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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ug 20. 2020

파업전야

<파업전야>라는 전설적인 노동운동 영화가 있다고 들었다. 나는 보지 않았다. 사실 내심으로는 '내가 깨어있는 시민이기는 해도 그런 것까지 볼 정도로 운동권은 아니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젠 깨어있는 시민도 '깨시민'이라는 이름의 일종의 기득권 세력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난 어느 쯤에 있나. 언제나 회색분자인가. 아니 어느 쯤에 있는게 중요한가. 

2010년 의약분업 파업 때 본과 4학년이었다. 학생회가 운동권이어서, 과격해서 싫다고 하던 동기 선후배들이 누가 봐도 강경한 발언을 하고 파업에 동조하지 않는 자는 배신자들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파업이 시작될 시점으로부터 약 반년 전에 의약분업의 당위성에 대한 기사를 교지에 쓴 자는 나였기에 파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없었다. 다행히 교지의 열독률이 높지 않았기에 <연건> 교지 김선영기자는 십자가에 못박히지는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의사의 사회적 책무와 양심 운운하면서 고고한 척 하더니 실제 투쟁이 필요할 때는 비겁하게 빠지는 학생회관 운동권 패거리들 중 한 놈으로 간주되었고, 의료를 바로세워야 한다는 파업의 취지에 부분적으로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기꺼이 올라탈 수도 없었던 이들은 그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숨어다녔다. 숨어있던 자들은 조용히 지리산 종주도 다녀왔다. 나도 따라갔다. 아직까지 인생에서 유일한 지리산행이다. 의약분업이야 뭐가 어떻게 되었던 내가 이 산에 와봤으니 되었다, 고 생각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외면하는 파업만은 안된다며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교회 동아리 사람들이었다. 답답한 나머지 교지편집위원회를 같이 하던 친구와 나는 교회 모임에도 나갔다가 그 엄청난 통성기도에 사색이 되어 뛰쳐나왔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동감했지만 통성기도라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어 기뻤다. 아무튼 누군가라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도 모르면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파업은 지속되었고 졸업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원래 국시를 마친 후 학교다니는 동안 못가봤던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오려던 계획은 모두 무너졌다. 일단은 돈이 없었다. 원래 내년이면 인턴이 되고 돈을 벌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0대 후반이나 되어서 엄마에게 용돈을 타서 쓰기가 미안했다. 일단 파업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으니 뭐라도 해봐야겠다 싶어서 한국갤럽에 가서 여론조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루만에 관두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냉대와 짜증을 받아내며 생각했다. 나는 온실속의 화초였구나.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며 사는구나. 

갑자기 파업이 풀리고, 급하게 국시가 잡히고, 어영부영 시험을 보고, 국시발표가 나자마자 졸업하고 인턴으로 투입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후 파업은 이 집단에 매우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우리 그 때 모두 투쟁했지"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투쟁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입을 바라보았다. 본 적없는 '파업전야'라는 독립영화에 나오는 이들은 투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발음할 지 궁금했다. 그 단어에는 특허가 없지만 왠지 빼앗아 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냥 그것은 잊기로 했다. 의사로서의 지식과 판단, 환자에 대한 진심과 정성, 그것만 배우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동료와 선후배들을 좋아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오늘은 파업 전야다. 나는 오늘도 회색분자다. 구체적인 지역의료 활성화와 일자리 정책이 없는 의대 정원확대는 반대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환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 또한 무리수다. 그러나 파업을 철회하라는 주장을 전공의 업무를 대신 맡아서 해야 할 교수가 입밖에 내기는 왠지 뻔뻔해보인다. 내가 편하자고 그러는 것 같아서.  지금은 입원환자 오더 내는 법, 검사 예약하는 법 등을 익히고 있다. 어떻게든 되긴 되겠지. 오늘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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