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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칼럼 Jun 20. 2016

한 편 한 곡 – 2. '우울'

울적한 기분이다. 같이 우울하고 싶은 사람?

 ‘한 편 한 곡 시리즈’는 주제를 정하여 1주일마다 좋은 영화 한 편과 좋은 노래 한 편씩을 소개하는 방향으로 연재할 예정이었으나, 날을 잡고 올리는 게 부담스러워서 최소 1달에 한 편 이상은 게시하는 방향으로 연재할 예정인 ‘문화 소개 콘텐츠’입니다.


 요즘 들어 정리도 안 되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자꾸만 쌓여간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겠다던 다짐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 들어 자꾸만 나약해진다.

 남들처럼은 살지 않겠노라고, 쓸데없는 것에 얽매여 현실에 안주하고 싶진 않노라고 말할 때마다 겉으론 보이지 않는 주위의 비웃음은 내 신념을 강하게 만들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진전 없는 글쓰기와 막연하기만 한 미래는 내 신념을 한 번의 손짓으로도 쉽게 뭉게 버릴 수 있는 덧없는 연기로 만들어 버리고, 주위의 비웃음은 내 신념에 일말의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내가 잘못된 걸까? 그냥 남들처럼 살아가면 될 것을 굳이 어렵게 살아가려는 내가 미련한 걸까?


 의미 없는 물음들을 나에게 던져봤자 돌아오는 것은 괴로움, 남는 것은 정리되지 못할 생각뿐.

 그때마다 오는 상실감과 괴로운 현실에서의 도피책처럼 이용되는 작품들에게는 가끔씩 미안함도 느낀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지금 걷고 있는 길을 계속 가도 된다고 말해줄 사람 따위 주위에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흔들리는 나를 잡아 줄 존재를, 나는 항상 필요로 해왔다. 그때마다 집히던 것은 음악과 영화 정도, 그런데 요즘은 그마저도 가까이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도 정말 이러다가 무슨 일 나는 거 아닐까 싶지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막을 기력 따위 진즉에 없어진 지 오래다.

 우울할수록 억지로라도 기운을 내야 한다고들 하지만, 당분간은 그냥 울적한 기분으로 있고 싶다.


 오늘 소개할 작품들도 우울한 정서와 일말의 찝찝함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못되겠지만, 오늘만큼은 시종일관 우울한 정서로 글을 써보고 싶다.


 ,

<돼지의 왕 (2011)>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애니메이션 영화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우리나라여서 그런 것인지, 소규모 자본으로 완성된 영화인만큼 마케팅이 부족했던 것인지, 흥행 여부를 논하기는 뭐하지만, 그래도 알 사람은 알고 볼 사람은 본 그런 영화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 아니냐는 가벼운 생각으로 봤다간 생각보다 큰 충격과 찝찝함을 느낄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는 알아두고 감상하길 권한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영화의 첫 장면은 교살당한 여성의 시체와 한 남자의 절규로 시작한다.

 여성을 죽인 사람은 그녀의 남편 ‘경민’.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경민’은 중학교 시절 동창, ‘종석’을 찾아가 잊고 싶어 하던 15년 전의 이야기를 꺼낸다.

 종석의 회상으로 이어지는 15년 전에는 그때의 ‘경민’과 ‘종석’, 돼지에 비유되는 자신들과, 늑대에 비유되는 ‘강민’의 무리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의 태도를 보이며 개에 비유되는 아이들이 이루고 있는 교실이라는 공간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하나의 생태계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잘 짜인 생태계와 같던 교실에는 ‘돼지의 왕’을 자청하며 등장한 ‘김 철’이라는 전학생에 의해 조금씩 균열의 바람이 불게 되는데, ‘종석’과 ‘경민’은 못난 자신들을 이끌어 늑대 같은 무리들을 물리쳐줄 ‘철이’를 영웅과 같은 존재로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자신들을 위협하는 ‘철이’의 존재를 두고 볼 수 없던 늑대의 무리들은 계략을 통해 ‘철이’를 퇴학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왕이 사라진 돼지들에게 어떻게든 영웅으로 남아줘야만 했던 ‘철이’가 아침 훈화 중,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건 이후, 그들의 기억은 웃으면서는 떠올릴 수 없는 악몽으로 남게 된다.


 ‘철이’의 투신에 감춰진 비참한 내막과 작품의 마지막이 남기는 기분 나쁜 여운은 직접 감상하며 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의 마지막은 일부러 적지 않았다.

 작품은, 이 외에도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는 전학생 ‘찬영’, 도둑질을 하다 험한 꼴을 당하는 ‘종석’의 누나와 같이 작은 사건들을 같이 진행시키며, 돼지들의 억압된 분노 표출의 과정을 자세히 표현했다.

 ‘영웅’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며 자신들을 대변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이고도 나약한 대중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이 작품은, 소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우리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일침이며, 부조리한 세상에 울리는 너무나도 작은 경종이다. 영화를 보고 꼭 뭘 느껴야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용해오던 '영웅'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었나 정도는 생각해봤으면 한다.


 영화의 마지막, ‘종석’이 그의 여자 친구, ‘명미’에게 걸려 온 전화를 울면서 받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어디냐는 그녀의 물음에, 그는 생각한다.


‘이곳은 얼음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뒹구는,

 세상이다….’


 ,

<Stressed Out - Twenty One Pilots>

 오하이오 출신 밴드 ‘Twenty One Pilots’의 2집 <Blurryface>에 수록된 작품으로, 다양한 장르를 섞어 정의하기 어려운 독특한 풍의 멜로디와 과거를 추억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우울함이 인상적인 곡이다.

 사실 ‘Twenty One Pilots’라는 밴드를 이 곡을 통해서야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첫 외국 공연을 한국에서 했을 뿐만 아니라, 잦은 내한을 통해 국내에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 밴드였다.
 처음, <Stressed Out>만 들었을 때에는 힙합 듀오라고 생각했었는데, ‘안산 M밸리 록 페스티벌’에도 참여한 적이 있기에 ‘아, 락 밴드구나.’ 했는데, 그들의 다른 노래를 들어보면 정통 락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나도 무슨 소린가 싶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밴드는 뭐라고 정의할 수 있는 밴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디에서 올라온 밴드인 만큼, 음악에서부터 뮤직 비디오까지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식상한 음악들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볼 법한 뮤지션들인 것 같다.

 독특한 밴드의 독특한 멜로디를 가진 <Stressed Out>은 내가 멜로디보다는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인지 가사가 제일 독특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Sometimes a certain smell will take me back to when I was young
가끔 어떤 냄새가 날 어린 시절로 데려가곤 해
How come I’m never able to identify where it’s coming from?
그 냄새가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I’d make a candle out of it if I ever found it
찾아낸다면, 그 냄새로 향초를 만들 거야
Try to sell it, never sell out of it, I’d probably only sell one
팔아볼까, 다는 말고, 아마 딱 하나만
It’d be to my brother, ‘cause we have the same nose,
아마 내 형제가 사겠지, 왜냐면 우린 같은 냄새를 맡고,
Same clothes homegrown a stone’s throw from a creek we used to roam.
같은 옷을 입고 자라며, 같이 거닐던 냇가가 가까운 집에 살았으니까,
But it would remind us of when nothing really mattered,
그건 우리에게 거리낄 것 없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Out of student loans and treehouse homes we all would take the latter.
학자금 걱정 없는 생활? 통나무 집에서 살던 때? 당연히 후자를 택할 거야.


 현실에서의 걱정 따위 없이 가족들과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애절함이 인상적이다.

 나도 어린 시절,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까닭일까? 자꾸만 이 가사를 볼 때면, 나를 대입해보게 된다. 그때의 생활이 지금의 생활보다 나아 보이는 것 따윈 없지만, 가족들과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냈단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물론,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힘들 때마다 그 시절을 추억할 수만 있을 뿐.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우울해지곤 하는데, 우울할 때면 우울한 것만 찾게 되듯, 요즘 들어 이 노래를 듣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가사 하나에 금방 우울해 지고는 마지막 가사까지 듣고 울적한 기분으로 잠드는 게 패턴이 되어버렸다. 아직까지는 지금 상태가 문제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았으면 싶다.

We used to play pretend, give each other different names
우린 흉내 내길 하며 놀았어, 서로 온갖 이름을 붙여 가면서
We would build a rocket ship and then we’d fly it far away
우린 로켓선을 만들어 멀리멀리 날려 보내기도 했지
Used to dream of outer space but now they’re laughing at our face
우주를 꿈꿨지만, 이제 우주는 우리 면전에 웃음만 흘리네
Saying,
이렇게 말하면서,

“Wake up, you need to make money."

“정신 차려, 돈 벌어야지.”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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