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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den Kim Sep 04. 2018

한국 대학들의 생존법

한국의 대학, 절벽 끝에 다다르다.

본 글은 2018년 8월 23일자 영국 Times Higher Education에 실린 제 칼럼을 번역한 본으로, 2018년 9월 4일자 동아일보 오피니언 섹션에도 기고된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몇 주전, 한국의 A 대학 관계자 세 분이 우리 학교에 방문하였다. 학교의 현재 커리큘럼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하였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육성시키기 위해, 커리큘럼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학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학에 진입하려는 학생 수보다, 현재 한국에 존재하고 있는 대학의 숫자가 월등히 많은 것이다. 이것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교육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수요층이 매우 부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즉, 상당 수의 한국 대학들은, 향후 가까운 미래에 그들의 교육 서비스를 중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물론, 1980년대 이후 한국 교육정책이 펼쳐온 급격한 교육기회의 확대 -고등 교육의 양적 확대 정책- 이것이 지금의 상황을 연출한 측면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1980년대 이후 대학 증원의 지속적 확대와 대학설립 증가에 반비례하여, 학령인구는 오히려 줄어들게 되어, 2018년 현재에는 “학생의 모집”이 대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이미 교육부와 통계청 자료를 통해, 몇 년 전부터 경고음을 보내왔었고,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은 대학 당국들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최근에는 교육부가 '대학 기본역량 진단'이라는 명목 하에 전국 대학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돌이켜 보면, 작년에도 벌써 한국의 또 다른 두 대학교 관계자들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여, 학사관리제도와 커리큘럼과 관련된 주제로 논의를 하고 돌아갔다. 그들은 몹시 괴로워했다. 손님은 자꾸 줄어드는 데, 어떻게 장사를 하라는 것이냐라는 푸념도 늘어놓았다.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학생들을 유치하는 것이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으나, 이 역시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의 내용과 질이 그들 결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들(35%)이 지방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학들(65%) 보다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조건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도 이견은 없다. 그렇다면 한국 전체 대학 수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는 지방 지역의 대학들은 미래의 생존을 담보받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고민해야 할까?


교육환경의 변화를 탓하는 것보다 더욱 생산적인 일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대학들에게 자신의 Cover Letter와 CV를 먼저 작성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수요와 공급이 완전히 엇갈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들도 이제는 “지원자”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평가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령인은 미래의 잠재고객인 학생들이라 가정하면 된다. CV는 자신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루어온 업적과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해 준다. 그리고 개교 이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어떤 분야를 강화시켜왔는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Cover Letter는 우리 대학이 왜, 어떤 목적으로 설립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어떤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지 곱씹을 수 있게 해 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대학도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조직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이유, 즉 미션과 비전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자아성찰을 마쳤으면, 대학의 “특성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보통 한국 대학의 순위는 대학 이름의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해왔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모든 한국 대학들의 학문별 순위도 그것과 동일시되어 왔다는 점이다. 특성화에 대한 고민이 그동안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특성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특성화란, 우리 대학이 미래의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느냐에 대한 해답이다. 그러므로 특성화는 “우리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 대학이 미래에 육성하고자 하는 인재는 어떤 모습인가. 그 모습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러한 자아성찰의 토대 위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미국 “미네르바 스쿨”의 등장에서도 알 수 있듯, 이제 대학들의 초점은 커리큘럼의 개선이든, 교수법의 혁신적인 전환이든, 잠재적 고객들에게 어떠한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제공하느냐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속한 대학은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 2002년 개교 당시부터 하나의 명확한 “그림”이 있었다. 모든 졸업생들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Problem Solver’로 양성하겠다는 비전이었다. 이 비전에 따라, 모든 학과 커리큘럼에 PBL (Problem-Based Learning)을 적용하고, 교수진의 채용과 평가에도 PBL 항목을 반영하였다. 이러한 “특성화”는 싱가포르 내 다른 4개의 폴리테크닉들과 두드러진 차별점으로 부각되어,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학들도 하나둘씩 “특성화”의 일환으로 PBL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마냥 기쁜 소식만은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각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CV와 Cover Letter에 맞는 그들만의 고유한 차별점을 발굴해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미네르바 스쿨”의 방식이, 그리고 필자가 속한 대학의 PBL 방식이 한국의 대학들에게도 동일한 가치를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이 향후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방법이 미래 사회의 요구에 부합할 때, 비로소 그 대학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간신히 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떤 모습의 인재를 육성하고 싶은가. 절벽 끝까지 떠밀려 온 한국의 모든 대학들에게 필자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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