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에 부쳐
요즘 세상엔 어른이 없다. 대신 ‘꼰대’만 가득하단 말이 종종 들려온다. 나이 먹어 가는 입장에서 그 말이 섭섭하기도 하지만, 사실 부정하기 어렵다. 어른처럼 보이지만, 어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말은 많지만 책임은 피하고 영향력은 갖고 싶지만 불편은 원치 않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진짜 어른을 만나고 싶어 한다. 곤경에 빠진 사람들은 키다리 아저씨 같은 어른을 기다리고, 위기의 순간엔 간달프 같은 능력있는 어른이 나타나길 바란다. 선을 넘을 때에는 엄히 꾸짖으면서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덤블도어를 기다리고 삶이 복잡하게 꼬일수록 요다처럼 한 마디로 마음을 꿰뚫는 존재를 갈망한다. 누군가는 지켜봐 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자신은 그 어른이기를 망설이고 있다.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시대다. 피터팬이 네버랜드에서 돌아오지 않는 건, 단순한 철부지의 꿈 때문이 아니다. 그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게 만든 건, 상처였다. 부모의 기대와 꾸지람, 조건이 붙은 사랑.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길 두려워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이 아니라, 또다시 누군가에게 상처 줄까 두려워한다.
대학 수업에 학부모가 항의 전화를 걸고, 취업 준비에 부모가 함께 뛰어다니는 세상. 어른의 역할은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인정과 보호는 갈망한다. 타인의 시선과 SNS의 좋아요에 매달리며 어른의 껍데기를 흉내 낼 뿐.
나도 그랬다. 어릴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놀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오십 가까운 나이가 되어나서야 안다. 어른이 되는 건, 멋지게 준비된 자리에 당당히 입장하는 게 아니라,
꾸역꾸역 살아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무거운 역할이라는 걸. 어른은 무서움을 안고도 나아가는 사람이고, 상처를 품은 채로도 웃는 사람이며, 감정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닳고 익어 조용해진 사람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기는 어렵다.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는 나이. 더 이상 기대고 응석부릴 사람도 없는 시간. 1인분의 삶도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누군가의 짐을 나눠 져야 하는 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의 파도는 어제의 파도일 뿐이고 오늘 또다시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야 하는 삶. 어른이 된다는 건 완성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야만 하는 길 위의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한다. 늦게 어른이 되었고, 아직도 다 되지 못했지만,
언제까지나 아이처럼 살 순 없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이해받을 자리에만 있을 수 없으니까. 순수만을 내세우기엔 이제 나의 말과 선택은 너무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치니까.
이제 마흔아홉. 살아온 날에 책임지고, 다가올 날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직장에서 후배와 갈등을 겪으며, 나는 어떤 선배가 될 것인가를 고민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선생이 될 것인가를 되묻는다. 점점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어떻게 덜 후회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서두르라는 작은 조언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너무 늦지 않게 어른이 되어 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