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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11. 2018

#1

실패한 공연과 그녀

지난주부터 SNS에서 반가운 소식이 보인다. 2013년 언젠가 북아현동 철거민을 위한 바자회 공연에서 처음 만났던 ㅇ씨의 앨범 발매 소식. 아마도 ㅎ님의 섭외로 그날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던 그와 우리 팀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나는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그와 다시 함께 하게 되리라는 예감을 가졌다. 


몇 달 후 나는 공연기획자 ㅋ에게 공연섭외를 받았다. ‘금상첨화’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 공연은 위안부 역사관 설립 후원을 위해 수익금을 기부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물론 나 개인이 아닌 팀 ‘게으른 오후’를 섭외한 것이었으나 당시 우리 팀은 이미 서로 모이기가 힘들어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수준이었기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좋은 기회였고, 마침 혼자서 활동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었던 나는 이 공연을 위한 프로젝트 팀 구성을 물색하였고, 마침 북아현동 철거민 바자회 공연에서 함께 했던 ㅇ씨가 떠올랐다! 당시 ㅇ씨는 이제 막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상황이었고 나도 개인 활동을 생각해보고 있었으니 의미가 있겠다(우리에게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연락했다.




“ㅇ씨, 8월 11일에 합정역 근처 씨클라우드에서 하는 공연섭외가 들어왔는데, ㅇ씨랑 저랑 둘이 함께 해볼 수 있을까요? ㅇ X 황자양 컨셉으로. 위안부 역사관 설립 후원 관련 의미가 있는 자리인가 보더라고요”


공연을 하기로 정하고, 트위터에 홍보 트윗을 올렸다. 트윗을 올리고 동네 산책을 하던 중 어떤 이에게 답 멘션이 왔다.


“그날 공연 보러갈게요! 기대되요!”


그녀는(아마도) 나와 호감을 갖고 트윗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음악이나 책 등 서로의 관심사나 비슷한 점들을 공유하던 사이. 이를테면 ‘모임별’의 노래 ‘수면 아래에서 바라보는 밤 하늘’ 유튜브 영상을 링크하며 “여름에 가장 듣기 좋은 노래” 라고 올리면 그녀가 “저도 너무 좋아하는 곡이예요!” 하며 답글을 다는.


누구에게 말을 꺼내거나 마음을 내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대가 될 수 밖에.


.


ㅇ씨와 나는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하고, 공연하는 날 조금 일찍 만나서 연습을 더 하기로 하였다. 공연하는 날에는 리허설에 충실해야 하거늘, 공연의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어설프게 연습과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이 시작하기 몇 분전쯤, 아마도 ‘그녀’로 보이는 사람이 왔다. 관객석에 앉았다. 그녀의 얼굴이나 옷에 그녀 자신의 트위터 아이디나 대화명이 적혀있는 것은 아니었고, 오늘 어떤 옷을 입고 가겠노라 따위의 언질을 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한 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공연에 대한 기억은 달랑 선명한 이미지 하나로 남은 것이 전부인데, ㅇ씨가 첫사랑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쯤 나의 트친 그녀의 얼굴과 비상구 안내 유도등이 공연장 우측 편에 걸려있던 거울로 번갈아비춰 보이던 것이었다.


앉은키가 작았던 그녀의 얼굴을 공연중에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거울을 통해서만 가능했는데, 나는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번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마다 거울 윗편으로 비춰보이던 비상구 유도등이 나의 시야를 방해하였다.


‘방해하는 것들이 참 많군’


온갖 실수와 함께 공연은 어설프게 끝나고 말았고, 음악을 꽤 많이 듣고 좋아하던 그녀에게 비춰질 첫 인상이 형편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몹시 얼굴이 따가워졌다. 함께 한 팀인 ㅂ와 ㅎ, ㅂ의 공연은 참 좋았었는데.



보통 공연이 끝나고 뮤지션들과 관객이 함께 뒤풀이를 하는 경우가 있다. 공연이 마무리되고 그런 자리가 있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런 언질이 없다.


“ㅇ씨, 나는 아는 분이 와서 저 분하고 같이 갈게요. 오늘 고생 많았고 또 연락해요~”



ㅇ씨와는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저기, 괜찮으시면 커피나 술 한 잔 하시겠어요? 이렇게 뵌 것도 반가워서. 하하.”
“네. 그래요.”



* 사진 : '아침의 향기'님 블로그 (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ae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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