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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Feb 12. 2024

파업전야 II

3년이 지나, 또 다시 파업 전야입니다. 3년전에 2000년의 파업을 떠올리며 글을 썼더랬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마음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회색분자입니다. 2000년도, 2020년도, 2023년도 여전히 어느 쪽에도 온전히 서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이번이 가장 제 동료들에게 가까운 편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협은 강경하지만, 적지 않은 의사들이 실제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면 조금씩 늘릴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국민이 원하는 바이고, 실제 절대 수가 적은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한 해 2,000명.... 너무나도 당혹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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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 수가 많으니 학생들을 65%나 늘려도 교육에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도저히 가늠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몇몇 큰 병원을 가지고 있는 의대는 늘릴 여지가 있지요. 그러나 대부분 서울 소재 대학입니다. '진짜' 지방의대가 그럴 여력이 있을까요? 해부학을 비롯한 기초교육여건은 기초교원이 부족해 서울도 그리 좋지 못하니 지방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지방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을 구하지 못해 난리라는 보도를 여럿 보았으니 임상교육 환경도 좋으리라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방의대 정원을 주로 늘리고 지역인재선발을 주로 한다는 정책 자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방의대의 교육여건과 그곳에서 수련하고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함께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조금씩 정원을 늘리면서 지속적인 평가를 하며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2000명을 부른 것이 과연 세밀한 정책적 계산과 합의를 거친 것일까요? 불리해지는 총선 민심을 뒤집을 마지막 카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의사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면 정치인들은 말하기가 참 쉽습니다.  그것이 여던 야던 마찬가지입니다.


의협의 대처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 수 부족을 어느 정도 인정하되, 단계적 증원안을 제시하고, 지역별 전공별 분포를 개선시키는 방안에 좀더 많은 방점을 두고 타협을 진행하였어야 합니다.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말은 지금 어디에 해도 아무도 수긍하지 않습니다.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의사 편을 들지 않습니다. 정치인과 언론인은 물론 병원의 동료들도, 일반 국민들도 의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입시계에 선 큰 장에서 희망에 부푼 학부모들과 사교육업자들은 가장 간절하게 파업의 실패를 바랄 것입니다. 학생들을 빼앗길 이공계 대학 교수님들과 연구자들이 그나마 의사들을 그나마 동정해줄까요? R&D 예산 삭감에 더 잃을 것이 없어진 그분들은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을 것입니다.


이 파업이 도대체 어떻게 끝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내일은 병원 대책회의가 있고, 병동 수간호사들과도 만나야 합니다.

지난 파업을 겪어본 간호사들은 이 파업에 대한 눈이 곱지 않습니다. 그나마 지난번에는 인턴이 하던 일들을 상당부분 간호사들이 해주었지만, 작년 간호법 이슈 이후로는 바라기 어렵습니다. 소변줄 넣는 것, 관장 등을 제가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예정되어 있던 입원을 연기하며 환자들에게 설명하느라 하루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있던 원무과 직원들도 이번에 잘 협조를 해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또한 많이 화가 나 있는 국민들 중 하나일 테니까요.


상당한 상흔을 남기게 될 이번 파업이 그래도 2월 안으로 끝났으면 하는 마음인데 어쩌면 총선까지,그 이상 지속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월은 신입 전공의들이 들어오는 시기인데 이미 선발에 합격한 이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업무복귀명령이고 뭐고 소용이 없습니다. 하필 왜 손바뀌는 2월에 그런 발표를 했는지 정부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아무리 봐도 총선용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의사 연봉이 6,7억이라더라' '전임의사협회장이 정부는 의사를 이길수 없다더라' 는 등의  자극적인 라인을 뽑기에 바쁩니다. 언론에서는 평소엔 정부 발표 뒤의 온갖 배경과 숨은 의도에 대해 열심히 논평하던데 이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만을 홍보해주더군요.


여러가지로 복잡한 마음이 오가는 파업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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