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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pr 29. 2023

골목을 돌아 기원전으로

고대 도시 페트라.


이집트 다합. 이곳은 여행자로서 여러 가지 이점을 낳는 도시다. 가장 큰 장점은 주변에 유명한 곳을 향해 가는 동행이 많다는 점인데, 여러 명이 모여 가기 때문에 정보 습득이 용이하고 저렴해지는 이점이 생긴다. 그래서 요르단의 페트라를 듣고, 나는 가슴이 뛰었다. 여행자가 결코 떨칠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지금이 제일 쌀 때다.’ 시간이 흐르면 물가가 오르고 한정된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방랑객의 주문 같은 말이다. 매일같이 물가와 환율을 고려하며 씨름하다가 다음 행선지를 고를 때, 당장 어딘가 신비로운 경험을 거칠 기회를 맞닥뜨릴 때 부쩍 더 크게 느껴진다.


좀 더 아껴보자고 기회를 무시하지 말라던 친구들의 전언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닥치면 귀신같이 알고 얼마쯤 돈을 보내오는 사람들의 말이다. 여정을 길게 지속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인가 아닌가 재보다 죄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결국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지금보다 요르단에 더 가까워질 기회는 없다.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가격은 다행히 저렴한 편이었다. 나는 요르단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가 있는 수에즈 만과 아카바 만으로 쪼개진다. 아카바 만의 끝은 이집트의 끝이기도 하며 요르단,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까지 4개국이 서로 바다의 끝을 에워싸고 있다. 각자의 국기를 더없이 크게 걸겠다고 용쓴 티가 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항구의 출입국 심사대를 거쳐 배를 타고 얇은 바다를 건너면 요르단. 미생에서만 잠시 보았던 흙빛의 나라.


생각보다 온화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관광객이라 이 나라를 옹호할 수도 비판할 수도 없을 만큼 짧게 머물 것이다. 그래서 얌전히 길거리의 커피를 마시며 다른 승객들을 기다리고 국경 건너편, 내가 방금 떠나온 다른 나라를 바라본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저 땅은 서로가 다른 나라들이라서 언제나 국경은 건넛땅을 바라보게 한다. 페트라까지는 끝없는 황무지를 달린다. 누군가의 사진으로만 보았던 곳은 꽁꽁 감춰져 있었다.



고대의 무역로가 발현하는 기운은 상상을 돕는다. 협곡 사이에서 신전이 등장하고 시끄러운 호객행위마저 옛 대상들의 물품거래 소리로 들린다. 상상은 위대하다. 골목 하나만 돌면 인간은 기원전에 도달할 수도 있다. 무더운 햇살 아래 녹아내리며 걷는 동안 이곳에서 유랑했을 민족과, 유효했을 언어와, 흘러 다녔을 음악을 떠올려본다. 육중한 골짜기에서 탄생했던 인간의 몸짓이 시간을 관통해 도달하고 있다. 올곧게 버티며 존재했던 건 사랑과 싸움이겠지.


낙타몰이꾼들은 돈을 받으려 애쓴다. 서로가 거래할 것은 이제 사진을 찍을 때 조금 더 근사한 그때의 분위기다. 낙타에 오르는 사람들은 4분 남짓의 분위기를 산다. 터번까지 야무지게 둘러메고서. 나는 신전 앞에 앉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담배를 입에 문다. 신성한 곳이라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 않을까 했지만 당장의 해소가 중한 사람들이 만든 나라, 그 나라의 국민들이니 잠시 편승한다. 고대 거상들의 주요 거래 품목 중 하나도 담뱃잎이었으리라고 믿으며. 각자의 증거를 남기기 위한 셔터 소리를 받아들이며 신전은 에어컨처럼 차가운 바람을 내뿜는다. 오한이 일 정도로 시원한 냉기에 코브라를 춤추게 하는 사람의 피리소리를 따라 춤을 출 지경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는 지친다. 아무리 웅장하고 위대하다 한들, 결국 지금의 사람이 기원전의 무엇을 보러 온 나를 지치게 만든다. 무엇이든 구할 수 있었던 엄청난 고대의 도시. 절대 혼자 나온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것 같은 인파는 무엇을 팔지 않더라도 시장 같다. 페트라가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구하러 모이는 사람들의 통로였기 때문이 아닐까. 물이 흐른 협곡에 흐른 인간들의 삶을 상상한다. 구하면 구해지는가? 잃어버린 도시를 발굴해 낸 지금처럼. 그리고 언젠가 삽시간에 잊힐 것들이 뭐라도 남기겠다고 사진을 찍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페트라에서 많은 이윤을 본 상인들이 있을 것이며, 군사적 요충지로 승리한 전투도 있을 것이다.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는 신전이 캄캄한 속내를 하루종일 그늘로 유지하는 건 짐짓 우아한 면도 있다. 더위를 뚫고 온 모든 이들에게 잠깐의 그늘 속 휴식을, 물을, 풍요를. 관광객 아무개가 다녀간 시간은 모래바람처럼 기억되는 일이 없겠지만 나는 페트라의 풍경과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며 당분간 살 수 있다. 상상의 주인은 언제나 나다. 명확하게 규정되고 싶지 않은 나는 베일에 싸인 비밀들이 좋다. 아무것도 거스르지 않은 채 머물기 위하여.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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