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한 남자의 웃음

운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

저녁 무렵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사주 보는 곳에 들어갔다.

특별히 볼 생각은 없었다. 그냥 지나가다 눈에 띄었고,

마침 안에서 나오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보고 가시라는 말에 이끌려 들어갔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말했다.


'컴퓨터 만세력'이란 표지의 낡은 책을 펼쳐서 뭔가를 확인한다.

백지를 한 장 꺼내 검은색 사인펜으로 한자 같은 걸 흘려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말을 했다.


나는 사주에 물도 없고 불도 없다고 했다.

'관'이 많다고 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참 박복한 운을 타고났다고.

부모 덕도 못 보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고.

돈복도 없다고 했다.

그 대신 본인 생각대로 사는 팔자라고.

남의 시선 신경 안 쓰고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갈 사람이라고.


'방금 저에게 돈복이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물이 재물인데, 물이 없어서 그래요.'


'그럼 저는 나중에 돈이 없어서 굶어 죽나요? 어려운 일을 겪게 되나요?'


'그건 아니에요. 직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나름대로 전문적인 기술이 있네요. 그래서 굶어 죽지는 않아요.

다만 재물이 모이지 않아요. 그래서 큰 부자가 되지는 못한다는 거예요.'


'아쉽네요. 하지만 굶어죽진 않는다니 그건 다행이군요.'


말은 다행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뜬금없이 박복하다는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칠 할 정도는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면.


다음 날 아침, 치과에 갔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다.

원래 가던 곳이 아니라 멀리 있는 곳인데,

잘한다고 해서 소개를 받아 다니고 있었다.


진료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임시로 씌워둔 것이 자꾸 빠진다는 점이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세 번인가 네 번 빠졌다.

그때마다 다시 갔다.

조심하라고 해서 조심했다.

치실도 안 쓰고, 딱딱한 것도 안 먹었다.

그래도 빠졌다.


이번에도 또 빠져서 갔다.

의료진도 난처해하는 것 같았다.

나도 답답했다. 왜 나만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물어봤다.

조심해야 할 게 있으면 다 한다고 했다.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누워서 입을 벌리고 있는데,

치과의사가 내 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진료를 멈췄다.

그리고 다른 의료진을 불렀다.

둘 사이에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가 오갔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한마디로 그 보철물 자체가 잘못 만들어졌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였구나 싶었다. 하루도 안 돼 계속 빠졌던 이유가.


새로 하나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연말에 바쁜데, 왕복 세 시간씩 들여서 몇 번이나 더 와야 하는 건지.


그 순간 문득 어젯밤 사주 이야기가 떠올랐다.

박복하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운이 별로다. 그 말들.


그러니까 뭐, 원래 그런 거구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이런 팔자구나.

웃음이 났다.

왜 웃음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분이 나빠지려다 말았다.

왜 하필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왜 이런 치과를 소개받았나,

그런 생각 대신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래, 뭐. 원래 이런 거지.

내 인생이 원래 이렇지.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한탄이 아니었다. 체념도 아니었다.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내 삶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박복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박복함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아무도 안 도와준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왔다는 것을.

때로는 방황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겨내왔다는 것을.


사주쟁이 말대로 나는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서

굶어 죽지는 않는 모양이다.

큰 부자는 못 되어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는 있다.

그 정도면 됐다. 그 이상을 바란 적도 없다.


지금 내 삶에 큰 후회는 없다.

자잘한 건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후회가 없다.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다.


치과에서 나올 때 직원분들이 미안하다고 했다.

멀리서 여기까지 오시는데.

아니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넘어갈 수도 있는 건데.


웃으면서 나왔다.

원래 내 삶이 이런 거라고 생각하니까 조바심도 사라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까.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사주쟁이 말대로 나는 마이웨이로 살 팔자인 모양이다.

그래, 뭐. 그렇게 살면 되지.


창밖으로 겨울 햇살이 비쳤다.

박복해도 괜찮다.

어차피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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