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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Jun 20. 2024

[엄마일기] 엄마 닮은 딸

엄마가 듣고 싶은 말

어릴 때 나는 엄마 말을 꽤 잘 듣는 아이였다.

물론 나름 반항심도 있었다.

그래서 자아가 자란 어느 날부터는 '싫어'라는 말대답을 하며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었다.


엄마에게 내가 툴툴댈 때마다 엄마는 마법의 주문처럼, 혹은 악독한 저주처럼 말하곤 하셨다.

"너도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그때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아이라 생각해서 자신 있게 그러겠다고 대답했었다.


엄마의 말을 잘 듣는 나는 엄마의 말처럼 '나 닮은 딸'을 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산다.

아니 나보다 더한 딸을 만났다.

우리 딸은 '네'라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엄마보다 진화한 딸)


아이를 키울수록 엄마의 인내심이 늘어난다.

아이를 키울수록 엄마의 그릇은 커진다.

좋은 엄마가 되려 할수록 엄마 노릇이 힘들어진다.

좋은 딸이 되려면 아이도 그만큼 힘들 것이다.


어릴 때 맞벌이를 하셨던 엄마는 저녁을 먹고 나면 연속극을 다 보고 밤늦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설거지를 하셨다.

나는 설거지하는 엄마 뒤에서 조잘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릇들과 물소리가 뒤섞여서 반은 들리고 반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설거지가 끝나면 얘기하자고 했고, 엄마의 설거지가 끝나면 자야 할 시간이 지나있었고,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은 나는 엄마에게 늘 꾸중을 들어야 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들었던 서운했던 말과 행동을 이제는 엄마가 된 내가 하고 있다.

"숙제는 다 했니?" (숙제는 미리미리 하랬지?)

"빨리 씻어라" (아까부터 씻는다며 아직도 안 씻었어?)

"지금 몇 시야! 빨리 자라." (늦게 자면 키 안 큰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둘째 녀석이 허리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서 조잘조잘 떠들어댄다.

이야기의 반은 들리고 반은 들리지 않는다.

"엄마가 잘 안 들리니깐,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될까?"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다시 방으로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설거지를 끝내고, 차 한 잔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면

아이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낸다.

'나도 이제 좀 쉬고 싶은데... 너무 늦었는데...'

나는 아이를 보며 어릴 때 나를 떠올린다.

우리 엄마가 화를 낸 이유가 '피곤'해서였구나.

어릴 적 나를 반성하면서도 나는 똑같이 '무서운 호랑이 엄마'로 변신한다.

내가 화내지 않으면 아이는 계속 떠들 것임을 알고 있기에...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호통을 치고, 엄하게 말한다.

"엄마는 10시가 넘어서 이제 엄마가 아니야. 괴물이야."


나도 좋은 말만 하고 싶다.

우아하게 딸을 안아주며

"우리 딸, 오늘도 고생 많았어. 오늘도 내일도 더 많이 사랑해."라고 하고 싶은데...

현실은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


엄마들아, 괜찮다.

좋은 엄마라는 주관적 기준에 매달리지 말자.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 말을

그냥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오늘도 수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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