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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14. 2022

사자와 같이

도시 레온.


    도시 입구에 놓인 사자상은 부서진 코와 덮인 새똥으로 인해 위용이 넘치기보다는 귀여운 형상에 가까웠다. 예로부터 사자가 숭배받아올 수 있었던 용맹함 따위가 인간의 두려움에서 기인했다면, 지금에 이르러 사자는 고양이와 같은 결로 지위가 한껏 낮아졌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고양이의 지위가 올라간 것 아닐까’하는 의문을 제기했으나 그 또한 맞는 말 같아 반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사자의 땅은 내가 쉬어야만 했던 곳이 됐다. 퉁퉁 부어버린 발목을 핥아주는 고양이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약이라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사자와 고양이로 옮겨가듯 고찰을 흘렸다.


    가장 많은 사람이 포기하는 지점이라고 한다. 3분의 2지점이었고 대도시는 과연 이렇다는 분위기를 뿜는 땅에서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라는 마음이 덩달아 힘을 쓰는 곳. 알베르게에는 순례자가 뒤엉켜 앉아 포도주와 쿠키를 나누고 있었다. 아파서 쉬어야 할 것 같다는 거절의 말에도 “와인은 힘을 줄 거야!”라는 대답으로 응수하는 탓에 까짓 거 마셔버리기로 한다.


    취기가 올라 불안에 떠는 사람들 앞에서 평온한 마음은 어렵다. 조금 내밀한 자신을 드러내기 좋은 알딸딸함은 쉽게 용기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으니 다친 나는 어려운 마음이 없는 것에 안도한다. 가족 관계, 실연, 인생 계획의 차질, 개인적이나 충격적인 일까지 다양한 계기들을 시원히 털어둔다. 나의 이유는 뭘까. 벌써 두 번째라고 말할 수도 있고 겨우 두 번째라 말할 수도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냥 두 번째라고만 말하는 것이 그러하듯 굳이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애초 레온을 목적지로 삼은 사람이 많은 만큼 여기서 끝을 내는 사람 또한 많다. 다치거나 아파서 이제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는 피터 할아버지와 그 손자, 같은 길을 엇비슷하게 걸어온 댄 마저 회의를 느껴 이탈리아로 돌아가기로 했다. 여긴 사자(獅子-동물)의 도시래.



    그리고 사자(使者-명령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도, 사자(死者-죽은 사람)도 같은 발음이야. 사자. 그 말에 다른 순례자들이 흥미로운 듯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너희들의 말을 듣다 보면 어떤 사자가 될 것인지 고르는 여정 같아. 와인은 동이 났고 멈출 수 없었다.


    며칠을 머무는 사람들과 함께 광장까지 걸어 새벽 커피를 마셨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몸에 밴 순례자들은 이제 술을 마시고도 육체를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지팡이와 배낭을 짊어진 채 빗길을 걷는, 일정이 달라 레온을 출발하는 순례자들에게 안녕을 기원하면서 관성대로 끓는 몸을 뜨거운 커피로 식혀대는 모양이란.


    박하, 어제 넌 레온을 뭐라고 했었지? 사자. 그 발음은 결코 까먹지 않을 것이라며 담담히 빗줄기를 바라보곤 다시금 ‘사-자’라 발음하는 입모양을 보았다. 목표한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함께 커가는 괴리에서 마침내 그는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여긴 사자의 도시. 그리고 순례자들은 사자가 된다. 어떤 사자가 될지는 자신에게 달린 것처럼.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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