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따위는 나중 일이다
삼 년 전쯤, 메모장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싶다.
노년에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수입을 올리고 싶다.
그러려면 블로그가 좋을까, 인스타가 좋을까.
일단 뭐라도 써보자. 공개해서 반응을 보자.
대단한 포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점심 먹기 전에 휴대폰을 들고 후다닥 적은 것이다.
글을 마치고 지급명령 하나 처리한 뒤 밥을 먹으러 나갔다.
그 메모를 최근 우연히 다시 봤다.
읽고 나서 잠깐 가만히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삼 년 전의 나는 '먹고 사는 것'에 꽤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
걸 통해 뭔가를 얻겠다는 마음이 앞서 있었다.
수입이 되면 좋겠고, 사람들이 봐주면 좋겠고,
그래서 어딘가에 도달하면 좋겠다는.
지금은 그 생각이 좀 달라졌다.
먹고 사는 건 내가 알아서 한다.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그건 그거고.
글은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뿐이다.
누가 읽어주면 좋고, 안 읽어줘도 상관없다.
공감을 얻으면 기쁘겠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무슨 영향을 끼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설득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내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고 싶다.
생각한 것을, 느낀 것을, 본 것을.
문장으로 만들어서 어딘가에 놓아두고 싶다.
그게 대단한 것이든, 별것 아닌 것이든.
삼 년 전 메모에는 '툴'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었다.
블로그가 좋을지, SNS가 좋을지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툴은 이미 있었다.
손가락 열 개와 키보드 하나.
그게 전부다. 나머지는 전부 핑계였다.
어떤 플랫폼이 좋은지
비교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최적의 전략을 세우겠다고 머리를 굴리는 동안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쓰면 된다. 그냥.
쉰이 넘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달라졌는지 안 달라졌는지 자기 자신은 잘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예전보다 이유를 덜 따진다.
왜 쓰는지, 누구를 위해 쓰는지, 써서 뭘 할 건지. 그런 질문에 더 이상 답을 구하지 않는다.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답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고 싶으니까 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십 대에는 뭔가를 증명하고 싶어서 살았다.
삼십 대에는 뭔가를 이루고 싶어서 살았다.
사십 대에는 뭔가를 지키고 싶어서 살았다.
오십 대에 와서야 비로소,
그냥 살고 싶어서 사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목적이 있어야 쓸 수 있었다.
마감이 있거나, 제출할 곳이 있거나,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나.
지금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데도 쓴다.
아무도 읽지 않을 수도 있는데 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더 편하다.
삼 년 전 메모의 마지막 줄은 이랬다.
"자. 가자. 지급명령 하나 쓰고 점심 먹으러 가자."
지금도 비슷하다.
이 글을 마치고 나면 서류를 정리하고, 전화를 몇 통 하고, 점심을 먹을 것이다.
일상은 변한 게 없다.
다만 하나, 삼 년 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은 하고 있다.
쓰고 있다.
그것으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