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지도에 없는 길로 가기

편안함에 머무를 것인가, 낯선 곳으로 나아갈 것인가.

by 이진석

교사들은 1인분의 몫을 잘하지만

앞선 글에서 ‘1인분의 몫을 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그 말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그래도 교사는 그걸 해내는 사람들이라는 전제. 교사들은 대체로 자기 몫을 성실히 감당하는 사람들이다. 남에게 민폐 끼치기를 싫어하고, 자존심이 강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런 성향이 ‘도전을 피하고 안전한 길을 택하는’ 습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경력이 쌓일수록 학급 운영이나 수업 스타일이 굳어진다.
“이건 내 노하우야.”
“나는 이렇게 해도 잘 되던데.”
그럴듯한 말 뒤에 숨은 건 사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무관심일지 모른다.


나 또한 매년 비슷한 수업을 반복했고, 학급 운영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새로운 교수법이나 정책은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했다. 연수는 의무 이수 시간만 채우면 그뿐, 정책 자료는 대개 ‘설마 정말 이걸 현장에서 하라고?’라는 마음으로 흘려보냈다.

물론, 새로운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꽃길이라 생각했던 길이 엉겅퀴 밭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보지 않으면, 내 지도에는 길이 생기지 않는다.


올해 우리 학교로 전입 온 젊은 선생님이 있었다. 그가 6학년 교사들을 모아 ‘민주경제 학급 운영법’을 연수했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역할을 맡고,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는 구조였다. 인성 교육과 자율성 신장 측면에서 꽤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선뜻 시도하지 못했다. ‘운영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껏 내가 고수해온 학급 운영 시스템을 버리고 새롭게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두 해보고 싶다고 의견을 모았다.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그만두자’는 조건으로, 나도 참여했다.

나는 아이들을 믿지 못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확인하고, 직접 챙기는 게 내 스타일이었다. 그런 내가 전권을 학생들에게 넘긴다니,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금세 새로운 방식에 적응했다. 자발적으로 운영에 참여하고, 역할별 책임을 자연스럽게 분담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지금껏 아이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짊어지려 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만약 내가 이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내 방식이 최선이라 착각하고, 아이들에게 책임과 자율을 경험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특히, 새로운 직장이나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가면
완전히 ‘을’의 입장에서, 다시 신입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방법, 익숙한 방식에만 머물러 있으려 한다.

하지만 익숙함만 고수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굳어지고,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버린다. 남에게 고개 숙이기 싫어서 배우려 하지 않고, 불편한 도전을 피하려 기존 방식만 고집하게 된다. 그 길의 끝은, 아마 꼰대의 길일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끝까지 성장하려는 어른, 아니면 실패하지 않는 대신, 멈춰 있는 어른?

지금 우리 앞에는 지도에 없는 길이 놓여 있다. 그 길은 누구도 가보지 않았고, 나만의 길로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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