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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른솔 Sep 30. 2015

런던에서의 카우치서핑 1

유쾌한 아저씨 Sergio, 히치하이커 Oto와 함께

지난 이야기

 2013년 6월 28일 아침. 나는 드디어 3개월간의 긴 여행의 첫 발걸음을 뗀다. 인천-호치민-프랑크푸르트-런던. 비행기를 연속해서 3번이나 타고나서야 나의 첫 목적지에 도착한다. 원래 일정엔 런던이 없었지만 런던 필하모니아의 공연표를 주신 고마운 분 덕에 런던 일정을 급히 만들었다. 나의 유럽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밤 10시. 나는 런던에 도착했다. 저가항공인 라이언 에어(Ryan air)를 타고 스탠스텟(Stansted) 공항에 도착한 나는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로 가야했다. 걱정이 되었다. 낯선 곳에다가 시간은 10시가 되었고 어둠은 이미 몰려와있었다. 버스를 타기 전에 전화를 했다. 내 여행의 첫 카우치호스트인 세죠(Sergio)는 전화를 받아주었고 버스를 내리는 곳에 마중 나와 주기로 했다.

무사히 착륙하면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는 Ryan air. 실제로 그랬다.


 버스에서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자 세죠가 손을 흔들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에 시간이 늦은 만큼 일단 집에 가기로 했다. 이것저것 질문하는 세죠에게 나는 버벅거리는 영어로 대답해주었다. 세죠는 유쾌한 사람이었고 농담을 하면서 낄낄거리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50세의 아저씨와 25세의 청년이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놀라웠다. 그는 브라질에서 자랐지만 영국인으로 귀화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세죠의 집에 금방 도착했다. 세죠는 자기 말고도 여러 명이 사는 곳이라 조용히 해야 한다고 했다. 세죠가 집 전체를 빌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세죠에게 세를 내면서 사는 형식인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럽에는 이런 식으로 사는 경우가 많았다. 부엌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각자의 방이 있는 형태이다. 

 나는 짐을 풀고 wifi를 사용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생존 신고를 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자기로 했다. 내일은 마침 세죠도 쉬는 날이라 나에게 런던 시내를 구경시켜준다고 했다. 불을 끄고 누우니 안도감을 느꼈다. 아아. 나는 살아남았구나. 앞으로도 오늘처럼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나는 유럽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눈을 뜨자 ‘여기가 어디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기억이 돌아오며 내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세죠는 내가 ‘Good night'라고 하자마자 잠들었다며 잠을 쉽게 들어서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여행을 오기 전에 불면증을 앓은 적이 있는데 여행 중엔 항상 눕자마자 이렇게 기절하듯 잠을 잤던 것 같다. 야외활동이 많은 사람은 불면증이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 맞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날씨가 좋아서 신난 나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시리얼과 우유로 때웠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매일 비가 온다고 예보를 해도 70%는 맞는 런던의 거무죽죽한 보통 날씨와 다르게 오늘은 햇살이 환하게 거리를 반짝거리게 했다. 

 런던의 랜드마크들을 걸어서 구경하는데 세죠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더니 잠시 다른 카우치서퍼 한 명을 더 데려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이것도 여행이겠지. 그 사람도 카우치서핑을 이용해 여행 중인 것 같았다. 이름은 오토(Oto)였고 슬로바키아인이었다. 

 세죠가 이야기해주길, 세죠가 오토에게 재워준다고 제안을 했는데 오토가 처음에 세죠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거절했단다. 세죠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었지만 뭐 상관없다는 듯이 넘겼고 그 후에 나를 초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 오토가 다시 세죠를 찾는 이유는 오토가 찾은 런던의 카우치호스트가 이상했다는 것이다. 오토는 알러지때문에 여행 일정을 좀 조정했고 런던에 늦게 도착하게 되어 그 사실을 카우치호스트에게 말하고 양해를 구했는데 화를 내면서 왜 약속을 취소했냐고 소리쳤다고 한다.

 카우치호스트의 갑작스런 감정 폭발에 이상함을 느낀 오토는 세죠에게 사과를 한 후 이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한 번 재워달라고 요청을 하게 된 것이다. 카우치서핑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니 안전성을 최고로 우선해야하는데 오토의 카우치호스트처럼 성격이 거칠면 아무래도 위험한 느낌이 들 수도 있고 굳이 얼굴을 붉힌 상태로 만날 필요도 없어보였다.


세죠의 집 앞에서 오토와 세죠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역 근처에서 오토와 만났다. 오토는 침낭이 달린 큰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몸이 말라서 매우 힘겨워 보였다. 알러지때문에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세죠는 일단 밥을 먹자고 해서 우릴 중국 식당에 데리고 갔다. 런던에서 중국 식당이라 좀 아쉽긴 했지만 세죠가 사주었기에 감사히 먹기로 했다. 내가 젓가락질에 능숙한 것을 보고 세죠와 오토는 놀라워했다. 난 아시아인인데..

 오토가 컨디션이 안 좋은 것도 있고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리는 집에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세죠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잠시 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우린 머리가 띵할 정도로 아이스크림을 전투적으로 먹으며 오토의 카우치호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는 중에 그 카우치호스트의 전화가 오토에게 왔는데 오토는 매우 당황해했다. 세죠가 오토에게 전화기를 달라고 하더니 대신 전화를 받았다. 

 세죠가 그 카우치호스트에게 오토는 지금 자신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고 상황을 설명하자 자꾸 오토를 바꿔달라는 듯이 이야기한 것 같다. 세죠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자꾸 오토를 바꿔달라고 해서 화가 났는지 언성을 높이다가 결국 전화를 끊었다.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세죠는 오토에게 나에게 연락하길 잘 했다고 이야기해줬다. 

 나는 오늘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는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야했다. 세죠에게 위치를 대강 듣고 집을 나섰다. 유럽에서 보는 첫 클래식 공연이라 많이 기대되었다. 공연이 있는 로열 페스티벌 홀은 찾기가 쉬웠다. 관객의 대부분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고 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아시아인에다가 젊은 사람이라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로열 페스티벌 홀이 있던 템즈강 근처의 풍경

 집에 돌아와서는 생존신고를 하고 다음 계획을 짜기로 했다. 내일은 월요일이라 세죠는 일을 나가야 해서 오토와 나는 알아서 돌아다녀야했다. 오토는 자연사박물관과 과학사박물관을 갈 예정이란다. 나는 오토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딱히 보고 싶은 게 없었고 유명한 랜드마크들은 오늘 이미 다 봤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느슨한 여행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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