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미술관에서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MFA)에 다녀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과 함께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불린다고 한다. 시카고미술관은 해외학회에 다녀올 때마다 대충 수박 겉핥기식으로 몇 번 보았는데 그때마다 늘 안타까워서 연수기간에는 사는 도시의 미술관을 몇 번이고 둘러보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동안은 코로나 유행으로 닫혀서 못가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문을 열어서 틈날때마다 가보려고 하고 있다. 오늘이 두번째. 1회 입장 당 25달러이지만 공립도서관에서 뮤지엄패스를 받으면 1회당 10달러에 입장이 가능하다. 생각해보니 그래도 아주 싼 건 아니지만 하루 날잡아서 가서 감상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금액이다. 문제는 10대인 아이들은 이런 미술관 투어를 싫어하고, 짜증내는 아이들을 두고 어른들끼리만 나와서 관람을 하자니 오래 집을 비우기가 힘들어서 오늘도 2시간 정도만 보고 들어왔다. 나이가 드니 허리도 아프다. 언제 다 보나.
보스턴 미술관은 고흐, 고갱, 세잔 등의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고, 오늘 두번째 방문에서야 고갱의 유명한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감상했다. 그러나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던 것은 18세기 멕시코 화가가 그린 casta painting과 그 옆에 전시되었던 한 소년의 시다.
Casta painting은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고 노예 흑인, 아메리카 인디언 등이 뒤섞이면서 인종 간 결혼이 많아지고 그들의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이들의 위계와 서열을 여러 장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옛날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메스티조, 뮬라토 등의 소위 혼혈인에 대한 설명문구가 그림에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from a Spainard and an Indian, a Mestiza is born (스페인인과 인디언에게서 메스티조가 태어난다)” 이런 식으로 부모와 자녀의 피부색을 묘사하여 인종에 대한 라벨링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통 맨 위에는 이중 가장 상위에 있다고 판단되는 스페인인과 인디언의 혼혈인 메스티조가 오고, 아래로 갈수록 백인의 피가 옅어지면서 낮은 위계의 신분이 된다. 스페인인과 흑인의 혼혈인 뮬라토, 인디언과 흑인의 혼혈인 삼보 (그림의 라벨에서는 China Cambuja라고 표현하는듯), 메스티조와 스페인인이 아이를 낳으면 카스티조, 이런 식으로 백인의 피가 얼마나 섞였느냐에 따라 계급을 나눈다. 다인종사회에 대한 지배자들의 불안, 그리고 억압적 사회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반영한, 뭐랄까 예술이라기 보다는 사료에 가까운 그림들이다. 아마도 행정적인 목적에서 스페인 지배자들이 화가들에게 의뢰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실 그림 자체의 작품성은 별 것이 없다. 정말 마음을 울린 것은 이 작품 설명 옆에 붙어있는 한 청소년이 지은 시였다. MFA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예술위원회 (TAC)의 2000년대 멤버였던 이 소년은 시의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것 같다. 그는 Casta painting에 박혀있는 문구(그림 아래 부분에 어느 인종과 인종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무엇이 된다 하는 식으로 설명이 찍혀있는 것이 Casta painting의 특징이다.)를 빌어 다인종 국가에서 사는 자신의 정체성과 혼란에 대해 이야기한다.
From a black and a white, a mullato is born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뮬라토가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a boy is born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소년이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confusion is born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혼란이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ambiguity is born
흑인과 백인사이에서, 모호함 이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introspection is born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내적 성찰이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Have I said enough?" is born
흑인과 백인사이에서, "내가 충분히 말해왔나?"가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Have I said too much?" is born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내가 너무 많이 말해왔나?"가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Passing" is born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통과 (유색인종이 백인으로 오해받아 차별을 건너뛰는 것을 의미하는 관용어)"가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identity is born
흑인과 백인사이에서, 정체성이 태어나지
From a black and a white, I am born
흑인과 백인사이에서, 내가 태어나지
최근에 일어난 애틀랜타의 아시아인 증오범죄를 비롯한 이 시대의 갈등과 아픔이 떠오르며 숙연해진다. 결국 I am born으로 끝나는 이 시는 casta painting으로 묘사되는 18세기의 인종주의적 사회구조가 21세기의 아이의 마음에 여전히 흔적을 남기고 있고, 상처를 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함께 노래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살지라도, 한 존재는 casta painting의 한 패널로 박제될 수 없는 고유함과 존엄함을 지니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