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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Aug 14. 2023

일상이 지겨울 때

-월요일 아침 읽으면 좋을 에세이, 월모닝-

      

 매일 똑같은 매뉴얼대로 살아가는 것에 염증을 느끼던 어느 날, 심야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출근이고 분명 해야 할 일들이 쌓였지만 잠시나마 모든 일상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 밤에 영화를 보러 나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면 편한데, 굳이 돈과 시간을 더 써가면서 영화관으로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비효율적인 것은 맞다. 이미 넷플릭스 결제가 되어 있어 언제든 클릭만 하면 새로운 콘텐츠를 볼 수 있고, 영화관에 오고 가는 시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비효율적인 것을 감내하고라도 영화관으로 몸을 옮기는 것은, 일상을 탈출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딘가로 갈 수 있다는 것,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절, 어딘가 가고 싶은데 갈 곳이 없어 몸에 염증을 느낀 적이 있다. 본래 내향적인 사람이라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통제를 시키니 부득이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으로 산책을 나가거나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기 위해 동네 마트에 얼른 다녀오고는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완화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자, 반복적으로 일 하는 순간들이 또 다시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을 다시 회복해서 좋다고 했지만,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는 점에 소스라치게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어쩌란 말인가! 역시나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만족이 없었다. 누군가는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처럼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나쁘다고 말한다. 상태가 좋을 때는 무한 긍정의 언행이 쏟아지지만, 상태가 나쁠 때면 늘 부정적인 자아가 들끓는다.   

  

 영화관에 들어서며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영화관 속 가득 퍼지는 상쾌한 에어컨 공기와 팝콘의 향, 사람들의 웅성거림조차도 산뜻하게 다가왔다. 모두들 영화 볼 준비를 하며 화장실을 다녀오고, 티켓을 발매하며, 미리 사둔 팝콘을 집어 먹으며 웃음을 지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영화관에 오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일상에서의 나는 늘 같은 자세로 앉아 있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매일이 똑같다며 지겨움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관에 도착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티켓을 발매한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옆에 두고 새로운 공간, 새로운 공기 속에 새로운 차원에 존재하고 있었다. 일상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순간 생각했다. 아무리 코로나 할배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영화관은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될 공간이라고 말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불편한 사람들도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복작거리며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것이 바로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일일 게다. 서로 터치하지 않지만, 같은 것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 그곳이 바로 영화관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다면, 내일의 일정 따위는 잊고 심야 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어떤가. 비록 내일이 공포의 월요일일지라도 말이다. 신나는 액션 영화 한 편 보고 오면 월요병 따위는 까마득하게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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