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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샤인 May 26. 2024

나의 테오에게

너는 나의 머리를 감겼다.

나는 너의 일생일대의 첫 시험장에서 수많은 부모들 사이에서 부모가 아닌 사람으로서 마음을 졸였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매라는 혈연으로 만났다.


나와는 너무 다른 성격, 성향, 빠르기를 가진 사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한 번도 다툼이 없던 관계, 불가사의한 우리 둘 사이.


고흐에겐 동생 테오가 있었고 나에겐 네가 있다. 형의 재능을 위해 헌신한 동생 테오와 그런 동생을 귀하게 여겼던 화가 고흐의 못지 않게 우리는 끈끈하고 아름다운 사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고흐는 생전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해 팔린 작품이 한 점뿐이었기에 자신의 그림에 대한 좌절감과 회의감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순전히 테오 덕분이다. 형이 힘들 때마다 늘 용기를 주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테오 - 테오 덕분이다.


내가 홀로 설 때에도 새롭게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도 부족한 엄마 역할을 하면서도 넌 늘 나의 뒷배가 되어주었다. 소리 없이 우리 집 이불 빨래를 하고 있고, 함께 가족을 챙기고, 자기주장을 덮고 내 목소리를 들어주었고, 내가 아플 때 떨리는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 나는 네 덕에 든든하고 뭐든 무섭지 않았다. 동생으로 만났지만 언니 같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주는 에너지는 무엇보다 진하게 내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날 쫓아다니던 네가 조금 귀찮기도 했다. 적지 않은 네 살 터울 때문인지 같이 놀기엔 어리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그런데 어느 순간 거친 사회생활 속에서도 자기 할 말을 하고 그 안에서도 묵직하고 열정 넘치는 널 보면서 이제 너 이상 어린 동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가끔씩 나라를 걱정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멋있기도 했고. 어느덧 너는 내 동생이 아니라 동시대를 걷고 있는 멋진 어른이 되었고, 나보다 집도 차도 먼저 마련하는 널 보면서 대단해 보이기도 했단다.  


우리는 가끔 3시간 넘게 통화를 한다. 가족 이야기, 사회 이야기, 직장 이야기 - 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 같은 사이가 된 게 아닐까. 그리고 가끔은 나의 이성 친구, 부모를 대신하는 너의 굵직하고 사려 깊은 말을 속에서 너의 존재감을 되새기곤 한다.


우리는 이제 곧 둘 다 사십 대가 된다. 나의 홀로서기가 너를 오래도록 홀로 서게 할까 가끔은 염려가 된다. 나는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이니까. 좋아하는 일과 관심 있는 일만 하고 싶은 한결 같이 한 방향인 사람이라서 가족들이 그 나머지를 채우려고 애쓰게 하지는 않을까 마음이 좀 쓰이기도 한다. 네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내가 아니길 바란다. 얼마 전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알렸고, 쓴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해서 글을 보내면서 우리는 정말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서로의 글에 관심을 갖는 자매는 드물지 않을까. 너는 나의 글을 읽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고에 대해서 쓴 글이었다.


" 뭔가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시원함이 있는 글인 듯~ 멋진 사람이야 언니는~ 앞으로 더 멋있어질 것 같고^^ "


내 단짝, 진주야. 나는 그 어떤 타인의 칭찬보다 네가 해주는 격려와 위로가 큰 힘이 된다. 너는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일어서고 넘어지고 못되게 굴고 바닥까지 처절해지고 사기꾼에게 당하고 어이없는 사고를 일으키고 들쭉날쭉한 연애사를 다 알고 있고, 내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중요한 순간을 알고 있는 - 같은 부모를 가진 존재이니까. 그런 너에게 받는 사랑과 위로 그리고 인정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절박해.


네가 있어 나는 참 좋다. 


부족한 나를 멋진 언니로 살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 

고흐도 테오에게 그랬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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