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바르드 스트리트, 피어39, 코잇타워
오늘은 어제의 멘붕을 딛고 뮤니패스포트의 7일을 긁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부지런히 씻고 준비하고 10시쯤 숙소를 나섰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슈퍼볼 팬들을 태운 버스 수십대가 와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우울증 환자도 치유될 것 같았다.
오늘 브런치를 먹을 곳은 재팬타운에 있는 'Sweet Maple'이라는 곳이다. 시내랑 조금 떨어져 있어 버스 타고 15분 정도 걸렸다.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대기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혼자인 데다, 바 좌석도 상관없다고 하니 오래 기다리지 않아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제일 유명한 BIG HIP($10)과 자몽쥬스($5)를 시켰다.
자몽쥬스가 먼저 나왔는데, 전 날 나쵸에 살사 소스 퍼먹고 물을 안 마셔서 갈증이 났었는데 정말 신선했다.
이게 바로 샌란시스코 3대 브런치라는 스윗메이플의 빅힙인가요? 두툼한 팬케익을 튀겨서 각종 과일과 함께 담아낸 음식이다.
메이플 시럽은 정말 스윗했고 블루베리, 딸기, 오렌지 다 상큼하고 좋았다. 몇입 먹을 때까지만 해도 오길 넘넘 잘했고 브런치로 오후까지 버텨볼 생각이었는데 튀긴 거라 그런지 너무 느끼하고 배불러서 반쯤 먹다 말았다. 팁 포함하면 아침으로만 2만원쯤 쓴 거였지만 서빙도 평범했고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마냥 좋았다.
재팬타운이라 그런지 벚꽃같이 예쁜 꽃나무가 있었다. 보통 한국에서 꽃이 필 무렵에는 황사가 와서 붉은 벚꽃과 파란 하늘은 같이 보기 힘든데 이런 사소한 것도 너무 좋았다. 근처엔 한글 간판도 많았다.
이대로 쭉 오늘 하루를 시작해보려 했으나 입술에 바를만한 틴트나 립스틱을 다 숙소에 놓고 온 사실을 깨달아서 다시 숙소로 ^^.. 셀카엔 필수라.. 아침부터 다이나믹한 하루ㅎㅎ
지도 안 보고 대충 걸어 다니다 보면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였던 샌프란시스코 성모승천 대예배당(The Cathedral of Saint Mary of the Assumption). 아치형의 둥근 지붕에 수직 수평 선이 교차되는. 안은 더 웅장하다고 하는데 들어가 보진 않고 버스를 탔다.
숙소에서 립스틱을 챙겨서 다시 나왔다! 일단 익숙한 Union Square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SAKS FIFTH AVENUE랑 MACY'S도 있고
애플 스토어는 그냥 무조건 들어가 본다.
옷 구경도 하고 S.F.P.D. 도 보고 지도는 켜보지도 않고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걸으니 어떤 터널이 나왔는데 전혀 어디로 가는 길인지도 몰랐지만 신나게 걸었다. 오르막길이라 좀 힘들긴 했는데 이땐 오르막의 서막이었다는 걸 몰랐다.
터널을 나오니 중국어로 쓰인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지도를 켜보니 차이나타운이었다. 드래곤 게이트랑 올드 세인트 성당 쪽이 아닌 Stockton St.로 왔다.
미국 은행 이정돈 그냥 읽을 수 있지! 훗 하며 한자들을 읽어보려 애썼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어려웠다.
정~~말 중국인이 많아서 중국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시장에 사람도 많아서 발에 치이고 바글바글한 데다 시끄러워서 어서 벗어나기로!
바로 코너를 돌아 Broadway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차이나타운까지 어느 정도 올라온 뒤였는데도 아직도 저렇게 고지가 안보였다.
간간히 그늘이 있긴 했지만 내리쬐는 해에 등산을 하고 있자니 좀 더웠다. 목이 너무 말랐다. 물을 사고 싶어도 주변에 온통 주택가라 살만한 데가 없었다.
한블럭 지날 때 마다 뒤를 돌아보는데 이미 지평선이 안보인지는 꽤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오르막은 끝도 안보였다 ㅋㅋㅋㅋ
주차되어있는 차들 중에 범퍼가드를 해놓은 차들이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평지에도 다닥다닥 주차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가파른 길에 하려면 부딪히는 게 다반사일 것 같았다. 나는 샌프란에서 차 끌고 다니래도 못 끌고 다닐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풍경이 정말 예뻤다. 베이 브릿지와 트랜스 아메리카가 한눈에 보였다. 다른 곳에 비해서 길이 조금 넓어서 시야가 확 트였다.
브로드웨이 & 존스 (Broadway & Jones St.)에서 20분이나 멍하니 풍경을 감상했다. 카메라 렌즈엔 다 담기지 않지만 광각인 눈으로 다 담았다. 도심 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인과 베이 브릿지, 하늘색 하늘과 파스텔톤 집들이 예뻐서 같이 셀카 브이 v
바닷가 쪽으로도 시야가 트였던 그린 & 존스 (Green St. & Jones).
해안가로 쭉 뻗은 도로, 피어와 알카트래즈 섬을 볼 수 있었다.
필버트 & 레벤워스 (Filbert St. & Leavenworth) 가기 전 블럭인 것 같다. 코잇타워가 보이고 세인트리피터 대성당도 살짝 보인다.
샌프란시스코를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은 언덕에 올라가는 것이라는 말이 진리인 것 같다. 높고 가파른 언덕일수록 더 뷰가 좋았고, 부촌이었다. 한 블럭 한 블럭 교차하는 지점마다 보이는 풍경도 너무나 다양했고 다 비슷해 보이는 집들 같지만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다.
샌프란의 주차는 진기명기를 보는 것 같다. 경사가 심한 블럭들은 차들이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90도로 주차하도록 법으로 지정되어 있다.
평행 주차 시 차는 도로의 진행방향으로 주차되어야 하며, 언덕 주차 시엔 상행/하행에 따라 타이어를 인도 쪽으로 틀어서 주차해야 한다. 자세히 보면 타이어 방향이 살짝씩 틀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시 차가 밀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지정된 주차 법규라고 한다. 어렵다..!
계속 걷다 보니 전에 케이블카만 타고 목적지만 딱 볼 땐 못 보던 것들을 많이 마주쳤다. 한 테니스 코트에 들어갔는데 하늘 위에 지어놓은 운동장 같았다. 언덕 꼭대기에 있었는데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여있었다.
동서남북으로 주택가들과 금문교, 피어가 다 보였다. 테니스를 치고 있던 사람들이 공 맞을까 위험하니까 나가 달라고 해서 뻘쭘해하며 나왔지만.. 이런 천국 같은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휴일을 보내고 있다니 정말 부러웠다.
1:1 농구 배틀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목이 말라죽을 것 같았다. 쉬면서 옆에 노모를 데리고 산책 나온 할머니한테 근처에 물 살 수 있는 그로서리 스토어가 어디인지 물어볼까 말까 30분은 고민했다.. 너무나 전형적인 백인 st 같아서 무시당할까 봐 혼자 괜히 끙끙 앓다가 조심스레 여쭤봤는데 너무도 친절히 가르쳐줬다. 근처에 없다고........ 저 멀리 내려가야 된다고..ㅎㅎ 감사하다고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게 그 유명한 러시안 힐이구나. 옛 빅토리안 하우스풍의 예술 감각이 넘치는 건물들이 있는 러시안 힐!
얼마 가지 않아 Lombard St. 를 만날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Lombard St. 샌프란시스코의 집들은 어느 하나 똑같은 디자인이 없다. 창문 모양도, 문 높이도, 색깔도 알록달록하다. 어두운 색깔도 없고 다 파스텔톤으로. 괜히 예쁜 도시가 아니다.
노 스케이트보드, 5 마일 이하 그리고 주민을 위하여 정숙!
혼자 셀카를 찍고 있으면 꼭 "내가 찍어줄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본인들의 사진을 부탁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한다. Sure! 그리곤 으레 하는 말이지만 "나도 찍어줄게" 하고 어떤 부부의 사진을 찍어줬다.
삼성 종주국에서 온 나에게 갤럭시 핸드폰을 건네며 가운데 카메라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친절히 도 설명해주길래 "I work for Samsung. "라고 허세 부리며 다 같이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내려다보는데 오픈 에어링 하며 내려가는 빨간 머스탱을 보고 너무 멋있어서 기절할 뻔했다.
저 섹시한 뒤태 좀 봐. 꼭 머스탱 타야지..!
오후 4시가 되도록 아침에 먹은 브런치가 다였다. 목이 너무 말라서 피어 39 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미 서부의 상징 인 앤 아웃도 있었고, 2년 전 그리고 내일 자전거를 빌릴 렌탈샵도 있었다.
피셔맨즈 와프! 오랜만에 보는 배 키. 멀리 알카트라즈 섬도 보였다. '더 록'을 안 봐서인지 별 감흥이 없어 한 번도 안 가봤다.
분주하지만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부댕 빵집과 아이튠즈 아이디를 적어놓고 버스킹 하는 뮤지션들까지-
그리고 일용할 양식 수지맞은 갈매기.
CVS에서 물을 한 병 사고 근처에 더 볼만한 게 있나 구글맵을 켜봤는데, 저번에 못 가봤던 코잇타워가 생각났다. 코잇타워에서 노을을 보면 좋을 것 같아 서둘러 근처의 뮤니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교통 패스를 사놓고 하루 종일 걸어 다녔었네.
버스를 타고 20분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면 종점인 코잇타워에 도착한다. 코잇타워는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발생한 화재 속에서 소방관들의 구조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Coit부인이 재산 1/3을 기여해서 만든 원형탑으로 1933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재산의 1/3만 기여했는데도 만들었단 말이지..?
망원경이 25센트지만 꼴랑 25센트를 아낀다고 동전 넣지는 않았다.
입장료는 8달러다. 티켓은 손등에 찍는 도장이다. 박물관처럼 꾸며놓은 1층을 구경하며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수동 엘리베이터가 온다. 수동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8명 정도만 태울 수 있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야 한다. 꼭대기에 다다르면 계단 37개를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이렇게 천장이 뚫려있고 사방으로 창문이 나 있다.
높은 곳에서 샌프란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베이브릿지, 금문교, 작은 집들 하나하나까지 눈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잘 보인다. 트윈픽스에서 봤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미국 대도시는 고층빌딩이 밀집해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작은 집들과도 상당히 조화롭다. 꽁치같이 생긴 제2 롯데월드만 딸랑 우뚝 솟은 그런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해가 지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그림자, 노을에 점점 색이 물들어가는 파스텔톤 집들, 반짝이는 바다 다 좋았다. I'm really in ♥ with SF!
바라만 보고 있어도 너무 좋아서 한참을 사진 찍고, 구경하며 한 시간 동안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샌프란 스카이라인과 함께 셀카 찍고 내려가기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모르는 곳에서 내렸다. Yelp를 켜서 근처 평점 좋은 식당 아무데서나 먹으려고 하는데 영 맘에 드는 피자집이 안보였다.
너무 배고파서, 배가 등에 붙어서, 허리가 아파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러고 있어도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지만 쳐다봐도 상관없었다. 힘이 없어서 한참을 주저앉아 있는데 해가 지니까 추워졌다. 급히 케이블카를 타러 갔는데 운행을 안 하는지 안 왔다.. 그래서 또 아무 버스나 주워 탔다.
리틀 이탈리를 지나 유니언스퀘어 쪽으로 향하는 버스였다. 아무래도 고기로 영양분을 채워야 할 것 같아서 2년 전에 가봤던 스테이크 집을 가기로 했다. 이런 고단한 날엔 맥주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여권을 숙소에 두고 나와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 들어간 김에 걸칠 옷 좀 가지고 나온다는 게 그냥 나와서 덜덜 떨며 스테이크 가게로 향했다.
기본 세트와 버드와이저 한 병을 시켰다. 이렇게 해서 $23가 조금 넘는다.
사진은 맛있어 보이지? 가격이 싼 만큼 맛도 싸다.
'샌프란시스코 맛집'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집인데 아무래도 ㄴㅇㅂ 블로그에 광고한 것 같다. 가보면 매장 안에 70% 이상이 한국인이다. 2년 전에도 맛이 없었어서 그냥 그 날 고기 상태가 안 좋았나 보다 했는데 이날이 더 안 좋았다. 질기디 질기다.
여러분 제 글을 본다면 테드 스테이크 하우스 가지 마세요. 그래도 메쉬 포테이토에 케찹 범벅해서 먹는 건 꿀맛이었다. 그래도 맥주를 마셔서 다행이었다.
다음날 자전거를 오래 타야 해서 일찍 들어갔다. 사진 정리하고 동영상 편집하며, 벌써 여행을 6일이나 했고 앞으로 열흘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