 배운 프랑스혁명을 시작한 날이다. 왕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고 정치범을 풀어줬던 바로 그 날. 프랑스 사람들은 이 혁명에 관하여 강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며 이 날엔 프랑스 온 동네가 축제이다. 아비뇽에서는 이 도시의 명물인 끊어진 다리 근처에서 불꽃놀이를 한단다. 미셸은 나에게 이걸 보러가자고 권유했고 나 역시 알겠다고 했다.


오후 9시의 하늘. 정말이다.

미셸의 친구들과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수다를 떨며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역시 유럽의 해는 늦게 진다. 8시 반 정도부터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10시가 넘어서야 완전한 어둠이 몰려왔다. 10시 30분쯤부터 불꽃놀이가 음악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부산 불꽃 축제를 여러 번 본 나에게는 규모가 너무 작고 그저 그랬다. ‘이런 걸 보려고 그렇게 기다려야 했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불꽃놀이가 끝나고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집에 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비뇽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마무리가 좀 아쉬웠다. 

다음 목적지는 독일 뉘른베르크다. 아비뇽에서 뉘른베르크까지의 거리는 1000km가 넘는다. 중간에 다른 도시들을 넣으려 했는데 리옹이나 데종에서 카우치서핑도 잘 구해지지 않았고 아비뇽에서의 휴식이 늘어져서 어쩔 수 없었다. 클래식 공연이 있는 7월 18일까지는 바이로이트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뉘른베르크는 바이로이트를 구경하기에 거점이 될 대도시다. 뉘른베르크의 카우치호스트 매리(Marie)에게는 내일 도착한다고 연락을 해놨으니 문제는 없었다. 아비뇽에 익숙해졌고 미셸의 집은 지친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으니 이제 떠날 시간이 된 셈이다. 자 이제 프랑스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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