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그림책 스터디] © 기이해
글 마이클 J 로젠
그림 베카 스태틀랜더
출판사 살림
벌써 6년 전의 이야기이다. 독일 함부르크의 겨울은 3~4시부터 어두워지는 반면 겨울에 충분히 보지 못한 햇빛을 여름에 몰아주는 듯 유럽의 백야는 저녁 11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었다.
필자가 살던 함부르크의 엘베강은 함부르크의 모든 지역에 물을 보내 주는데 Alster 지역의 Alster 강까지 물을 보내주었다. 그 강의 거의 끝자락 조그마한 주택들이 모여 있는 집에서 세 들어 살았고 거의 사계절을 그곳에서 지냈다.
함부르크의 겨울은 어둡고 컴컴하며 저녁시간이 되면 지나다니는 사람도 동물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함부르크의 여름은 활력이 넘치며 흥미로웠다. 집 앞의 강변 옆 산책로에 나가면 낚시하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수영하는 사람, 무리 지어 다니는 오리들, 그리고 윤슬 위를 유유히 지나다니던 백조까지 완벽한 뷰를 자랑하는 강변뷰에 카약과 요트를 타는 사람들도 자주 보았다.
이 마을은 여름에 큰 축제를 한다. 낮이 긴 이유로 사람들은 겨울에 즐기지 못한 햇빛을 충분히 즐기러 밖으로 나온다. 특히 이 엘베강이 가지고 온 물줄기 근처에 큰 의자를 강변 앞에 가져다 놓고 태닝과 수영을 즐긴다.
타운하우스 내에 있는 제일 커다란 나무에 길고 튼튼한 밧줄을 엮어 아이들이 탈 수 있는 그네도 만들고 나무표 자이로드롭 같은 장치도 만들어 아이들이 충분히 마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했다. 축제를 하는 날은 어린이들이 이 마을의 주인공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다른 이벤트도 마련했다. 페이스 페인팅이나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마술 쑈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이웃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며 축제에 참여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주택 가운데 잔디밭에 긴 천막을 치고 각자 마련한 음식을 가지고 함께 모여 Potluck을 한다. 아래 사진과 같이 생긴 집들은 부락 안에 모여있는데 가운데는 잔디밭이다. 그 잔디밭은 금세 음식으로 가득 찼다.
*Potluck: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나눠 먹는 식사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타운하우스 축제에서 주민들은 먼 나라에서 온 독일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영어로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위대한 식탁 』그림책에 나오는 이 글이 담긴 페이지처럼
배가 고프신가요? 이리 오세요.
의자 하나 가지고 다가오세요.
우리가 조금씩 당겨 앉을게요.
함께 나눌 자리는 언제든 있답니다.
이 축제가 가장 즐거웠던 이유는 먹을 것이 있어서였다. 해외에서 예술가로 살아야 해 비자문제로 속 끓이던 고단한 나날들을 버텨야 했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비자문제로 계획에 차질이 생겨 금전문제가 생겼고 예상치 못한 가난에 시달렸던 그때의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언제 굶게 될지 모르니 음식이 있을 때 충분히 음식을 섭취해서 에너지를 저장해야 했다. 이 타운 하우스 축제에 나를 초대를 한 집주인이 '얘가 참 이상하게 많이 먹네?!'라고 생각할 만큼 많이 먹었다. 마치 다람쥐가 입안에 도토리를 가득가득 숨겨두는 것처럼 말이다.
이 댁으로 이사를 온 첫날 집주인이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방 값에는 식사 비용은 없었기 때문에 감사한 일이었다. 독일에서는 식사 예절이 있는데 음식을 다 먹은 접시 위에 식기가 올라가 있다면 암묵적인 표시로 더 먹고 싶다는 의사표현이다. 더 이상 음식을 원하지 않는다면 식기를 그릇 밖으로 놔두어야 한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이 사실을 잘 몰랐다. 그래서 집주인이 나에게 음식을 더 원하는지 계속 물었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아?! 네!" 하며 또 먹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독일 사람들은 식사의 양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보통 집주인은 아침은 삶은 계란이나 사과 혹은 요거트나 마트에서 파는 손바닥 만한 작은 빵 하나로 마치셨다. 한 끼에 이 것을 다 먹는 것이 아니라 이 중 하나만 드셨다. 점심은 회사에서 간단하게 집에서 가져온 샌드위치 한쪽으로 식사를 마치셨다. 우리 집주인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독일에 살 때 나의 주변 독일 사람들은 키가 그렇게 큰데도 먹는 양이 많지 않았다.
그러한 독일 사람들에 비해 음식에 항상 진심인 한국 사람들은 아마 처음에는 나처럼 적응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작은 나도 독일에서는 음식이 자주 필요로 했다. 차비를 아끼려고 매일 걸어 다녀서 더 배가 고팠나 보다. 덕분에 자연스레 운동이 되었지만.... 먹는 양에 비해 활동량이 높아 에너지는 늘 고갈되었다.
다음번 식탁에 앉을 때에는
위대한 식탁을 대할 때에는
충분히 먹지 못한 어떤 사람을
마음속 옆자리에 앉혀 보세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과 그 앞 장에 나와있는 글귀이다. 이 그림책을 보니 그때 항상 배고팠던 시절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독일에서 그들의 문화를 잘 몰라서 겪게 된 실수에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가장 배고팠던 시절, 그때 이후로 배고픈 게 제일 싫어서 앞으로는 항상 배부르게 먹을 거라고 다짐하며 살았던 그때. "예술이고 나발이고 배고프면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배부른 게 제일 중요해."라는 인생 모토가 생겨난 지금 나는 예술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
배고파 본 기억 때문에 오늘은 조금 심술이 난© 기이해
[수요일 그림책 스터디]는 오는 9월 첫 주 종료 예정입니다. 참여하는 작가님들의 새로운 일정으로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작가들 각자 재정비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참여 작가님들이 걷는 길이 반짝반짝 빛이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