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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사생활] 아빠의 퇴근시간

딸바보 아빠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by 연두씨앗 김세정
tempImagerDjosQ.heic 아빠와 딸들


새 학기가 되었다. 올해가 다른 새 학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2가지였다.

하나는 첫째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었다는 점과 집에서 육아와 살림만 하던 엄마가 '공부' 좀 하겠다고 일주일에 2번 정도 집을 비우게 된 것이었다.

"너희들 엄마 없어도 잘할 수 있지? 할 게 있으면 엄마가 있는 날 최대한 하고, 엄마가 학교 가서 공부하는 날엔 너희들을 도와줄 수가 없어."

"엄마 우리 밥은?"

늘 밥이 걱정이 첫째가 물었다.

"밥은 엄마가 와서 줄 수도 있고, 아빠가 주는 날도 있을 거야. 둘 다 늦으면 시켜서라도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2012년 12월,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자유였던 적이 없었다. 물론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첫 딸이라는 공주님을 모시는 공동집사였다. 남편은 딸바보였고, 그 덕분에 그나마 힘든 육아를 함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아들 육아중인 아빠와 아빠 놀아주는 딸들..


학교에서 밤늦게 돌아온 나를 남편이 식탁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애들 밥 다 먹였지?"

"응, 밥은 다 먹었는데 많이 남겼네."

식탁에는 아이들이 먹다만 음료수컵이 있었다.

"애들 음료수 사줬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라면 무조건 OK인 남편이었다.

"밥 먹기 전에 버블티와 스무디 같은 걸 사주니깐 밥을 남기지. 이런 건....."

잔소리를 하려다가 오늘 나를 대신해 아이들도 밥도 챙겨주고, 첫째 아이 병원도 데려다준 남편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근데, 윤이가 나한테 아까 그런 말을 하더라. 아빠 회사 옮긴 거 참 잘한 것 같다고..."

"회사를 옮겼대?"

"응. 옛날에 우리 동탄 살 때는 아빠가 9시 넘어서 오기도 하고 10시 넘어서 오기도 해서 잘 놀지도 못했는데 여기 집 이사하고, 회사도 옮긴 뒤로는 아빠가 일찍 와서 밥도 같이 먹고 매일 얼굴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얘들은 다 까먹었나? 거기서도 맨날 일찍 끝나면 데릴러가고,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그랬는데..."


퇴근한 아빠에게 붙어있는 껌딱지들..

회사가 멀어서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는 남편은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회사와 가까운 화성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그러면 퇴근 시간이 30분 이상 단축되고, 출퇴근 시간을 합치면 1시간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남편과 5시에 돌아와서 함께 육아를 할 것을 다짐받고 낯선 지역으로 이사를 했었다. 첫 아이 6살 때 둘째는 3살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녔고, 초등학교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휴직 신청을 하고 싶어 했고, 그 휴직 신청이 반려되는 대신 근무지가 판교로 옮겨졌다. 평소에 원하던 곳으로 출퇴근이 가능하게 된 남편은 경유차에서 전기차로 자동차를 바꿨다. 그리고 곧이어 집도 화성에서 안양으로 옮겼다. 이사를 막 끝낸 직후였을 때, 남편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했고, 출퇴근이 어려웠던 그는 3개월의 휴직을 신청했다. 둘째는 아마 그때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그때도 내 퇴근 시간은 5시였는데, 내가 수영 갔다 오는 날도 있고, 일부러 야근하고 오거나 다른 사람들 만나서 차 마시느라 집에 늦게 들어간 거였는데 말이지."

결혼하고 10년 넘게 육아에만 올인한 우리 부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에게도 힐링타임, 자기 계발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운동삼아 집 근처에 있는 수영장을 다녔고, 인맥관리를 위한 골프도 배웠다. 그리고 이사 와서는 헬스를 배웠다. 뭐든 적당히 하는 법이 없이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었기에 운동도 열심히 했다.


"이번까지만 일단 헬스 다니고, 당분간 운동 좀 쉬어야겠어. 애들이랑 밥도 먹고 같이 시간도 보내려고. 헬스 대신 공원 걷기 하려고."

며칠 전에 내가 했던 말이기도 했다. 휴직 때라면 몰라도 회사 다니면서 운동 병행하기 피곤하니 당분간 운동은 쉬고, 날씨 좋을 때 아이들과 중앙공원 걷기를 하자고 내가 제안이었다. 그때 남편은 시큰둥하게 고개만 끄덕였었다.

"내가 말할 때는 그냥 넘어가더니... 딸내미가 말하니 바로 바뀌네."

"나는 발전하는 남자잖아. 그리고 잘못도 인정하고. 맞아. 여보가 맞았어."

"그래, 멋지네. 멋진 남자네."

아빠와 딸들은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깔깔 웃던 시기가 있었다.
아빠는 늘 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남편은 지독한 딸바보였다. 그래서 결혼 후 오랜 시간을 가정에만 충실했다. 그러면서도 한 번씩 취미활동이나 교육을 핑계로 집을 나섰다. 평소에 아빠의 자리가 컸기에 아빠의 빈자리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다시 가족들에게 돌아오겠다고 선언했다. 반가웠다. 봄이 오고 있다. 곧 꽃도 필 것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남편도 나도, 어쩌면 아이들도 느끼고 있을지 몰랐다.


아이들은 알고 있다. 아빠가 지독한 딸바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아빠의 그 딸들은 아빠바보가 되었다.

아직은 사이좋은 아빠와 딸, 그 사이에 조금은 고독한 엄마인 내가 있다.

남편이 딸들만 챙겨도, 아이들이 아빠만 좋다고 난리 쳐도 서운하거나 슬프지 않다. 너무 멋진 아빠와 너무 사랑스러운 딸들이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사이좋기를 바라본다.

오래 오래 사이좋은 아빠와 딸들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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