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직장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어 좋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겠다고 해맑게 말하던 친구가 1년 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해버렸다. 프리랜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자신은 9 to 6가 제격이라며~!
힘들었구나!
응, 힘들었어.
뭐가?
뭐긴, 돈벌이가 힘들었지.
마음대로 안되었어?
응, 마음대로 안되더라.
짧지만 간결하게 톡을 나누고, 나도 모르게 친구 마음이 확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음대로 안 되었다는 말이 마치 내 일인 것 마냥 가슴이 아팠다. 직장인으로 사는 것도 힘들지만 프리랜서로 사는 것도 힘들다.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백수로 살아도 힘들다. 아침에 눈 떠 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생물들이 다 힘들다.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내는 것이 숙명이고 책임이니까.
실은, 나 역시 프리랜서로 살아내는 것이 녹록치 않아 다시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 차였다. 글을 쓰고, 교정교열 일도 간간히 하는 삶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나이가 먹을수록 자꾸만 용기가 떨어지고, 근무 일정 잘 채우면 어쨌든 보장된 월급이 나오는 안정된 직장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월모닝 에세이를 시작하던 작년 이맘때쯤, 나는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출근을 했다. 짧지만 내가 해야 할 몫을 해내고 오면 보장된 급여가 나왔고 그로 인해 월모닝 에세이를 쓸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 싫다는 투정을 부리며.
그러나 몇 달 후, 하던 일을 놓는 상황이 되었고 완전한 프리랜서가 되었다. 온전한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문제는 자유 시간이 주어져도 결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의 성정에 있었다. 나는 늘 고군분투하며 일거리를 찾아 헤맸고, 그 일을 해내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매일 매일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늑대 같은 삶이 지겨워졌고 차라리 어느 작은 기업에라도 들어가 내 몫의 일을 묵묵히 하고 돌아오면 주어지는 월급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막상 출근하면 매일이 지옥 같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것이면서 말이다.
늘 생각하는 바이지만, 만족을 모른다. 나는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늘 불평이고 늘 현실이 힘들다. 많이 벌지 못해도 지금처럼 자유를 누리며 약간의 교정교열 일을 해도 좋다는 남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고 허공을 맴돈다. 이렇게 벌어서는 아이들 교육이나 제대로 시킬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걱정한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닌 것을 알면서 늘 걱정을 한다. 또, 또, 또.
얼마 전에도 어느 기업에 출판 업무를 하는 사람을 뽑는다기에 지원을 했다. 그런데 대학시절 성적이 워낙 나빠, 성적증명서를 내라는 멘트에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성적관리 좀 할 걸, 너무 안일했다는 후회가 남는다. 만약 내가 그 나쁜 성적증명서를 내고도 합격이 된다면, 그것은 신이 내게 사랑의 손길을 내민 것일 게다.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라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무엇을 하든 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친구가 프리랜서 그만두고 직장을 구한다는 톡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남몰래 진행 중이던 심경의 변화를 월모닝 에세이에 풀어낸다. 어쩌면 나는 일이 고픈 게 아니라 사람이 고픈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만나 함께 일하는 기쁨을 느껴본 게 벌써 아주 오래 전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크긴 하지만, 너무 혼자서만 하니 외롭다. 인간이기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프리랜서 또한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니 기뻐하라. 프리랜서도 별거 없다. 직장인이나 프리랜서나 하루를 시작하는 무거움은 똑같다.
알았다면 반갑게 인사하는 그 직장동료에게 맛있는 커피 한 잔 대접하길 바란다. 몰랐겠지만 당신이 하루를 외롭지 않게 시작할 수 있게 존재해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