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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o 시오 Oct 01. 2019

위로받는다는 것은  

올해는 참 손에 꼽히게 힘든 해였다. 얼른 벗어나는 게 좋은 것도,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전까지의 삶이 내가 만족할 만한 좋은 '선택'을 하고 또 실패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면 올해는 O, X판을 드는 것 과 같은 간단한 선택만으론 끝나지 않았다. 순간이 아닌 그 결정이 내 삶에 베여들 수 있도록 행동으로 일궈내야 했다. 허락된 시간을 모두 거기에 썼다. 전념이었다. 끝내 그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지쳐있고, 가야 할 바를 몰랐다. 혼자 있고 싶었다. 널브러져 있고 싶었다.  


그러나 바라지 않았다고 해서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닌가 보다. 나에게는 위로가 그랬다. 누군가가 내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길 기대하는 것보다는 혼자 버둥대는 편이 마음 편한 일이다. 나를 위해 남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 싫다. 어릴 때부터 자리 잡은 이상한 자존심 같은 것이랄까.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어떤 것에도 애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혼자서 마음껏 힘없이 있다가 좀 충전되면 털고 일어나야지 싶었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진심으로 놀랄 일이었다. 한 친구는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겠다며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왔다. 그녀는 삼겹살을 구우며 내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들으며 이런저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아픈 마음을 꺼내 보인다는 건 쓰라린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른 친구는 함께 성경을 읽자며 나를 불러내었다. 자기가 말로 위로할 능력이 없어 내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마음의 크기였다. 전화통화를 어려워하는 나를 위해 장시간 카톡을 어려워하는 친구는 한참 동안 메신저를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찾고, 들여다봐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위로와 보호 안에서 나는 마음껏 혼자 널브러질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을 위로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위로받기 전엔 몰랐다. 사랑 받음이 나를 이렇게 안도하게 함을. 울렁거리던 땅을 단단하게 함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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