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 없다는 문장의 영속성에 대하여
며칠 전에 동기들끼리 차를 타고 놀러 가다 AUX 케이블로 노래를 틀 일이 있었다. ㄱ자형 3.5파이 케이블이 들어가지 않아 범퍼를 벗겼더랬다.
핸드폰 언박싱 하자마자 그대로 전면 쉴드를 붙이고 케이스 끼운 뒤 잘 벗기지 않는 성격인데 들뜬 마음에 그랬다. 이틀이 지났지만 귀찮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범퍼 벗긴 생 아이폰이 너무나 예뻐서 그냥 그렇게 다녔다.
문제는 오늘 야근을 하면서부터다. 살짝 늦은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도저히 멍청해서 안 되겠어서 공부 좀 해야겠다 느끼고 샌드위치를 사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어폰을 연결한 폰을 보며 터덜터덜 걷고 있었는데 순간 놓쳐서 돌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회사 반경 몇백 미터 이내에서는 욕을 안 하는데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아.. 당장 폰을 들고 살펴보는데 귀퉁이가 찍히고 찌그러져있다.
미국에서 사 오자마자 국내엔 쉴드가 없어서 2주 동안 쓰지도 않고 박스 안에 모셔뒀던 나의 아이폰6s에 처음으로 흠집이 났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앱등이 중에 상 앱등이가 없다고 느끼겠지만 나는 아이패드도 없는 삼위일체도 안된 노말 유저다.
너무 짜증이 났다. 멍청하지만 않았어도, 아니 그냥 멍청해도 잘 하고 싶은 욕심만 없었어도, 아니 그냥 길에서 핸드폰을 꺼내지 말걸, 떨어뜨리지 말지. 왜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것일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 같이 영원한 것을 좋아한다. 아니 적어도 나는 처음 상태 그대로의 것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한다. 실제로 5s는 단 하나의 흠집도 없이 잘 썼고 지금 집에 잘 있다. 근데 1년도 안 된 6s가 이렇게 되어버려서 너무 우울한 것이다.
흠집이 난 곳을 보고 또 보고, 고요 속에서 혼자 외친다. "내 아이폰 찍혔어!"
나는 그저 "핸드폰이 찍혀서 속상하겠다. "라는 말이 듣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구구절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기스 어떡해.."라고 답은 정해져 있는 소리를 할 테고 그럼 "네가 천 번 만 번 속상해할 성격인 거 알지만 속상하겠다. "라고 이해해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기라면서 굳이 이렇게 다 보이는 곳에 쓴 이유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