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 있었지만 가장 가까이 있지 않았던 고양이에 대하여
나는 어릴 적 나름 많은 동물을 길렀다. 서울 한복판에 살지만 할머니집에 작은 마당이 있던 덕이었다. 강아지도 길렀고, 토끼 두 마리와 병아리, 이름 모를 새까지. 물론 동물들의 보살핌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는 밥도 주고 변도 치워주었고 나는 예쁨을, 마음을 주었다.
동물 하나하나마다 각각의 추억이 있다. 제일 처음 키웠던 진돗개는 금방 새끼를 뱄다. 그 사실을 알았던 건 갑자기 사나워진 모습 때문이었다. 여섯 살의 나에게 내 덩치만 한 개가 으르렁 거리는 모습이 무섭기보다 서러움이 앞섰다. 나에겐 으르렁거리면서 아빠나 삼촌에게는 얌전했던 진돗개가 너무 미웠다. 그 미운 마음 때문이었을까, 곧 시골로 내려간 진돗개는 다시 볼 수 없었다.
토끼 두 마리를 키웠던 적도 있다. 작은 내 두 주먹만 한 크기에 유난히 커다란 귀. 코를 찡긋찡긋 하며 날 바라보는 모습은 도저히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하지만 누가 모든 동물은 새끼 때만 귀엽다고 했던가. 두 주먹만 했던 몸뚱이는 내 머리보다 커졌고, 그 큰 덩치로 하루 건너 서로의 몸에 상처를 냈다.. 한 마리의 귀에 피가 나면 다음 날은 다른 한 마리의 꼬리에서 피가 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리고 집안 곳곳을 다 긁고 다니던 어느 날, 아빠는 토끼를 잡아먹어야겠다고 말했다.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갑자기 토끼는 없어졌고, 그날 저녁은 고기를 먹었다...(물론 그 고기가 토끼는 아니었다.)
또 어떤 하루는 집에서 짹짹 새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냐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소중한 보물단지를 꺼내듯 새 둥지를 보여주었다. 둥지 안에는 털 하나 없고 아기새 4~5마리가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번만큼은 꼭 잘 키워서 하늘로 날려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어서 아기새들에게 밥을 주고 싶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부리나케 뛰어갔다. 도착한 집은 하루 새에 불안한 적막함이 가득했다. 할머니는 아기새들은 하늘로 갔다고 했다. 동생이 새들을 목욕시켜주다 그랬다고 했다. 착한 일 하려고 했던 동생에게 아무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일찍 아기새들을 하늘로 보내줬다.
집 안에선 이렇게 많은 동물과 시간을 보냈다. 집 밖에서도 항상 나와 함께 하는 동물이 있었다. 내가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고양이. 아침 일찍 친구와 오락실을 가던 길에도, 동네 골목에서 숨바꼭질하던 곳에도, 언덕에 올라가 지는 해를 보며 가로등이 켜지는 걸 기다리는 순간에도.
뽈뽈 거리며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고양이는 골목골목 돌아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그렇게 사는 녀석이니까. 도둑고양이라는 말처럼 밥도 잘 훔쳐먹고살겠지. 넌 좋겠다.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밥도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되니까. 밤늦게 논다고 혼내는 사람도, 찾아다니는 사람도 없으니까.
한 번은 골목 구석에 죽어있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하얀색인 듯 회색인듯한 지저분하게 떡져 길게 뻗어있는 모습.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예쁘게 생을 마감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 모습이 가엽다거나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럽다고 느꼈다. 너무 어렸기 때문일까. 아마 처음으로 죽음을 본 나는 그것의 의미를 몰랐다.
비 오는 날이면 연탄창고를 개조한 집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우리 진돗개와 다르게 얼마나 많은 지붕을 넘어 다니며 비를 피해 다녔을까. 우리 토끼가 내가 주워 온 나무에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때 하루를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 사람들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또 내 밥보다 우리 아기새 밥을 더 신경 쓰고 있을 때 어떤 마음 착한 사람이 먹다 남은 밥이라도 놔두지 않았을까 찾아다녔을 테고. 그렇게 동네를 전전하다 마지막 흔적을 남기고 좀 더 편한 곳으로 갔을 테지.
요즘 길을 다니다 고양이를 보면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다 생각한다.
'내일도 여기서 만났으면 좋겠어. 오늘 나와 여기서 눈을 마주치다 깊은 밤이 되면 집으로 슬렁슬렁 들어가는 고양이였으면 좋겠어. 어디서 또 굴러다니다 이제 왔냐는 주인의 잔소리에 심드렁한 녀석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침이 되면 또 나와서 골목골목 돌아다니는 거지. 그러다 나와 또 마주치는 거야. 그렇게 매일을 반복하는 거지. 네가 그런 고양이였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