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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Feb 22. 2024

병동을 떠난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병동을 떠나 몸은 편해지셨겠지만 마음은 불편하고 상처받은채로 지내고 있겠지요. 눈만 뜨면 모두가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 바깥에 나가기도 두려울 지도 모릅니다. 병동에 두고 온 환자들도 생각이 날 거구요. 그분들은 저희가 잘 보고 있으니 너무 염려마세요. 

방금 말기암 환자의 사망선고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시신을 정리하며 환자에게 박힌 각종 관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노안이 와서 tagging suture가 잘 보이지 않아 제거하기가 힘든 웃픈 일이 있었습니다. 잘못해서 시신에 상처를 내면 안되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데, 매듭이 잘 보이지 않으니 블레이드를 잡은 손이 떨렸습니다. 지난 2020년 파업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장갑을 끼기 전에 안경을 벗었어야 했는데. 다초점렌즈를 맞췄는데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입원환자는 많이 줄였습니다. 입원시키면 내가 봐야 하니 할 수 있는 만큼만 입원시킬 수밖에 없죠. 한편으로는 그동안 불필요한 입원도 참 많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외래에서도 가능한 고가의 항암제를 맞으면서 실손보험금을 타기 위한 입원, 호스피스로 가야 하는데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의 입원, 외래에서도 가능한 검사를 환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했던 입원. 저는 입원진료가 젊음을 갈아넣는 도가니탕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에는 곧잘 했던 퐁당퐁당퐁퐁당 (주 3회 당직)을 30대만 되어도 월 1-2회도 힘들어서 잘 못합니다. 밤샘 교대근무는 잘 알려진 발암물질이기도 하죠. 

젊은 전공의, 간호사들을 갈아넣어 유지되는 입원진료라는 귀한 자원은 아껴서 써야 했음에도 우리사회는 그것을 남용하였습니다. 교수들은 환자와의 실랑이가 귀찮고 환자들이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 마음씨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입원장을 손쉽게 남발하였습니다. 환자들은 저렴한 입원비와 실손보험이라는 보상기제가 있는데 입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없으니 입원진료라는 것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실감이 되고 미안해집니다. 옛날엔 다 했던 일인데도, 병동 회진도 계속 돌아왔는데도, 실제 병동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내가 이렇게 몰랐구나 싶습니다. 사람이란 게 이렇게 쉽게 망각하는 동물이네요. 


종종 포털과 유튜브에 접속하면서 선생님들의 소식을 접합니다. 구속, 면허취소, 사법처리.... 얼마전까지만 해도 병동,중환자실, 응급실을 누비며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선생님들에게 이 사회가 보내는 증오와 멸시를 접하며 마음이 아픕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수많은 환자들에게 받는 손가락질은 마치 비수와도 같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군인도 공무원도 아닌 전문직인 민간인일 뿐인데도 이러한 국가적 통제와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사실 저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현 정부의 무도함과 무능함, 그리고 다가오는 선거를 위한 꼼수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속상하고 괴롭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아시겠지만 치료 연기가 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히 치명적이거나 위험한 것은 아닌데도 다소 과장되어 보도되는 측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차관 또한 큰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중소병원, 군병원 등으로 분산하는 비상진료체계가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라고까지 하였지요. 결국 여러분의 저임금 과다노동에 기대 온 의료제도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고백한 것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껏 20-30대인 젊은 의사들 탓만 할 뿐 그동안 실손보험과 무분별한 병상확대를 방치하여 의료제도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정부의 실패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참담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께서는 적어도 환자들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이해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치료가 지연되어 답답해하는 환자들에 대한 죄송함도 충분히 표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장 돌아오지는 않더라도요. 특히 여러분의 '개념없는' 모습을 사냥하여 보도하기 위해 여념이 없는 언론의 희생양이 되지 마십시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 '업무개시명령을 피하는 꿀팁을 공유한다' 이런 말들이 나도는 것을 여러분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좌절을 어느 정도 아는 다른 의사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이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원망하는 것은 어른의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끼리는 일부 환자가 병식이 없다, 이해를 못한다, 성격이 이상하다며 답답해하는 일이 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런 환자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성심껏 설명하며 전문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왔습니다. 안에서 하는 얘기와 바깥에 나가는 얘기는 달라야 하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물론 바깥에 나갈 줄 모르고 한 얘기겠죠. 그러나 안에서 일반국민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이야기들을 자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바깥에 나가게 됩니다. 말을 하기 전에 한번 더 돌아보십시오. 나는 이 말을 환자에게, 일반 국민들에게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돌아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주셔야 합니다.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보다는 의대증원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일정부분은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이 무도한 정부가 2000명이라는 선에서 조금도 양보할 뜻이 없어보인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환자들의 곁으로 돌아갈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숫자에 있어 타협할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거꾸로 정부의 막무가내식 몰아가기가 무색해질 것입니다. 저는 의사들이 공유하는 '의대정원이 현재로도 충분하다'는 논리를 일부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점진적으로 증원해나가며 정책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논의하는 기구를 만들자는 선에서 합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더 이상 마음을 다칠 일이 없었으면 바랍니다. 한국 의료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별다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했던 기성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을 전합니다. 선생님들이 남기고 간 환자들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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