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무덤은 아닐까.
•사설과 칼럼은 여기 > 재난의 독점 : 시리아, 튀르키예 지진
형 이집트 갈래요? 이탈리아 이후의 행보를 생각하고 있다가 들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떨떠름했다. 이집트는 늘 마음에 걸리고 있긴 했지만 가고 싶다는 욕구는 들지 않았다. 채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특히 배낭여행자라면 누구나 다 ‘다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 같은 수상 레저를 실컷 즐길 수 있는 곳이면서도 가격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다 띄우는 경우가 잦았다. 그게 다야? 나는 배낭여행자의 무덤이라는 표현이 함부로 붙어선 안 된다고 고까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주원의 말로 로마에서 다합으로 가는 비행기가 단돈 5만 원. 그래 가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내고라도 기꺼이 가는 사람들이 발에 차이는데 이 기회를 버릴 다른 변명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가게 되었으니, 나는 수상 레저 중에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원고 마감을 해야 하니 어렵겠지만. 새로운 책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글을 쓰겠답시고 오래 머물만한 나라를 떠올리기도 했었는데, 이집트의 물가는 상당히 저렴한 축에 속하고 있었으니까. 근사한 집을 구해 오래 머물기로 하자.
이집트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간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찬양의 말들은 정보 면에서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라 공항부터 무작정이어야 했다. 뜨거운 공기가 가득 메운 황무지의 샴엘셰이크 공항에서 두 시간 남짓 실랑이를 벌이다 가까스로 택시비를 조율하고, 다합으로 이동한다. 주원이는 벌써 지친 기색이다. 다합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집을 구해야 하는데.
코로나가 한참 창궐하던 때, 비행기도 없어 다합에 갇혔던 형에게 연락을 취했다. 카카오 오픈채팅방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무시하고 있었던 차였다. 정말 거긴 다른 방도가 없어. 아무리 싫어도 들어가서 물어봐야 해. 지친 동행을 이끌고 무거운 배낭을 멘 채 무엇도 알 수 없는 도시를 헤매기란 버겁다. 나는 결국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방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가 없는 것이었겠지만. 우리의 상황을 안쓰러워 한 어느 분이 소파에서 하루라도 자겠으면 오라고 하여 갔거늘, 여성분들이 머무는 숙소라 우린 당황했다. 벌써 해가 저물어 밤이 오는데 어떻게든 하루를 신세 져야 하나. 기존 숙박객들의 안색이 좋지 않다. 주원아, 나가자.
우리는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왔다. 사람들도 있었지만 들개들 역시 많았고, 힘들어하는 주원을 달래 해변가로 향했다. 텐트가 있으니까 괜찮아. 둘이 들어갈 수 있어. 오늘 밤만 버티고 내일 다시 찾아보자. 이 작은 도시에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숙소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알고 보니 이집트는 축제 기간을 거치고 있었고 다합은 휴양지를 겸하는 도시였다. 애초 외국인 관광객이 장기 거주하는 도시인 데다 근교에 사는 대규모 가족들까지 몰려드니 방이 남아있지 않은 게 당연했다. 해안가에 텐트를 치고 담배를 피우며, 우린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여행이니? 해변의 바람은 무시무시해서 잠을 설쳤다. 다음 날엔 다행스럽게도 허름한 방 하나가 나서 바로 텐트를 접어 이동했다.
주원이가 프리다이빙 배울 곳을 찾아 나선 사이에 계속 방을 알아봤다. 지금 묵는 방 역시 허름하긴 해도 못 견딜 수준은 아니었으나, 장기적으로 있으며 글을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것 또한. 단톡방은 활발한 편이었다. 수중 레저를 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 미리미리 예약을 하며 오는 사람들도 정보를 얻으려 들어왔고 또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이미 오래도록 다합에 머물면서 수강생을 모집하는 사람들까지. 그러나 한국인이 모인 곳이란 꼭 그런 게 있었다. 공고한 무리와 아슬아슬한 평판의 그 사이 말이다. 늘 경계심을 갖는 정서란 그러하다.
댄항공과 아샤나 중에 뭐가 더 낫나요?
점심이 지났을 어느 무렵, 한국에서 출발할 어떤 사람이 단톡방에 질문을 하나 올렸다. 장거리 비행이니만큼 어떤 항공사가 편의적으로 더 나을지 고려하는 게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장기체류자가 나서 어디가 좋은지 조심스레 추천하는 사이, 한 사내가 대꾸했다. “굳이 항공사를 그렇게 줄여 말해야 하나요? 이해가 안 되네..” 그 말은 텃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줄여 말한다는 것은 해당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스튜어디스 친구들에게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굳이 줄여말하냐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 아닌가. 질문을 올린 사람은 채팅방을 나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방을 구할 내 처지를 차치하고라도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이런 공고한 무리의 텃세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거냐. 그간 내게 다합을 추천해 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들이박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직원들마저 줄여 부르는 게 익숙한 게,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줄임말을 어느 사람이 사용했다고 해서 힐난할 구실이 됩니까. 다합에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얼마나 대단한 지위나 되는 일입니까. 이 작은 마을의 왕이 된 듯 굴지 마세요. 그쪽이 아니더라도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을 테니까요. 아님 그렇게 평생 사시던가.
그는 화가 난 듯했다. 그러면 여기서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물었고, 난 웃으며 다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럼 다행이네요. 난 아무것도 안 할 생각으로 왔으니까. 바다가 당신 겁니까? 가끔 수영이나 하고 놀죠 뭐. 아마 당신한테는 바다가 아니라 우물로 보입니다만 되도록 깊이 들어가서 사세요. 그렇게 쓰고 단톡방을 나왔다.
이후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주원이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느냐며 걱정했지만 난 그 말을 꾸짖었다. 그러려고 여행 나왔니? 아니잖아. 여기 한국 아니야. 한국 사회도 아니고, 한국 사회처럼 굴 필요는 더더욱 없고. 그걸 왜 지지해주려고 해? 여행 오래 하고 싶으면 그런 마음은 되도록 빨리 관둬. 저것들이라 부를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 남자한테 배울 건 하나도 없어.
며칠이 지나 주원이가 등록한 다이빙 강사님의 숙소 2층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바람이 시원하고 테라스가 넓어 글을 쓰기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사실 다이빙을 배우지 않는 나의 입장으론, 수없이 많은 한인 강사님들과의 접점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매일같이 글을 쓰고 담배를 피우고 기껏해야 길거리 음식만 먹고 다니는 날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무슨 일일까. 강사분들이 여럿 모여 요리를 잔뜩 대접해 주시길래 이게 무슨 연유일까. 물으니 모두 말씀하신다. 그때의 말이 너무나 통쾌했다고. 이 좁은 사회에서 평판을 중요히 챙겨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받았다.
언젠가 나는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제일 싼 다합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바다의 다합이면 좋겠다. 여전히 그런 자들이 활개를 치는 우물의 다합이라면 난 영영 배우지 않더라도 삶에 큰 미련은 없을 것 같다. 짧은 산책을 하는 매일, 나의 탈색된 백발 머리를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 사람이야 하고 인사를 해 오는 사람이 얽혔다. 모두 다 좋게 지낼 거라는 생각은 애초 하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과 편을 먹는 사람. 그냥 빨리 정리되는 게 편했다. 그리고 난 다합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더불어 굽실댈 필요가 없는 유일무이한 장기체류자였으니까.
@b__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