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a hint of ginger
사람들에게 굉장히 저평가되고 있는 음식재료가 있다면 나는 그게 생강이라고 생각한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는 지난 몇 년간 생강이 사람들에게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지켜봐오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생강이 들어간다는 소리만 듣고 얼굴을 찌푸리고, 생강 맛이 나면 뱉어내는 사람들의 모습들 말이다! 당신이 생강을 좋아하지 않는 내 주위 사람들 중 한 명이라면, 이 글을 꼭 읽어봐야 한다.
아마 생강을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가장 흔한 장소는 초밥집일 것이다. 분홍분홍하게 물들여진 초생강은 사람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마늘장아찌 옆을 지킨다. 생선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중간중간 입을 씻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생강 한 조각이면 그 전에 먹었던 초밥에 무슨 생선이 올려져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입안이 개운해진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악기 각각의 소리가 잘 들리도록 소음을 지워주고, 그림으로 따지자면 요소 하나하나가 그 색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훌륭한 사이드킥이다.
생강은 고기 잡내도 잘 잡아준다. 수육, 만두 등 많은 고기 요리에 생강이 들어간다는 것을 요리 좀 해본 사람들은 다 알 거다. 여기에는 많은 양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적은 양으로도 음식을 깔끔하게 할 수 있어 참으로 효율적이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자기희생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소화를 돕고 살균작용을 해 건강에도 좋다. 이웃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생강이 우리에게 하듯 해야 한다!
내가 가장 감탄하는 생강의 역할은 음식 맛을 더 풍부하게 하고, 진부한 맛도 새롭게 만들어주는 점이다. 수정과를 만들 때 생강이 들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 떫은맛이 수정과에 질리지 않는 향을 더해주고,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준다. 밥상에서도 생강은 빛날 준비가 되어있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에는 생강향을 입힌 고기 요리들이 있기도 하고. 혹시 요리를 하게 되면 시도해보자. 제육볶음이나 불고기에 향이 슬쩍 돌 만큼 생강을 더 넣어주면 묘하게 새로운 맛이 난다. 지루한 밥상에 불어오는 새바람 같은 거랄까. 근데 너무 많이 넣으면 생강 맛 밖에 나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까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기가 요즘이다. 졸업을 했고, 소속은 없고, 하루에 서너 번 언제 한국에 오(가)냐는 질문을 받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소망은 더 진해진다. 생강 정도의 사람만 되어도 좋겠다는 소망 말이다. 요리의 메인이 되는 것 아니라 그 음식의 잡내를 잡고 향을 더하는 역할. 형체가 보이지 않아도 결국 음식의 맛을 결정하게 되는 건 생강이다. 문제는 나의 냄새가 썩 좋지 않다는 거다. 싸구려 향수일수록 잔향이 좋지 않다는데 딱 그짝이다. 그래서 나는 내 향이 아닌 다른 이의 향을 풍기기를 소망한다.
내가 아는 예수님의 향기는 세상이 만들 수도, 꿈꿀 수도 없는 아주 좋은 향이다. 그의 향기가 나를 비롯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우러나와 세상에 없는 공동체를, 시스템을, 문화를 만들면 최고로 멋질 거다. 그럼 나는 아주 행복한 생강이 되겠지. 그러기 위해서 나는 질 좋은 생강의 길을 걸어야한다. 지금 이 정체의 시기가 그 길을 걷는 과정이었으면, 내 버둥댐이 아버지에게 좀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