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를 배달하는 법

실수 체면 용서 그리고 책임

by 박하


회사 직원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노라 운을 뗐다. 앞서 다른 누군가 배송한 곳에서 들어온 클레임이었다. 이런 서포트는 가끔 있었다. 대개 누락된 음식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사이드 메뉴라던가, 소스라던가, 혹은 메인 메뉴가 빠지는 경우도 있다.


빨대가 빠졌어요.


귀를 의심했다. 카페 음료를 배달했는데 가게에서 실수로 빨대를 빼먹었다는 거다. 고객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는 관념이 배달부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업무 또한 그랬다. 그럼 회사의 머리에선 어떤 계산이 섰던 걸까.


일단 카페에 도착하고 보니 가게 주인은 발을 동동 거리며 나와 있었다. 빨대 한 벌을 들고. 기이한 모습이었다. 버블티용 빨대라고 했다. 전용 빨대가 있어야만 먹을 수 있는 음료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객은 다소 곤란할 테지만 그래도 꼭 빨대가 있어야만 하다니. 그리고 다급하게 말하는 주인장의 표정에 나는 곧장 주소를 찍어 달렸다.


가는 길에 회사의 머리가 되어본다. 재배달이 아닌 환불 절차를 밟는다면 소모비용이 어떨까. 배달부에게 지급된 돈만 해도 벌써 8천 원. 음료값은 평균적으로 잡아 5천 원. 빨대의 값은 빼더라도 사실 인건비가 덜 드는 게 맞긴 하지만 글쎄. 이왕 손해를 보게 된 실수에 대하여 산술적인 값은 후자가 맞겠지. 고객이 화가 많이 났다는 이야기를 상기한다.


'가능한 안전하게 배달해 주세요'라는 기본 문구가 보인다. 빨대를 안전하게 배달하는 법은 뭔가. 봉투에 고이 담긴 고작 하나의 빨대를 옮기기 위해 오토바이는 매연을 뿜고 있다. 이는 고객의 잘못이 아니다. 명백한 가게의 실수고 책임이다. 그렇다 이건 책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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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내가 걸었던 클레임을 되살려본다. 단 한 번의 기억으로, 모차렐라 치즈 떡볶이에 치즈가 빠진 상황이었다. 가게에 전화를 했더니 주인장은 '그래서 어떻게 해드릴까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어쩌긴요 가져다주셔야죠. '그냥 드시면 안 될까요?'


떡볶이야 그냥 먹어도 된다지만 어조는 내게 큰 문제였다. "그럼 환불할게요 안 뜯었으니 가져가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차액을 환불받기로 하고 참았다. 그러나 태도에 관한 한, 토를 달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수하신 뒤에 응대하시는 말투가 정말 큰 실수라고. 가르치듯 말한 일을 떠올리면 나는 갑질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장사를 해서, 정말 아무나 장사를 해서 밥때마저 인간을 잃게 되면 나는 어쩌나.



안전하고 빠르게 배달된 빨대는 아주 볼품없이 내게 들려 빌라 꼭대기까지 갔다. 벨을 누르니 신경질적으로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이미 얼음이 다 녹았으며,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할 거란 말과 함께 간간이 욕설까지 섞어 감정이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빨대는 빌미나 다름없고 책임을 대신하기 위한 자리에 선 게 내 역할이었다. 돈은 그 값이었다.


길가에 마중까지 나와있던 카페 사장의 마음이 나는 이해가 간다. 자영업이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집중하지 못한 대가로 가게 평가는 한순간에 갈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죄송하다고 말하는 건 이제 내게 너무 쉽다. 불편을 끼쳐드렸다고 명백한 과실이라고 하는 사무적 대사까지 술술 나온다. 회사에 환불을 요청하시거나, 시간을 빼앗아 정말 죄송하지만 다시 가져다 드릴 수도 있을 거라고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현관 앞에서 아웅다웅한 시간이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았겠으나 영원 같기도 했다.



됐으니 그만 가세요!


문이 쾅 닫힐 때까지 고개를 조아리면서 난 깨닫게 된다. 이만큼 기분이 상했으니 알아달라는 말을 사람은 이렇게도 할 수 있다. 인간은 타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생물이 아니다. 물론 용서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가 부끄러워서든 사죄가 모자라든 간에 못할 수도 있다. 반대로 실수한 자가 체면을 세우며 실수를 구제할 수는 없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실수와 체면과 용서는 이토록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거다.


우리가 인간보다 기계를 믿게 된 시대는 서로의 실수를 용서하지 않게 된 날부터가 아닐까. 기술이 진보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흠 있는 제품처럼 보일 테니. 안타깝지만 난 이 글이 결코 자동화된 미래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굳이 미래에 먼저 가서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아직 인간을 믿고 싶다는 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