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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11. 2018

#2

공연도, 만남도, 대화도.

어떤 사람과 처음으로 친밀한 자리를 갖게 되는 과정에서 그 시작과 접근 방법을 크게 후회할 때가 있다. 특히 좋은 관계를 잘 만들어나가야 하는 대상일 경우에는 더더욱. 지금껏 비슷한 모든 상황에서 철저한 준비 보다는 어쭙잖은 마음의 충동이 앞섰던 나는 이번에도 근사한 첫 자리를 만드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 것인지. 그런 어쭙잖은 마음의 충동으로 인한 액션들이 상대방에게 좋게 받아들여지려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특유의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난 언제나 그러질 못했으니까.  

.


그녀에게 커피나 술을 한 잔 하자는 제안은 성공했으나, 선뜻 건넨 말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나는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이니까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는 것이 낫겠지? 근처에 내가 가본 카페가 있었나? 친구가 일하는 ㅇ다방? 거기는 3번 출구 쪽이었던 것 같고...’


내가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가 먼저 대화를 이어갔다.


“근처에 아는 곳 있으세요? 괜찮은 곳이나.”
“아, 네. 카페에 가는 것이 좋겠죠? 음...”
“괜찮으시면 술 한 잔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시간도 그렇고.”



그녀의 반응은 내 예상보다 훨씬 적극적인 것이었다. 엉망진창인 공연을 하고 나서도 내게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착각을 하며 다시 머리를 굴렸다.


‘근처에 책이 많던 카페 2층 술집에 가본 적이 있던 것 같다.’


간단하게 술을 한 잔 하기로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


지금은 태국음식점으로 변경된 카페 2층에 있는 ㅂ술집에는 한 차례 가본 적이 있었다. 언젠가 공연 뒤풀이 2차 혹은 3차로 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음식과 분위기가 괜찮았는지 같은 것들은 별로 기억나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이어서인지 손님은 많지 않았고 우리는 적당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상대와 갖는 자리에서 어설픈 실수나 초보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나의 모든 행동이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그녀는 이내 그것을 감지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동안 남긴 트윗이나 서로 공감하며 주고받았던 이야기들과 관련된 소재로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나갔으면 좋았으련만. ‘오늘 공연을 같이 한 이는 처음 함께 해본 것이라든지, 연습을 너무 못해서 공연을 망쳤다든지, 평양냉면은 먹어보았는지’와 같은 전혀 쓸데없고 흥미도 없을 이야기들을 나는 하고 말았다. 오히려 그녀는 일상적이고, 흥미 있을만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며 어색한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망했다.


.


친밀하지 않은 여성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풀어나가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나의 고질병을 재확인하며 자책했다.


‘하, 모처럼 눈과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는데. 만회의 기회가 있을까?’


.


머릿속이 어지럽고 자신감이 없어져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 같다. 서로 비밀스럽게 연락할 수 있는 통로로는 트위터 DM만을 남겨놓은 채, 우리는 인사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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