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인분의 몫을 다하기

어른이 된다는 건, 제 몫의 책임을 흘리지 않는 것

by 이진석

집안 일을 싫어하는 가풍(?)

우리 집안 남자들의 가풍은 대체로 이렇다. 잔일을 싫어한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말엽, 일본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양복을 입고 거래처에 영업 다니는 일은 좋아하셨지만, 직원 관리나 공장 운영 같은 ‘디테일한’ 일은 잘 하지 않으려 하셨단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것도 아니라 결국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도 비슷하셨다. 은행에 가시거나, 등본을 떼시거나, 계약서를 챙기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결혼을 하면서 이런 자잘한 일은 아내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아내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결국, 결혼과 동시에 이런 ‘잡무’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닥쳤다

이사를 가면서 나는 부동산 계약을 하고, 아내가 일을 그만두어 경제적 부담을 느끼면서 대출을 받고 세금을 내고, 아들 치료비라도 줄이려 관공서에 찾아가 읍소하고 서류를 출력해 들고 가 제출하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도 관공서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어깨가 굳는다. 은행 창구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무슨 절차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순서로 말해야 할지 맥이 잘 잡히지 않는다.

신기한 건 학교 일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학급 문서를 정리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일은 프로세스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머리가 갑자기 멈추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냥 꾸역꾸역 해왔다. 한 번은 부동산 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가 이런 일도 해내다니’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걸 이제서야 처음 해보다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몫을 흘리지 않는 것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을 하나씩 해보며 익숙해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다 말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어른이 되기 위해 발돋움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반대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는 미술 시간에 서툰 솜씨로도 묵묵히 작품을 완성한다. 반면 어떤 아이는 중간에 슬쩍 친구에게 부탁하고, 그 뒤로는 아예 맡겨버리고 딴 짓을 하더라.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초등학생 시절, 방학 숙제를 누나들에게 부탁해 넘긴 적이 많았다. 그때 그런 작은 무임승차가 지금의 조금은 미완성인 나를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직장에서도 그런 사람을 본다. 일의 기한을 넘기고, 자꾸만 도움을 요청하며 책임을 분산시키는 사람. 어쩌면 그는 아직도 어른이 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1인분의 몫을 흘리지 않고 감당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특출난 능력이나 거창한 성취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맡은 바를 제대로 해내는 일. 같이 사는 세상에서는 그런 ‘기본기’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1인분 이상의 몫을 해야 어른이다

돌아보면, 나이가 들수록 내 앞가림조차 버거운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짐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 그러니, 어른이 된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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