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타델 아울렛, 엔젤레스 하이웨이 드라이브
버스를 탈 때면 앞이 훤히 보이는 기사님 바로 뒷자리를 선호하는데 2년 전 출근길 그날도 그 자리에 앉아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장소도 기억한다. 장충동 신라호텔 앞 삼거리였는데, 어떤 하얗고 쌔끈한 차 후미등이 빨갛게 /// 세 칸이 있는데, 방향지시등처럼 123 123 꺼졌다 켜졌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장 차덕후 친구에게 방향 지시등이 123 123 켜지는 차가 뭐냐고 했더니 바로 포드 머스탱 사진을 보내왔다. 그 날이 머스탱에게 치인 날이었다. 차에 치였다니 어감이 이상하지만 덕통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바로 머스탱을 렌트해서 미국 도로를 달려보는 것!
알라모 LA공항 지점에서 차를 픽업했다. 차 꺼내 주시는 직원분한테 싱글벙글하며 내 핸드폰 배경화면(머스탱 5세대 GT)을 보여주니까 웃으면서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냐고 했다. 당연히 모르죠!
"컨버터블 탑을 열 때는 이렇게 하고 손잡이를 돌려서 끝까지 당긴 다음 버튼을 눌러주는 거야. 음.. 나머진 다른 차랑 비슷해. 아! D밑에 S 보이지? 이건 Speed인데.. 사용할 일이 별로 없을걸? 그래도 쓴다면 조심해. Don't drive too fast!" 기분 좋게 렌트카 회사를 나섰다.
꿈★은 이루어진다
바로 산타모니카 비치에 가고 싶었던 카페로 향했다. 평일 정오쯤이었는데 거리가 나름 가까운데도 1시간이나 걸린다길래 뻥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LA 시내 교통체증은 무지하게 심각했다.
신호 걸린 동안 머스탱 내부도 좀 찍어주고 우훗우훗 너무 예쁘다
언니 안녕하세요 민트 모히또 하나 주세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Philz Coffee Mint Mojito!
비치 쪽은 주차비가 비싼 데다 아울렛을 찍고 돌아오려면 시간이 없었기에 얼른 테이크아웃해서 나왔다.
2016년 최고의 허세짤. 너무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림
데저트 힐 아울렛이 멀어서 일부러 가까운 시타델 아울렛에 가는 건데도 예상 시간이 1시간쯤 나왔다.
그렇게 출발한 지 30분이나 지났을까요................ 친구한테 전화해서 "나 머스탱 운전 중이다 너무 신나 낄낄" 라며 집중력 상실한 찰나.....
BMW X3랑 접촉사고를 냄..................
아니 샌프란에서 주행 신호에 우회전하려고 서있었더니 뒤차가 빵빵대길래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그냥 눈치 봐서 쓱 가는구나 했는데........ 여긴 신호도 없는 주택가였는데... 쓱 봤을 때 왼쪽에서 차 안 오길래 그냥 우회전해서 가려는데 어디선가 "빵!!!!!"소리가 들려서 멈춘 뒤엔 이미 늦었다. 근데 진짜 콩! 하고 박았다.
머스탱 범퍼에 요만큼 덴트 난 정도. 심지어 저 중에 반은 그냥 때 묻은 거라 손으로 지우니 지워지던데.
어쨌든 처음 내보는 접촉사고에 당황했다. 그래도 운전이 무서워서 가기 전 미국 운전 문화 글을 몇 개 읽고 갔는데 사고 낸 뒤에 절대 I'm Sorry 하지 말라는 글을 읽었다. 100% 내 잘못을 시인하는 거라고.
내렸더니 웬 아저씨가 나한테 "아 이거 새 찬데!!!!!!!!"하면서 진짜 짜증을 냈다.
71년생의 조나 홀씨.. 근데 한국에서 접촉사고 내도 너무 놀라서 벌벌 떨면서 보험회사 증서 보고도 옆에 있는 엄마한테 이거 번호(숫자) 좀 읽어달라며 너무 떨려서 무슨 숫자인지 모르겠다며 그랬던 나인데..
미국에서 머스탱 빌리자마자 사고를 냈으니 오죽했을까.
혼자 엄청 짜증내다가 일단 내 여권 사진 찍으라 하고, 미안하지만 너가 나보다 영어를 잘하니까 보험회사에 전화 좀 해주라고. 미국은 사고 나면 경찰에 신고해야 된다던데 경찰 불러야 되냐 하면서 물어보다가, 내 보험 풀커버라니까 갑자기 온화해졌다.
일단 내가 보험회사에 먼저 전화를 걸어서 예약번호 입력하고 이름 등을 말하며 절차를 기다리는데, 내가 여기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하니까 갑자기 상담원이 모두 괜찮냐고 다친 사람은 없냐고 막 걱정을 했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전화받는 매뉴얼이 있긴 할 텐데 너무 놀랐어서 막 혼자 감동 먹었던 기억이..
ㅋㅋㅋㅋㅋㅋㅋ무튼 내가 상대방을 바꿔줄 테니 이 사람과 이야기해달라고 말하고 바꿔줬다.
그랬더니 조나 홀씨가 그 상담원한테 내 욕을 겁나 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직진이고 이 여자는 우회전이니까 100% 그녀 잘못이라고. 그러면서 진짜 풀커버 맞냐고. 자기 이거 새 찬데 디스크 브레이크 나간 거 같다고...... 미친 내 머스탱 범퍼 까진 정도를 보고도 그러냐? 그 정도로 비머 디스크 브레이크 나갈 거면 퉁 치면 모닝처럼 나뒹굴어야 돼. 아오.. 하튼 옆에서 아저씨가 하는 말 만으로 대화를 유추했다.
보험 처리가 거의 다 되고 그 남자는 "다친 덴 없어요. 근데 좀 많이 놀란 것 같아 보여요" 라며 내 상태를 설명했다. 그러더니 통화를 끝내고는 자동차 검사 맡기고 보험회사에 연락하면 된다며 쿨하게 가버렸다.
이렇게 쿨하게 끝날 일인가.... 그는 쿨했지만 나는 쿨하지 못했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뭘 좀 검색해 보려고 점멸등을 한참 찾은 다음—뒤지다 뒤지다 못 찾아서 구글에 검색해봤다. 머스탱 점멸등 위치..—미친 듯이 보험회사에 전화했다. 그러면서 앵무새처럼 "제가 아까 사고가 났었는데~" 하자마자 모두들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영어 못하는데 전화로 하니까 더 의사소통이 안돼서 답답했다. 접촉사고가 났는데, 풀커버인데 상대방 차량 파손 정도에 따라 추가 차지를 내야 하는지 궁금하다 했더니—물론 그렇게 들리진 않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저거다—렌트 기간을 연장하고 싶으면 추가 차지를 내야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고 정말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1시간을 꼬박 길에 서있었다. 시간이 아까워서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차를 빌린 곳으로 돌아갔다.
처음엔 반납하는 줄 알고 직원이 이쪽 길이 아니라고 계속 다른 길로 유도했지만 점멸등을 켜고 내려서 사무실로 갔다. 이래저래 정황을 설명하는데 자꾸 추가 비용이 없다고 그래서 의아했다. 풀커버는 아니었는데 대인, 대물, 자차가 돼서 다 되는 것 같긴 했는데 추가 비용이라던지 이런 게 없어서 몇 번이고 되물은 다음 허무하게 없다는 대답만 듣고 다시 길을 나섰다.
뭐야 괜히 시간낭비 했잖아..아울렛 고고
올 아. 시타델 아울렛에 왔다.
폭풍 쇼핑을 하고 나니 어느덧 해가 졌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사람들이 별 보러 드라이브 가자고 했다. 나도 오늘 운전 별로 못해서 아쉬운 김에 같이 따라나섰다!
일단 인앤아웃에서 배를 채워주고! 이때 야외에 주차장 옆에서 먹고 있었는데 어떤 미친 사람이 주차된 차 앞에서 후진을 넣다가 갑자기 전진기어를 넣더니 쾅 박고 주차장을 나가 버렸다. 사람들이 "나 번호판 봤어" 이러면서 알려주는데 피해 차량은 한국인들이 렌트한 렌터카.. 가해자가 가버려서 왜 그런 진 모르겠지만 그냥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 댄 게 맘에 안 들었던 것 같다고 한다. 참 특이한 나라야..
일단 그리피스 천문대에 들러 야경을 보기로 했다.
사실 다른 곳들의 야경에 비하면 LA 야경은 정말 볼 거 없지만 그리피스 천문대 야경은 필수 코스니까
돌각대 위에 놓고 셀프 카메라도 찍고!
여기서부터 뚜껑을 열고 출발하기로 했다! 아마 인터넷이 안 터질 테니 네비 찍고 끄지 말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기로 했다.
엔젤레스 국유림을 가로지르는 엔젤레스 크래스트 하이웨이. 낮에 가도 꾸불탕꾸불탕 해서 어려운 길이었는데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같이 어두운 곳이라 하이빔을 켜고 달렸다. 밤인 데다 산 속이라 추웠는데 엉뜨를 켜고 오픈에어링을 하니 몸은 뜨끈하면서 바람은 시원하고 너무 좋았다.
어느 정도 안쪽까지 들어왔을 때 점멸등을 켜고 서는 일행의 차를 보고 나도 섰다! 그냥 LA 밤하늘에서도 별이 잘 보였는데 여기까지 오니 도시의 불빛도 사라지고 별이 내 눈앞으로 쏟아지는 듯했다.
차의 불빛을 끄고 눈의 암순응을 기다린 다음 별을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서로 어디 있는 지도 안보이고 결정적으로 너무 무서워서 라이트를 켜뒀다. 이때를 틈타 머스탱과 사진 찍어달라고 조르기.
너무 예쁘지 않나요? 이 후미등에 반했었는데. 알고 보니 앞이고 뒤고 다 예쁘긴 하다만.
정신 못 차리시는 분.. 엄마 나 얘랑 살래
어찌 보면 미국에서의 일정 중 이날이 제일 좋았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가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풍경을 만났다. 관광지만 다니기 바빴는데 밤늦게까지 일탈하며 놀았던 것 같다.
운전하느라 제대로 못 보긴 했지만 정말 하늘이라는 천장이 온통 별로 나한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조수석에 앉았던 친구와 내내 우와~ 우와~ 감탄사만 연발했다.
집에 가는 길엔 낮에 렌터카 회사 직원이 말했던 S 기어를 넣어 보았다. 한 10초간 빨리 달리다가 '아차 경찰' 싶어서 급 정직한 속도로 달렸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머스탱 성능 다 못써도, 스포츠 모드로 놓으면 핸들 민감해져서 무서워서 코너링 잘 못해도, 더럽게 길 막혀서 S기어 쓸 일이 없어도 너무 좋았다.
자야되는데 다음날이 미국 여행의, 머스탱과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워서 잠이 안 왔다.
너무너무 분위기 좋았던 그 날의 동영상. 온통 까매서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