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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Sep 11. 2023

열정의 씨앗

월요일 아침 읽으면 좋을 에세이, 월모닝

“잘 잤니?”

잘 잤냐는 인사에 아이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반응이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여름 방학 내내 완악한 엄마의 말투에 질렸을 테니 말이다.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철이 없s는 엄마인 나는,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화가 난다. 일단 험악한 얼굴이 되는 것은 물론 말투 자체가 ‘걸리기만 해봐라. 가만두지 않을 테다’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데 개학과 동시에 착한 엄마가 되었다. 온 종일 어지르던 두 아이가 학교로 가며, 다시 예전의 질서를 찾아가는 집안 분위기에 드디어 안정을 찾은 덕이다. 덕분에 곧 있으면 학교에 갈 아이에게 한없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침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어색한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준비했다. 아이가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면 빈 집에 온통 나만을 위한 에너지만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최근, 하던 일들도 모두 마무리가 되어 신경 쓸 것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으므로 이런 날은 더욱 더 기쁨이 넘친다.


“엄마, 내가 학교에 가면 좋아?”

아이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조금 당황되었지만, 최대한 지혜로운 답변으로 방어했다.

“그럼, 좋지. 땡땡이가 학교 가서 미래를 준비하고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 확실한데 좋을 수밖에.”

아이는, 잠시 동그란 눈을 요리조리 굴리더니 포기했다는 듯 식탁에 앉아 물을 마셨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혹시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형아랑 내가 학교에 가면 기분 좋아 보이더라?”

아뿔싸! 들켜버렸다.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이지만, 엄마도 인간인지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솔직하게 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했다.

“어이구, 무슨 소리야. 엄마는 땡땡이들이랑 같이 있을 때 제일 행복해. 하지만 우리 땡땡이들이 미래를 위해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하고 여영부영, 순간을 모면했다.


사실이다. 나는 두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 두 아이를 위해 그 좋아하던 일을 포기할 만큼, 나는 아이들 앞에서 진심을 다했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지치는 상황이 온다. 뭐든 균형 있게 해야 하는데 너무 올인 하니 번 아웃이 온 것이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글쓰기도 번 아웃이 와서 멈추고 있는 상태다. 두 권의 책을 준비 중인데, 예정된 계획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 나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없어 지쳐버린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시절 인연’처럼 글쓰기 또한 시절 인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물론, 글쓰기를 영원히 놓을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지금 이렇게 월모닝 에세이를 쓰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월모닝 에세이는 매주 월요일 아침까지 구독자 분들에게 전송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내가 번 아웃에 잠식되었다면 이마저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번 아웃 또한 시절 인연인 것인지, 이 또한 가볍게 지나갈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연료가 다시 보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료란, 열정의 재료 즉 누군가의 관심과 응원 그리고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보충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교정교열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전혀 다른 분야지만, 노령화 사회가 다급하게 오는 우리나라 상황 상 내 손이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계략은(?), 글 쓰는 사회복지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글을 쓰면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변화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여겨졌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내 마음이 시키는 것을 모른 척 하기보다는 어찌 될지 모를 미래를 위해 손이라도 뻗어 한 알의 씨앗이라도 떨어트려 보는 작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또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내가 달려온 길 돌아보며 지치기보다는 새로운 열정의 씨앗을 심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것은 신의 축복이다.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 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간 덕에, 나는 다시 아침 인사를 할 수 있는 엄마가 된 것처럼 말이다.


 월요일 아침, 변한 것 하나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보다는 이 또한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잠잠히 바라보길, 결국은 새로운 열정의 씨앗이 싹을 틔울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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