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den Kim Jul 29. 2016

99%의 개돼지 민중을 대하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시각차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사고와 행동이다."

본 글은 제가 2016년 7월 26일자 동아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게재했던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참담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99%의 민중은 개∙돼지 같은 존재다’라는 고국의 교육부 고위 관료 발언을 이 곳 싱가포르 고위 관료가 국민들에게 내뱉었다면 어땠을까. 도무지 상상할 수도, 아니, 상상할 자유나 여유 조차 생기지 않는다. 싱가포르 국부로 존경받는 리콴유가 타계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가 싱가포르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정신적 유산 중 하나는 바로 능력주의(meritocracy)다. 능력주의는 한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부와 권력 등의 사회적 재화를 출생 배경을 떠나 오롯이 개인적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이념이다. 리콴유가 싱가포르 독립 이래 지난 50년간 관철해왔던 능력주의는 동남아시아 중심에 위치한 서울 정도 크기의 작은 중계무역항을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쟁력 있는 도시국가로 탈바꿈시킨 핵심적 원동력이었다. 지하자원은 물론이거니와 물과 모래마저 부족한 자원 빈곤국 싱가포르는 소위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엘리트 인재들이 사회 곳곳에 등용되어야만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 이루어진다고 판단, 독립 이래 오늘날까지 능력주의를 국가운영의 기조 원칙으로 삼아왔다. 특히 싱가포르의 능력주의는 행정 분야에서 그 빛을 발하며 엘리트적 관료주의를 완성시킨 근간이 되어왔고, 이는 정부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크게 높이는데 공헌했다.


그런데 이 스토리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하다. 어차피 모두가 평등할 수는 없기에 상위 1%의 소위 난다 긴다 하는 정∙관계, 재계, 언론계, 학계의 소수가 나머지 99%의 개∙돼지들을 먹여 살리면 된다는 ‘그분’의 망언과 매우 흡사하다. 단순히 벌어진 현상만 놓고 보자면 싱가포르 역시 이와 전혀 무관 치는 않다. 작은 국토에 사람이 전부인 도시국가에서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소위 ‘똑똑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은’ 소수 엘리트들의 능력이 사회 전반에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능력주의의 혜택은 싱가포르의 소수 엘리트들에게만 돌아가는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분’이 언급했던 신분제 공고화가 현실 속에서 목격된 것이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싱가포르 정부는 최근 99%의 민중을 제대로 먹여 살리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SkillsFuture Singapore’이라는 범 국가적 차원의 어젠다를 발표하며, 개인이 보유한 잠재적 전문성과 기술을 찾아 평생에 걸쳐 이를 발전시키는 ‘Mastery of skill’로써의 새로운 능력주의를 설파한 것이다. 비뚤어지고 있는 엘리트 의식과 신분제 공고화 타파를 위한 정부의 대대적 조치로 해석된다. ‘SkillsFuture’ 정책의 주요한 맥락들을 짚어보면, 25세 이상의 모든 싱가포르 국민들은 주기적으로 500 싱가포르달러 (약 43만 원) 규모의 자기계발 보조금을 받게 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추가 학위 이수를 희망하는 40세 이상의 싱가포르 국민들은 정부로부터 90%의 수업료를 지원을 받게 된다는 내용 등이다. 정부에서 지급되는 모든 자기계발 보조금은 학습활동을 제외한 다른 용도로는 쓰일 수 없게끔 별도의 계좌로 지급되게 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서의 교육을 99% 민중에게 온전히 제공하기 위한 혁신적 시도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를 단순한 선언적 내용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부총리, 고용부 장관, 교육부 장관, 주요 기업들의 CEO, 대학총장들로 이루어진 실무협의체를 구성하여 실효성 있는 협업 시스템을 만드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SkillsFuture’ 전담 정부조직을 신설하였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싱가포르 국가 경제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개발시켜 언제든 해당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인재 풀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과, 99% 민중의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전문성을 갈고닦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싱가포르는 독립 이후 리콴유를 정점으로 한 국민행동당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며 능력주의 기치 아래 오늘날의 싱가포르를 만들었다. 이러한 능력주의에 기반한 행정과 정책들은 뛰어난 학위와 지식으로 지난 50년간 국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소수 정예 엘리트들을 배출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이에 상응하는 엘리트주의를 등장시켰고 경직된 계층 이동성과 소득의 양극화라는 사회적 병폐를 양산했다. 흡사 대한민국과 닮아있는 듯하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사고와 행동이다. 99%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만 던져주는 것이 아닌, 변화된 사회에 맞춰 99%를 더욱 성장시키고 그들에게 사회적 역할을 주기 위한 정책을 생각해낸다. 최고 정치권력들이 아예 발 벗고 나서 ‘SkillsFuture’와 관련된 칼럼을 기고하고 민중의 의견을 청취한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만큼 다양한 수저의 색깔이 있다. 하지만 수저의 외양적인 모습(신분)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수저가 음식을 더욱 효율적으로 잘 뜰 수 있게 끔(능력) 도와주려는 싱가포르 정부의 사고와 행동은 우리가 눈여겨 볼만 하다. ‘그분’의 말씀대로 상하 간의 격차도 인정하고, 출발선상 역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적어도 이 땅의 정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안철수와 홍정욱의 공통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