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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거북이 Apr 12. 2020

내 아이에 대해 직면한다는 것

[공동육아 부모 에세이]

내 아이에 대해 직면한다는 것, 첫애 방모임에서 ‘직면’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됐다.


또래 방모임에서 내 아이가 현재 어려움을 겪거나 갈등의 당사자들이 됐을 때 그것을 부모가 마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저 어린이집에서 잘 지낸다는 이야기만 들어왔기에 내 아이의 부족한 면을 알아가고 그것을 또래 부모들과 함께 듣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부끄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뭔가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나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잘 흘려서 듣는 부모도 있고, 나처럼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때로 불편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내 아이는 나와는/내 기대와는 달리, 공동체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 아이였다. 선천적으로, 기질적으로 형님들 놀이에도 쉽게 끼지 못했다. 멀리서 그저 혼자 관찰하는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한 아이였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하는 직업군이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며 사람을 좋아하는 엄마인 나와 다른 아이였다. 짝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짝지는 단번에 자신을 닮았고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이해해주어야하고 기다려주어야한다고 했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들어와 우리 아이가 공동체 속으로 쉽게 쏘옥-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답답하고 순간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4세는 대부분 따로 노는 시간이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하기보다는 새로운 공간과 놀잇감에 대해 탐색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것이 위로가 됐다.


그리고 첫째인 아이가 형님들과도 함께 지내볼 수 있는 기회도 빨리 오길 바랬지만, 첫째 아이는 형님들이 막내인 4살들을 귀여워하고 챙겨줄 때 그리 다정한 동생이 아니었다. 형님들을 잘 따르며 살갑게 다가가는 아이도 아니었기에 내 기대는 또 빗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당시 4세이던 아이에게 과한 부모의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것들도 교사에게 잘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교사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6세인 지금은 필요한 것에 대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 아이가 불편한 부분에 대해서 잘 표현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속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형님 관계로 인해 또래 관계에서 한때 힘들어할 때는 특히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느끼는 외로움과 힘듦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통합놀이를 하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의 장점을 우선시해서 보냈지만 단점이 더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 문제를 내가 나서서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아이가 풀어내고 이겨내야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용기를 내어 관계를 풀어나갔으면 했고 교사와 상담을 하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관계를 잘 가져가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형님들과 놀기 위해서 계속 같이 놀지 않겠다고 형님들에게 팽을 당하면서도 부단한 노력을 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굳이 그런 노력을 해야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순간 첫째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행동양식으로 느껴졌다. 장녀인 내 모습도 살짝 스쳤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부모들이 잘 챙겨주는 첫째들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둘째나 셋째만큼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 반대로 둘째나 셋째는 첫째에게 늘 후순위이기에 본능적으로 태어나자마자 그런 것들이 발달한다. 그리고 형님들이 시키는 것들도 군말 없이 잘 따르는데 우리 첫째 딸은 그런 유들이도 없었다. 하- 내 모습의 일부가 그대로 내 아이에게서 보일 때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한 때는 너무 속상해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기도 했다.

“형님들이 안 놀아주면 그냥 다른 아이들하고 놀면 되잖아.”

“그래도 난 형님들이 좋아. 같이 놀고 싶어.”


짝지와 교사는 첫째 아이를 믿고 기다려보자고 한다. 한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 사이 우리 아이는 형님들과 노는 또래들 사이에서 또래 놀이를 하지 못해 혼자 있는 시간도 있었고 또 스스로 혼자 있기도 했다. 난 그게 외로워보이기도 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또한 공동체 속에 있기를 강력히 희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중적으로 나 혼자 고독히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내 성향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두달 정도 그렇게 보냈고 밤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보내던 어느날 방모임에서 아이가 형님들 주변에 계속 머무른다거나 말없이 형님들 놀이에 자연스레 껴 있는다거나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형님들이 어떤 역할을 하라고 했을 경우에도 기꺼이 그런 역할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러면서 형님들과 즐거웠던 또래들과도 다시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또 혼자 하루종일 지내기도 하는 날들도 아주 가끔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 내가 물었다.

“왜 혼자 놀았어? 친구들과 같이 놀지.”

“그냥, 나 혼자 놀고 싶기도 한 날도 있는거지. 너무 좋았어.”

하며 활짝 웃은 아이. 한때 힘들어하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이가 한 뼘 더 큰 것 같았다.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간 첫째 아이가 그렇게 대견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기질과 성향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아이를 자세히 관찰해주고 함께 그렇게 직면하게 된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게 해준 교사에게도 고마웠다.


물론 아직까지도 기질적으로 표현을 대놓고 아주 잘 하는 아이는 아니다. 6세가 된 지금은 교사에게 이제 필요한 것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교사와 어떤 말하기 불편한 이슈로 서로 이야기를 해야할 때는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는 자신이 불편한 점이나 상황과 맞닥드릴 때마다 직면하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이 불편한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과정이 부모나 아이에게도 쉽지만은 않다. 개개인의 기질에 따라 힘든 정도도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교사와 부모가 함께 지켜봐주고 지지해주고 기다려줄 수 있다는 점은 아무래도 나나 부모에게 성장하는 또 다른 소중한 기회가 아닐까 한다.




* 2019년 9월에 써놓았던 글.



*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쓴 부모 에세이도 함께 읽어보세요^^ 

https://brunch.co.kr/brunchbook/hamk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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