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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이해 Feb 15. 2023

52헤르츠: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노들리에 그림책 스터디 | © 기이해

52헤르츠: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글 그림: 마르틴 발트샤이트(Martin Baltscheit)

출판사: 느림보


이미지 출처:  Martin Baltscheit 홈페이지 https://www.baltscheit.de/


이 그림책은 52 헤르츠로 노래하는 목소리가 너무 높아서 다른 고래들이 듣지 못하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1989년 소련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미군이 원래 사용했던 수중 청음기 시스템이 있었다. 미국 서해안에서 미국의 해군대 청음기가 처음으로 고래의 노래를 녹음했는데, 이 고래는 선천적인 언어 결함으로 인해 다른 모든 고래보다 훨씬 더 높게 노래했고 이 청음기가 보통 고래와 달리 특별한 음역대에서 노래하는 고래를 찾아냈다. 참고로 대왕고래는 보통 10-39 Hz의 소리를 내고 큰 고래는 보통 20 Hz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람으로 치자면 보통의 고래가 인간음역대의 메조소프라노나 소프라노 톤으로 노래를 한다면 이 특별한 고래는 프리마돈나급을 넘어서 초고주파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소리로 노래를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 고래는 아기고래가 52 Hz로 대화를 하는 내용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고래들은 자신들이 내는 소리로 무리를 지어 이동하거나 함께 하고 싶은 짝을 찾기도 한다. 그런데 고래가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소통이 되지 않아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지낼 수밖에....


그래서 이 고래는 태평양에서 홀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로 "52 헤르츠"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으며 수년 동안 과학적으로 관찰되어 왔다.






이 특별한 고래는 분명 주변 고래와 소통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소리를 내어 말하고 있는데도 내가 하는 말을 부모가 들을 수 없고(혹은 이해할 수 없고) 좋아하는 고래에게 대화를 걸었는데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유학시절 digital prepress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학교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유학생이었다. 유학내내 보통의 아시아인들과 달리 발음이 꽤 좋다고 미국 친구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으며 지냈다. 그런데 유독 그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과는 소통이 되지 않았다. 수업 중에 질문이 있어서 교수님께 질문을 드리면 "I don't know what you are talking about."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백인 친구들이 나 대신 질문을 다시 말해주면 그때서야 교수님이 올바른 대답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잘도 알아듣는 내 질문을 교수님만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어서 그럴 때마다 교수님이 미워서 입이 삐쭉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몇 년 뒤 그 교수님과 같은 학교를 졸업하신 다른 교수님께 전해 들었던 썰로는 그 교수님은 아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섬나라 출신 백인인데 사실은 Asian hater(아시아인들만 싫어하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대화를 시도해도 나와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자발적 아싸다. 어떤 단체나 그룹에 포함되어 있으면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공식이 성립이 되는 사회 안에 살고 있어서 사람들의 무리가 많으면 많아질 수록 이상한 사람들을 발견할 확률이 그만큼 올라간다. 언제나 어느 그룹에서나 또라이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어떤 그룹 안에 속해 있기보다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또한 고백하건대 가끔은 내가 또라이였던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오래전에 컬처트리라는 회사를 운영하시는 연세대 심리학과 박사님께서 강의해 주셨던 어떤 강연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각자 종이에 적어보라고 했다. 그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국적은 나를 포함하여 프랑스, 아프리카, 미국, 독일, 캐나다 등이 있었다. 교수님이 설명하길 국적에 따라 그 나라 고유의 국민들이 가진 특성이 있는데 한국인은 국민 특성상 "나" 보다 "우리"를 중요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대부분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독립적(independent)인 성향을 가진 국민성을 가진 나라는 대부분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서양권의 나라들이고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 성향을 가진 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쪽이 강했다. 그 두나라의 성향을 절충해 주는 국가는 싱가포르와 같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설명하셨다. 


강연에서 처음에 교수님께서 "나"에 대해 적어보라 하셨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집중해서 적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보편적인 한국인 성향이 아니라 독립적(independent) 성향이 강한 나라의 사람들과 비슷한 수치의 결과를 얻었다. 나의 "주파수"는 보통의 한국인과 조금 달랐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갔을 때 한국에서 보다 더 잘 적응했는지도 모른다.


독일에서 살았을 때 풍족하지 않았지만 행복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켰고(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다른 약속도 잘 지킬 확률이 높다), 정직했고,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며, 배려가 넘치고 예의 바르고 정확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독일인 특유의 무뚝뚝함이 있었지만 내가 만났던 독일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알면 알수록 한국인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정과 사랑이 넘쳐흐르는 민족이었다. 비로소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어쩌면 바이킹의 피가 흐르지 않나 웃긴 상상도 했다. 


인종을 떠나 위와 같은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이것은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가치일 수도 있으나 내가 가진 가치를 존중하고 아껴주며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해 주는 몇몇의 친구들과 나와 감성이 맞아 소속되어있는 그룹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림책에서 처음 알게 된 52Hz 고래가 태평양에만 머물지 말고 더 나아가 대서양, 인도양, 남극해, 북극해 어디에서든 같은 주파수를 가진 고래를 꼭 만나서 짝을 이루었기를 바라며


©기이해


그림책 이야기 출처: 52헤르츠의 글그림 작가
Martin Baltscheit 홈페이지

https://www.baltscheit.de/


#노들리에 #수요일그림책스터디 #기이해 #노들엔터테인


*수요일 그림책 스터디에 함께 하는 <노들리에> 작가들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같은 주제'로 작업한 <노들리에> 소속 작가님들의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진영 작가     https://brunch.co.kr/@g2in0

영주 작가     https://brunch.co.kr/@leeyoungjoo

아스터 작가  https://brunch.co.kr/@asterchoi

암사자 작가  https://brunch.co.kr/@amsaja

가둥 작가     https://brunch.co.kr/@3907kgh


이 글이 업로드 되는 순간 이 그림책으로 위의 작가님들과 어딘가에서 토론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댓글을 남겨주시면 저희의 토론에 실시간으로 함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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